김문학 일중한국제문화연구원장. [사진=연합뉴스]

 

해방 이후 한국에서는 “우리민족이 일제 침략에 용감히 저항했다”는 거짓 역사 만들기에 다들 여념이 없어 보인다. 일제 식민통치에 대항해서 항일 의병투쟁, 독립군, 독립운동, 항일투사, 저항시인 등 저항, 항일, 반일 등 용어가 교과서를 도배하고 있다. 마치 모든 조선인이 격렬하고 처절하게 저항하고 항일 운동을 펼친 것인 양 선전하고 선동한다.

그렇다면, 역사적 실상은 어떠했을까? 독립을 외친 자들은 대부분이 조선왕조를 보존하려는 고루한 수구세력에 불과했다. 절대 다수의 조선인들은 일본의 선진문명에 매료되었고, 일본의 식민통치를 수용하고 적응하면서 일본 국민으로 삶을 누렸다. 

태극기를 고안한 박영효 혹은 애국가 작사자 윤치호도 일본제국의 순민(順民)었다. 이들 두 명은 모두 일본 제국의 후작과 남작이었으며, 일본에 적극 협력했던 일본 체제 내의 엘리트였다. 두 명의 거물 엘리트들이 상징하는 것은 항일하고 저항했다는 주장이 얼마나 무력하고 허망한가를 잘 드러낸다.

세간에서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声大哭, 《황성신문》1905년 11월 20일자)’이란 논설이 일제에 격렬히 저항하고 규탄한 텍스트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이토 히로부미(이등방문)에 걸었던 정치적 기대를 배반당한 슬픔과 분노에 못 이겨 ‘대곡(大哭)’했을 뿐이다. 궐기는커녕 일제를 질타하는 대목은 찾아 볼 수 없다. 기대를 걸었던 일본에 대한 처절한 원망뿐이었다.

최근, 필자는 수많은 조선인 엘리트들이 어떻게 일본에 매료되고, 일본의 근대문명을 수용했는지를 분석한 일문 저작 『조국의 영웅을 ‘매국노’라 단죄하는 한국인』이란 저작을 출간했다. 필자는 이 책에서 근대 한국사는 바로 ‘친일의 역사’이며, 항일이 아닌 ‘친일·적일(適日)’이야말로 한국 근대사에 관통하는 키워드라고 주장했다.

일제시기와 일제강점기라 호명되는 식민지 시대를 교과서에서 고취하는 저항과 반일은 거의 없었다고 보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나아가 저항은 있었다 하더라도 지극히 미미했으며, 3·1운동 이후 독립운동가 대부분도 친일로 전향했다.

박정희 대통령도 “일본을 정신적 고향으로 삼은 인물”이다. 그의 일본육사 동기 이준섭은 “당시 자신의 90%는 일본인이었는데, 조선의 독립이 왜 필요했냐며, 생각조차 한 적이 없었다”고 고백했다. 당시 모든 조선인은 악마와도 같은 중세 조선왕조의 암흑에서 벗어나 일본 국민으로서 근대문명의 혜택을 마음껏 향유하며 살았다. 그러니 무슨 항일이 필요했겠는가. 

관련해서 서양인의 평가를 소개해 보자. 미국 저명한 역사학자 마크 피티(Mark R. peattie)는 조선인들이 “일본에 저항하지 않은 채 전쟁에 협력한 사람도 많았다. 이 사실은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민족적 저항으로서의 신화와 배치되는 것이다. 지금도 한국에서는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식민지:일본제국 50년의 흥망)』고 지적했다. 마크 피티의 평가는 당대 조선의 현실을 목격하고 체험했던 서양 선교사, 여행자, 외교관, 학자들의 견해와도 완전히 일치한다.

만약, 저항과 독립운동이 그렇게 활발했다면, 당시의 문학에도 반영 혹은 투사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발견할 수 없다. 근대문학의 효시라는 신소설에도 항상 일본인이 등장한다. 하지만, 일본에 대한 저항은 없었고, 오히려 일본인을 우호적으로 묘사한다. 이인직의 『혈의 누』(1906)를 비롯해서 이해조의 『춘외춘』(1912)도 일본인을 찬미하고 예찬하고 있을 뿐이다. 조선 엘리트 작가들의 눈에 비친 선진국 일본은 문명개화의 본보기이자, 흠모의 대상이었다.
 
청나라를 제압한 일본이야말로 조선 엘리트들의 선망, 예찬, 학습의 대상이었고, 그래서 근대화 모델로 부상했던 것이다. 송민호의 경우, 「한국 개화기 소설의 사적 연구」(1975)라는 논문에서 신소설은 친일 경향이 너무 농후하다고 한탄했을 정도였다. 당연히 춘원과 육당 등 조선인 천재들의 문학과 사상도 전부 친일이며, 일본 문명을 배우자고 소리 높여 주장했던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조선 문학사에서 민족주의에 투철한 작품은 아쉽지만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 민족시인과 저항엘리트로 널리 알려진 만해 한용운조차도 실은 데라우치 총독에게 바친 ‘건백서(建白書)’에서 총독부를 나라와 정부라고 인정했다. 좌파들은 한용운의 명작 시집 『님의 침묵』을 두고 저항정신의 최고 절창(絶唱)이라 찬사를 보낸다. 결코 일제의 식민통치에 대한 ‘침묵’이라 해석하지는 않는다.
필자는 아무리 봐도 연애 시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을 두고 ‘은유’라면서 빡빡 우기는 한국인들의 심정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엄밀히 따지면,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저항과 항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면, 일제의 무서운 검열 때문이라 반론하기도 하지만, 해외에서 활동한 조선인 작가들의 작품에서도 항일은 관찰되지 않는다.  오히려 청마 유치환처럼 친일 일색의 작품이 실상이 아니었을까.  

친일 문학연구의 대가 임종국은 조선 근대문학을 친일로 도배된 문학이라 통탄했다. 그의 『친일문학론』에서 갈파했듯이 한국 근대문학은 친일문학의 산더미이며, 작품 수로 보면, 413편, 작가로 보면, 132명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친일은 세뇌당한 한국인들과 좌파세력에게 무상의 ‘치욕’이자, 매국노와 동의어다.

친일이란 일본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었던 우리 선대들의 숙명이었다. 그래서 친일은 현대 한국인들의 아이덴티티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친일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한국인들의 시급한 과제이자, 올바른 태도이다. 그러자면, 기만적인 항일 혹은 독립이데올로기로부터 하루 빨리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김문학 일중한국제문화연구원장(현 일본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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