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한복판에서 마약 음료수가 건네질 정도로 마약은 우리 일상에 성큼 들어와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범죄 영화나 해외 뉴스에서나 봤던 마약의 일상화는 남의 일이 아니게 된 상황이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는 2023년 기준 5155만명이다. 국제연합(UN)에 따르면 ‘마약 청정국’은 5000만 명당 마약사범이 1만 명 이하인 경우이다. 국내 마약사범은 수년간 연평균 1만명을 훌쩍 넘어 이제 연 2만명 시대를 바라보고 있다.

마약 청정국 지위를 상실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검수완박을 통해 검찰의 마약수사권을 박탈한 것도 마약 청정국 지위를 상실하게 된 주요 요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일상화되고 있는 마약, 10대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이유는 3가지

마약에 대한 접근 장벽이 크게 낮아지면서 유통이 늘어난 것뿐 아니라 다양한 범죄에 활용되는 양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특히 10대 청소년 마약사범이 급증하면서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법무부는 15일부터 대대적인 ‘마약 근절 캠페인’을 시작했다. 라이도와 지하철 포스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마약의 위험성과 심각성을 알릴 계획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마약과의 전쟁’을 위해 “대검찰청 강력부와 마약 부서의 복원이 필요하다”며 가칭 ‘마약·강력부’ 부활을 지시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마약과의 전쟁’을 위해 “대검찰청 강력부와 마약 부서의 복원이 필요하다”며 가칭 ‘마약·강력부’ 부활을 지시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마약과의 전쟁’을 위해 “대검찰청 강력부와 마약 부서의 복원이 필요하다”며 가칭 ‘마약·강력부’ 부활을 지시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한 장관은 12일 법무부 주례 간부 간담회에서 “지난 정부가 검찰이 마약 범죄를 직접 수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과정에서 대검 강력부를 반부패부와 통폐합하고 마약 부서와 조직범죄 부서도 마약조직범죄과로 축소해, 국가 자산인 검찰의 마약 범죄 대응 역량이 크게 훼손됐다”며 “지금 막지 못하면 나중엔 회복이 불가능한 상황이 될 것이고, 이 시기를 돌아볼 때 우리 모두가 정말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에 따르면 올해 마약사범은 역대 최대 수준일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 1만 6153명이던 마약사범은 2021년 1만8395명으로 늘어났고, 올해 1∼2월 마약사범은 역대 최다를 기록한 지난해 동기(1964명) 보다도 32.4% 늘어난 2600명으로 집계됐다.

특히 10·20대 마약사범의 증가세가 심상치 않다. 전체 마약 사범 중 10·20대 비중은 2017년 15.8%에서 지난해 34.2%로 5년 만에 2.4배로 늘었다. 그 중에서도 10대 마약 사범은 2017년 119명에서 작년 481명으로 4배 증가했다.

10대 마약 사범은 2017년 119명에서 작년 481명으로 4배로 증가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10대 마약 사범은 2017년 119명에서 작년 481명으로 4배 증가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이처럼 청소년들의 마약 문제가 급격하게 증가한 데는 청소년들이 접하기 쉬운 일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와 SNS에서 무분별하게 노출되는 콘텐츠의 영향이 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동훈이 시작한 ‘마약과의 전쟁’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범죄자들에 대한 단속만으로는 부적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마약을 합리화해주거나 미화하는 문화 콘텐츠에 대한 대응전략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① 마약을 미화한 미국 대중문화의 악영향

마약상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뒤 제조·유통 과정을 자세히 묘사한 미국 드라마와 영화는 지난 몇 년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마약이나 마약상을 다룬 드라마는 소재가 자극적이고 흥미진진해 인기가 식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고등학교 화학 교사가 마약을 제조하는 ‘브레이킹 배드’와 평범한 주부가 대마 공급원이 되는 ‘위즈’ 등이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특히 미국의 최고 인기 드라마로 꼽힌 HBO '유포리아'는 사상 최다 트윗 수를 낳은 드라마로, 10대 고교생이 펜타닐 등 각종 마약을 투약하며 성적 탐닉과 범죄에 빠져드는 내용이다. 2019년 처음 선보이고 지난해 ‘시즌 2′가 나온 이 드라마의 제목은 ‘극단적 희열’이란 뜻이다. 맥락상 마약 중독 상태를 뜻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드라마가 실제로 미 10대들의 현실을 담은 것인지, 청소년의 호기심을 자극해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과장된 연출인지에 대해서 갑론을박이 일었다. 특히 주인공인 루가 ‘좀비 마약’ 펜타닐에 중독된 뒤 재활센터에 들어가 회복·치료되는 내용이 지난해 방영되자 큰 논란이 제기됐다. 드라마와 달리 현실에서는 쉽게 치료되지 못하고 약물 과용으로 죽는 경우가 허다한데 ‘10대 마약 중독을 미화’했다는 비판이었다.

2021년 시작돼 지난 1월 시즌 2가 나온 넷플릭스 시리즈 ‘지니 앤 조지아’에도 15세 여고생 주인공의 남자친구로 잘생긴 고교생이 마리화나를 교과서 사이에 숨겼다 피우는 장면이 수시로 나온다. “친한 친구가 죽은 이후 마음의 문을 닫았다”면서 우수에 찬 표정으로 대마초를 피워 호기심을 자극한다.

