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이 1심에서 징역 4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사업가로부터 10억원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전 부총장은 검찰의 구형량보다 더 무거운 중형을 선고받았다. 검찰은 윤관석 민주당 의원과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야권 정치인에 대한 강제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7부(김옥곤 부장판사)는 12일 이 전 부총장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징역 1년 6개월을,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등 나머지 혐의에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또 이 전 부총장에게서 9억8천여만원을 추징하고, 이 전 부총장에게서 압수한 명품 다섯 점을 몰수하라고 명령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23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이 전 부총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고 각종 명품 몰수, 9억8천여만원 추징을 명령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날 1심의 선고 형량이 검찰의 구형량보다 더욱 무겁게 나온 것이다.
재판부는 이 전 부총장의 혐의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집권 여당이자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 서울 서초갑 지역위원회 위원장, 사무부총장 등 고위 당직자의 지위를 이용해 10억원에 이르는 금품을 수수했고, 일부는 피고인이 적극적으로 요구했다"며 "피고인은 수차례 국회의원 등 공직선거에 입후보해 공직자가 되려 한 정당인으로서 공무원에 준하는 고도의 염결성(廉潔性)이 요구되는 점까지 고려하면 엄벌이 불가피하다. 그런데도 피고인은 수사 과정에서 증거 인멸을 시도하고 공판에서 객관적 증거에 맞지 않는 주장을 하며 범행을 부인했고 금품 공여자를 비난하며 진지한 성찰을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이 전 부총장은 2019년 12월부터 정부 에너지 기금 배정, 마스크 사업 관련 인허가와 공공기관 납품, 한국남부발전 임직원 승인 등을 알선해준다는 명목으로 사업가 박모 씨에게서 수십차례에 걸쳐 9억4천여만원의 뒷돈 내지 명품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됐다.
아울러 제21대 총선이 있던 2020년 2∼4월 무렵에 박 씨에게서 선거 비용 명목 등으로 수차례에 걸쳐 3억3천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도 있다. 이날 판결에서 정치자금법 위반 3억3천만원은 전부 유죄가 나왔다.
이 전 부총장 변호를 맡은 정철승 법무법인 더펌 변호사는 "검찰 구형량이 징역 3년이었는데 법원이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하는 건 매우 이례적"이라며 "많이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이 전 부총장은 알선 대가로 3억원을 받은 사실이 없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날 재판부는 이 전 부총장과 박 씨 간의 통화 녹음과 박 씨의 진술 등을 근거로 한 검찰의 공소사실 대부분을 사실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금품수수 전후 정황에 관한 박 씨 진술은 대체로 객관적 증거와 일치한다"며 "박 씨로선 수수한 금품이 차용금 명목이라고 주장해야 민사적으로 반환을 청구하기가 용이한데도 알선 등을 목적으로 금품을 공여했다고 진술하고 있다"고 했다.
또 이 전 부총장이 서울 구룡마을 우선수익권 인수를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청탁한 것을 두고 "비서실장에 직무에 속하지 않은 일"이라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구룡마을 우선수익권을 지닌 포스코의 당시 최대주주가 국민연금이고 그 주무기관이 보건복지부인 만큼 정부부처를 관할하는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은 이 전 부총장 수사 과정에서 방대한 양의 통화 녹음 파일을 확보했다. 이를 토대로 윤관석 의원과 노 전 실장 등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이날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부장 김영철)는 윤 의원의 자택 등 20여곳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이 전 부총장의 휴대전화에서 강래구 한국공공기관감사협회장이 "봉투 10개가 준비됐으니 윤 의원에게 전달해달라"고 하는 통화 녹음을 입수했다. 실제로 돈이 전달됐다는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노 전 실장이 이 전 부총장이 한국복합물류 상임감사로 취업하는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 등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다. 이 전 부총장에게 금품을 건넨 사업가 박 씨와 박 씨에게서 6000만원을 받은 노웅래 민주당 의원도 기소된 상태다.
원영섭 전 자유한국당 조직부총장(변호사)은 이날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받은 돈이 흘러간 곳이 있다"면서 "서울중앙지검 반부패 2부에서 검사 6명을 추가 보강받아 수사 중이다. 다시 새로운 시작"이라고 했다.
김진기 기자 mybeatles@pennmik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