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우크라이나에서 마이단 사태로 친러 정권이 전복되고 친서방정권이 들어섰을 때 린지 그레이엄 미 상원의원이 한 말이 있다. 그는 2014년 7월 27일 미 CNN에서 러시아는 이태리 정도의 경제규모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서방진영이 러시아에 대해 경제제재를 단행하면서 러시아쯤이야 이태리정도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으니 별 문제될 게 없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었다. 2013년 세계은행 통계에 따른 국가별 명목 GDP는 미국, 중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브라질, 이태리, 러시아, 이태리, 인도의 순이었다. 린지 그레이엄 의원이 이 말을 한 뒤로 러시아의 경제력 하면 이태리 수준이라는게 거의 정설로 굳어진 상식이 됐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특수군사작전이 시작된 이래 금방이라도 무너질 줄로만 알았던 러시아 경제는 다소간의 어려움을 있지만 잘 견디고 있다. 이태리 정도의 경제력이면 진작에 무너졌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The National Interest는 편집장 Carlos Roa명의의 눈에 띄는 칼럼을 4월 17일자에 게재했다. “이제 러시아 경제를 이태리와 비교하는 것을 그만둬도 될까요”란 제목의 칼럼이었다. 비교자체가 잘못됐으며 이는 서방 정책입안자들의 무지를 드러낼 뿐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가 집단서방의 힘과 비교될 때 그저 미약할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National Interest는 러시아 경제가 통계치처럼 작고 별게 아니라면 그동안 부과된 제재를 어떻게 견뎠겠느냐고 의문을 제시하면서 러시아 경제가 반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선언은 빗나갔다고 전했다. 또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재무장관은 서방의 목표가 러시아경제를 붕괴시키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 또한 실현되지 않았다고 이 잡지는 지적했다. 또 재넷 옐런 미 재무장관은 서방의 제재가 미국 달러 패권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했는데 경제가 이태리만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어떻게 봐야 할지도 National Interest는 반문하고 있다. 

4월 17일자 National Interest.

 

단순 수치상으로는 그레이엄 의원의 말도 정확해 보인다. 러시아와 이태리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국가의 경제 규모와 힘을 측정하는 데 선호되는 방법인 명목 국내 총생산GDP 측면에서 서로 유사하다. 명목 국내 총생산GDP는 주어진 기간 내에 한 국가에서 생산되거나 판매되는 모든 상품, 서비스의 총 비용을 결정해 계산된다. 세계은행 데이터에 따르면 2013년 러시아의 명목 GDP는 약 2조 2,900억 달러, 이태리는 약 2조 1,400억 달러였다 2021년 초까지만 하더라도 러시아의 명목 GDP는 약 1조 7800억 달러인 반면 이태리는 2조 1100억 달러였다. 

그러나 비교의 오류는 환율과 구매력 평가PPP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프랑스의 저명한 경제학자 자크 사피르는 PPP로 측정한 러시아의 GDP는 2013년 3조 7,400억 달러, 2021년 4조 8,100억 달러로 이태리 보다는 독일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독일의 구매력 평가 GDP는 2013년 3조 6,300억 달러, 2021년 4조 8,500억 달러였다. 그러면서 이태리의 구매력 평가 GDP는 2013년 2조 1,900억 달러, 2021년 2조 7,400억 달러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PPP수치 조차도 러시아 경제력의 중요성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다. 자크 사피르는 정책 저널 American Affairs에 기고하 에세이에서 그의 분석들 더욱 확장했다. 그는 PPP가 전략적으로 지정학적 문제가 위태로울 때 러시아 경제의 진정한 중요포인트를 반영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사피르는 지난 50년동안 서구경제가 갈수록 서비스 부문에 지배돼 GDP계산에서 점수가 높아졌지만 이번 분쟁에서 서비스는 중요성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현재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물리적 상품의 생산으로 그 기준에 따르면 러시아 경제는 독일 보다 강한 것은 물론이고 프랑스보다는 두 배 이상 강하다고 사피르는 말했다. 또 원유, 가스, 백금, 코발트, 금, 니켈, 인산염, 철, 밀, 보리, 귀리의 주요생산국으로 세계 에너지 원자재 무역에서 러시아의 지배적 위치는 더욱 이점을 제공한다고 사피르는 지적했다. 그리고 그 이점 덕분에 제재에 견딜수 있고 더 이상 서방의 압력에 겁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The National Interest의 편집장 Carlos Roa는 그레이엄은 정치인이니 잘못 판단할 수 있지만 경제학자나 외교정책 전문가들은 그래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문가들 사이에서 러시아와 이탈리아를 대비하는 버릇이 지속된 것은 서구 서비스 부문의 그럴듯해 보이는 매력때문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명목상의 부와 생산성, 그리고 자본 집약적 부문의 눈부신 성장은 정치적,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선호대상이었다고 말했다. 빅텍의 성장에 따라 인터넷에서 번창한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이 미국의 국익을 실현하는 통로가 됐고 무형의 그 가치를 계량화하는 바람에 착시현상이 나타났다는게 National Interest의 주장이다. 

서비스 부문에 대한 이 같은 집착은 에너지, 농업, 자원추출, 제조업 같은 과거의 노동 집약적 산업을 구식 유물로 보는 경향을 낳게 된다. 그리고 이런 왜곡된 관점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직면해 곧바로 그 폐해가 드러났다. 전쟁은 미국의 형편없는 생산능력을 노정시켰다. 단적으로 말해 제조업에 등한시한 결과 우크라이나에 제공할 무기를 만들어내는 데 애를 먹고 있는 것이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영국의 경우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무기 재고를 채워넣고 군사력을 재정비 하는데 10년을 걸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게다가 유럽전체가 저렴한 러시아 에너지로부터 단절돼 급속한 탈산업화라는 무시무시한 전망에 직면해 있다.

National Interest는 러시아의 경제력을 지금까지 서구가 얼마나 심각하게 과소평가해왔는지를 인정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또 정책입안자들은 현재의 경제정책운영 방식 자체를 재고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리고 막강한 경제력을 가진 국가를 다룰 때 제재는 만병통치약이 아리라고 강조했다. 

러시아와 이태리의 비교 신화는 한국도 참고해야 할 대목이다. 한국인들도 흔히 세계의 주요 경제국으로 종종 러시아에 대해 우월하다는 착시에 빠져 있다. 심지어 한국이 강대국이고 러시아가 약소국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는 모양이다.

박상후 객원 칼럼니스트(언론인 · 前 MBC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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