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철 객원 칼럼니스트

윤석열 대통령은 4.19 혁명 기념사에서 "피와 땀으로 지켜온 민주주의가 민주주의 운동가 또는 인권 운동가 행세를 하는 사기꾼에게 농락당해서는 안 된다"면서 민주주의를 바르게 지켜나가야 한다고 호소했다. 입법권 남용으로 여야 간의 극단적인 대립이 벌어지는 국회의 현실이 보여주는 정치 리더십의 부재 현상이 배경에 있다고 보인다. 4.19가 혁명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은 리더십 교체라는 정치 지형의 변화를 초래하였기 때문이다. 정치리더십은 모두를 위한 공화국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으로서 정치리더를 포함한 정치 주도 세력에서 나오고 정당 정치를 통해서 구체화된다.

탄핵 정국과 그 후 문재인 정권 치하 5년의 정치 암흑기는 정치 리더십의 소멸을 보여주었다. 세력으로서의 보수의 몰락이 탄핵 사태로 가시화된 이후 50년 집권을 다짐하던 진보는 5년만에 몰락하였다. 조국 사태, 윤미향 사태, 대장동 사건은 진보 진영의 정당성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렸다. 윤 대통령은 대립하는 진영간의 힘의 균형으로 유지되어온 제6공화국의 정당 정치가 무너진 현실을 지적한 것이 아니었을까?

정치의 변화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21세기 초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마녀사냥에 가까운 광우병 선동 시위에 이은 세월호 선동사건 그리고 탄핵 촛불에 이르는 지난 20년의 광장 정치는 80년대말 90년대초에 광장으로 나선 전대협과 한총련 세대가 제6공화국 성립 이후 30년의 시간이 흘러서 사회 주류가 된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문재인 정권은 촛불 시위를 혁명이라고 과장했지만 시간의 경과에 따른 주류 정치 세력의 교체로 볼 것이다.

4050세대가 된 586 세대가 사회 주류가 되어 시대의 전면에 나서자 마자 바로 조국 사태 등으로 자녀세대인 2030세대의 반발에 부딪치면서 그 정치적 정당성이 한번에 허물어졌다. 권력은 적법성을 뒷받침하는 정당성을 상실할 때 무너진다. 정당이 제대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여 정당성을 회복하지 못할 때에 파벌의 모습만을 남기게 된다.

문재인 정권은 대한민국의 제도적 기반을 철저하게 파괴함은 물론이고 반대편을 탄압하고 자기편만을 위한 정치라는 철저한 분열 정책으로 정당 정치를 파괴하였다. 문재인 정권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표현인 내로남불처럼 가치와 기준도 내 편, 네 편으로 갈라진다. 파벌은 결국은 인물 정치, 팬덤 정치로 나아간다. 정책이나 지향해야 할 가치가 아니라 인기에만 의존하고, 정치 지도자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거나 심지어는 우리 편이니까 범죄도 옹호하는 상황에 이르면 정치를 수행해야 할 정당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정당성을 상실한 파벌 간의 대립은 사회 전체를 파벌화한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나라에서 살아간다. 진영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세상을 보고 실제 세상 돌아가는 것을 듣지도 보지도 못하게 된다. 대장동 사건 이래 민주당의 돈봉투 사건 등 부패 사건이 연일 폭로되어도 반성의 모습을 보기 어렵다. 오히려 다수 의석을 내세워서 행정부 발목잡기의 각종 입법안을 밀어붙이고 정당한 법집행을 정치탄압이라고 주장한다.

정치세력으로서 기능하는 정당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방어하고 옹호하고자 하는 것은 정당이 추구하는 이념이나 가치가 아니다. 정당성 붕괴 후 그런 것은 남아있지 않다. 윤 대통령의 지적은 정당의 오늘날 모습에서 모든 국민이 느끼는 정당성의 상실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사기꾼은 남을 속이기에 앞서서 자기를 속임으로써 스스로를 정당화하면서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려 한다. 이러한 모습은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공화국의 국민에 대한 저항이고 이러한 저항이 모두를 위한 공화국의 기초를 허물고 있다.

미국 독립혁명기의 연방제도를 지지한 '페더럴리스트 페이퍼'는 "파벌 성향은 인간의 본성에 있는 것으로서 그 원인을 제거할 수는 없으나 동일한 정치적 열정과 이익이 모아짐으로써 모략과 음모가 수행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 세력의 영향력을 조정하기 위한 견제와 균형을 모색하고 시민의 공공심을 유지하여 민주정이 파벌 간의 싸움판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공화체제를 수립하고자 하였다. 민주정에서 정치적 파벌은 불가피하지만 그들이 파벌로서 작동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공화국을 유지하는 길이다.

민주정의 진전과 다원주의 확산에 따른 다양성의 증진 상황, 그리고 미디어의 발달과 네트워크화된 시대에 개인이 직접 참여하는 정치 환경은 실로 대중의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바로 대중의 시대는 대중의 편견이나 변덕으로 균형 잡힌 질서를 형성해 나가기가 어려운 시대다. 그럴수록 정치 리더십이 바로 서야 하고, 또 그 역할을 제도화된 정당이 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과제는 새 시대를 위한 공화국의 정치 리더십을 만들어내는 일일 것이고 그 중심에는 무너진 정당 정치의 복원이 있다.

암울한 정치 현실의 본질은 정치 리더십의 부재다. 국민은 공화국의 정당이 아니라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파벌이 제 자리 지키며 정치를 한답시고 혼란을 만들고 국민에게 저항하는 양상 등에 대해 불안할 수 밖에 없다. 윤 대통령이 말하고 있는 '잘못된 운동가에서 속아왔다'는 표현은 현실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을 대변해주는 것이다. 국회에서 정치 개혁이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선거구제 개편을 고려하는 것 이전에 정치 리더십이 바로 서고 정당이 제대로 기능하도록 해야 한다.

내년 4월 10일은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다. 선거의 계절은 다가오고 서로가 서로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시기가 되었다. 한국의 과잉 정치 상황은 정치에 모든 것을 걸고 기대하면서 모든 문제를 정치 문제로 환원시키지만 실제로는 정치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모든 것이 정치이지만 실제로는 제대로 된 정치가 기능하지 못하는 것이다. 정치 리더십이 제대로 작동하지 아니하며 이를 뒷받침할 제도인 정당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낙관적으로 보자면 리더십이 무너진 상황은 오히려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내년 총선을 통해 정치 리더십이 바로 세워지기를 기대한다. 지난 30년의 제6공화국을 넘어서는 공화국의 전환기에 정당 정치가 복원되고 국회가 정상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인철 객원 칼럼니스트(변호사, 전 MBC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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