게다가 이 대마초를 압수한 엄마마저 다른 여성과 서로 고충을 토로하며 그걸 나눠 피운다. 미국에선 기호용 마리화나와 대마가 뉴욕 등 18개 주에서 합법이어서 어느 정도 일상적인 장면으로 여겨지지만, 마약류 일체가 금지된 우리나라에서는 문제적 장면에 해당한다.

시민단체 미국중독센터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미 TV 에피소드 7만여 건을 분석한 결과, 마약을 소재로 삼은 장르는 코미디가 41%로 가장 많고 범죄물과 드라마가 각각 17%였다. ‘마약이 재미있는 개그 소재로 긍정적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패션계에서 많이 쓰이는 ‘헤로인 시크(heroine-chic)’라는 용어는 더욱 ‘마약 권하는’ 대중문화의 현주소를 반영하고 있다. 깡마르고 퀭한 얼굴의 모델들이 화려한 클럽이나 밀실을 배경으로 몽롱한 표정이나 널브러진 자세를 취한 모습을 뜻하는 용어가 헤로인 시크이다. ‘마약중독자처럼 쿨하고 아름답다’는 뜻의 이러한 용어가 10대들의 마약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② 최근 3년 간 국내 OTT 콘텐츠 21%는 마약 등 다룬 청소년 관람 불가 판정 받아

지난 3년간 공개된 OTT 콘텐츠 중 21%가 마약을 포함한 자극적 소재를 다룬 ‘청소년 관람 불가’ 판정을 받은 작품인 것으로 집계됐다. ‘청소년 관람 불가’라고 관람 등급이 분류돼 있지만, 청소년들이 우회 통로로 이를 접하는 건 어렵지 않다. 유튜브에 올라온 여러 축약 콘텐츠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청소년들의 모방 위험성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학교 폭력 문제를 다룬 OTT 드라마 ‘더 글로리’의 가해자 중의 한 명으로 마약중독자가 등장했고, 뛰어난 연기력으로 화제가 된 바 있다. 이 배우가 마약 복용 상태에서 환각을 보거나 난교를 암시하는 장면이 상세히 묘사됐다.

OTT를 통해 방영된 6부작 시리즈 ‘수리남’ 역시 3대 마약으로 꼽히는 코카인이 주된 소재였다. 배우 황정민, 하정우를 비롯해 박해수, 조우진, 유연석 등 연기파 배우들이 주연을 맡아 제작 단계부터 화제를 모았다. 추석 연휴 기간 중 ‘수리남’을 시청한 국내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신파나 억지 로맨스를 빼고, 스토리의 흡입력만으로 관객을 사로잡은 수작”이라는 평가가 나온 바 있다.

국내 OTT 시즌 (seezn) ‘소년비행’은 부모에게 마약 운반 수단으로 이용당한 10대 청소년의 이야기를 다뤘다. ‘꿈 대신 대마를 키웠다는 자극적인 문구로 청소년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에 대해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환각 상태를 몽환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자칫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동경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만들 수 있고, 성숙한 의식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청소년들이 이런 장면을 모방의 대상으로 삼을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10대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이 마약을 하는 장면을 자주 접하게 되면, 마약에 대한 경계심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10대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이 마약을 하는 장면을 자주 접하게 되면, 마약에 대한 경계심이 무너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특히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이 마약을 하는 장면을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접하다보면, 마약에 대한 경계심이 무너질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는 지적인 셈이다.

③ SNS에 넘치는 마약 관련 콘텐츠와 판매 글

최근 인터넷에는 ‘마약 체험’ ‘마약 후기’ 같은 마약 관련 게시물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자극적인 마약 관련 콘텐츠가 인기를 끌기 때문이지만, 한편으로는 이미 일반인에게 익숙해졌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점에서 전문가들은 ‘마약 일상화’ 현상이 10대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10대들이 주로 접하는 동영상 공유 플랫폼 ‘틱톡’에서는 코카인을 가사로 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코카인 댄스’가 유행했다. 마약 퇴치 공익 광고에 출연했던 유명 연예인도 코카인 댄스를 췄다.

10대들이 마약 관련 콘텐츠를 쉽게 접하면서 마약을 쉽게 구매하고 판매책으로도 이용되는 사례가 급증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트위터에서 마약 관련 은어를 검색하면 마약을 판매한다는 글이 1분에 한 번꼴로 올라온다. 보안성이 강한 텔레그램에서는 마약을 판매하는 사람의 텔레그램 계정이 공공연하게 드러나 있다.

트위터에서 대마초를 뜻하는 은어 ‘떨’을 검색하면 1시간 만에 70건 이상을 검색할 수 있다. 필로폰을 뜻하는 ‘아이스 작대기’도 61건 이상 검색된다. 1분에 1건 이상이 검색되는 셈이다.

마약청정국 지위를 상실한 점도 문제지만, 10대 청소년 마약사범이 급증하는 데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마약청정국 지위를 상실한 점도 문제지만, 10대 청소년 마약사범이 급증하는 데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전문가들은 일상생활에 범람하는 마약 관련 콘텐츠를 방치하면 10대들에게 ‘마약을 하고 싶은 분위기’가 강력하게 전달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박영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중독재활센터장은 “마약을 재밌고 신기하게 표현하는 것은 강력히 막아야 한다”며 “특히 온전한 판단력을 갖추지 못한 청소년 등에게 ‘마약을 하면 정말 좋을까’ 하는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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