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라는 단체의 회원 등이 7일 오후 서울 을지로에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석방을 촉구하며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2019.12.7(사진=연합뉴스)
일명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라는 단체의 회원 등이 7일 오후 서울 을지로에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석방을 촉구하며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2019.12.7(사진=연합뉴스)

올해 적발된 일련의 간첩단 사건을 보면 관련자들이 하나같이 특정 정당 당원임을 알 수 있다. 바로 진보당(구 민중당)이다. 북한은 이들 간첩단들에게 지속적으로 진보당을 장악하라는 지령을 하달한 바 있다. 북한은 왜 특정 정당에 집착하는가? 이의 대답은 북한이 1990년 초부터 주력하고 있는 이른바 진보정당 구축공작에서 찾을 수 있다.

김일성은 일찌기 남조선혁명 수행을 위해선 혁명의 참모부인 ‘전위당’(비합법 지하당) 구축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바 있다. 이는 레닌의 당 조직론에 입각한 것이다. 레닌은 한 나라의 공산혁명을 위해선 소수 정예의 직업혁명가’로 구성되는 전위당 건설이 최우선 혁명과업이라고 강조하였다.

북한이 남한 내 지하당 구축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첫째, 남한혁명을 추진하는 혁명의 주력군을 편성하는 거점인 동시에 결정적 시기에 혁명을 지도할 ‘혁명의 사령탑’이라는 것이며, 둘째, 남한혁명을 남한 자체의 혁명으로 위장하기 위함이다. 남한혁명을 위해서 남한 인민 스스로 독자적인 당을 결성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혁명을 완수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으나, 이는 거짓이다. 북한 정권 수립 이후 남한에 구축된 지하당들은 모두 직접 북한의 지령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기 결성된 지하당들은 독립당이 아니라 북한의 대남혁명을 위한 남한 내 ‘연락당’ 정도의 위상을 지녔다.

김일성이 ‘혁명적 전위정당’ 구축을 재강조한 사례는 196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일성은 1961년 9월 11일 개최된 제4차 조선노동당대회에서 남한에 ‘4.19’ 라는 혁명적 정세가 조성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남한혁명으로 유도하지 못한 근본요인이 당시 남한 내 혁명을 지도할 ‘혁명적 당’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대남공작 지도부(조선노동당 대남총국)에게 빠른 시일 내에 혁명적 전위당(지하당) 건설할 것을 지시하였다. 그 결과 1964년 통일혁명당(통혁당)이 결성된 바 있다.

북한은 1990년대에 들어와서 혁명적 전위정당이라는 지하당 공작 외에 합법공간에서 북한의 대남혁명전략을 수행할 ‘합법적 전위정당’ 즉 이른바 ‘진보정당’의 구축을 위해 주력해왔다. 그 배경은 1980년 대부터 꾸준히 확산된 종북 주사파세력 등이 1990년대 들어서 우리 사회 각계각층에 안착하였고 이들의 영향력이 사회 전반에 확대되자 자신감을 갖고 합법적인 공간에서 혁명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정당 결성에 매진하게 되었다.

북한은 1990년 초 대남 간첩공작부서인 「사회문화부」(현 문화교류국)에 ‘정당지도과’를 신설하고  진보정치세력 양성지원, 진보정당 창당 지원 및 진보정당 침투․장악 등의 공작을 전개해 왔다. 이른바 진보정당 구축 공작을 실행한 것이다. 여기서 진보정당은 ‘전술당’이며, 지하당은 ‘전략당’의 위상을 갖는다. 북한은 전술적 차원에서 한국의 변화된 정세에 부응하여 합법공간에 진보정당을 구축하여 활용하고 혁명의 주·객관적 상황(이른바 결정적 시기)이 조성되면 혁명의 참모부이자 사령탑인 혁명적 전위정당인 지하당 주도로 봉기하여 혁명을 완수하려는 것이다.

북한이 1990년대 이래 본격적으로 추진한 ‘진보정당’ 구축공작은 1991년 민중당 창당공작과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및 2011년 진보대통합당(통합진보당) 공작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북한은 1990년 2월 간첩 김낙중에게 남한 내 합법적인 북한의 전위정당을 건설하라고 지령했고, 1990년 10월에는 민중당 창당에 참여하여 당권을 강화하고 지령한바 있다. 제14대 총선에서 민중당이 의원배출에 실패하여 해산되자 1992년 6월에는 새로운 혁신정당 재건에 진력하라고 지령하였다.

또한 1992년 중부지역당 사건에 밝혀졌듯이 거물급 여간첩 이선실이 10년간 국내에 암악하며 민중당 창당에 직접 개입한 바 있었다. 북한은 민중당에 이선실 망과 별개로 간첩 손병선 망을 구축하는 치밀함을 보여주었다. 1999년 민족민주혁명당 사건을 보면 북한은 진보적 상층인물을  포섭할 것을 지령하였다. 자칭 진보정당이라는 민주노동당에는 당국이 포착한 것만 4개의 서로 다른 간첩망이 침투해 있었다. 민혁당 이석기 망, 간첩 강태운(민주노동당 고문) 망, 민주노동당 서울시당을 장악한 일심회 망, 민주노동당 인천시당을 장악한 왕재산 망이 그것이다. 2011년 2월에는 왕재산 간첩단에게 진보대통합(진보정당의 통합 의미) 완성을 지령하였고, 2011년 12월 통합진보당이 창당이 실현된 바 있다.

북한은 이른바 진보정당 구축공작을 개시한 지 30년이 지난 현재에도 제주간첩단(ㅎㄱㅎ), 창원간첩단(자통 민중전위), 민노총 침투망 사건에서 보듯이 여전히 진보당 포섭과 장악에 주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이 2002년초 국내 지하운동권에서 하달한 ‘진보정당은 통일전선의 합법적 주체세력이다’이라는 교양(학습)문건을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 ... 남측에서 진보정당은 남측사회에 대한 과학적 성격규정에 의거하여 자주민주통일을 강령으로 하며 기층민중과 중간세력을 모두 포괄하는 통일전선적 합법정당이 되어야 한다. 진보정당은 국민대중을 진보강령으로 교양하고 대중조직과 통일전선을 강화하며 자주민주통일투쟁으로 동원하는 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 우리에게 진보정당은 전위당과 민족민주전선의 합법정치부대이다. 민족민주세력의 정치적 별동대인 진보정당은 의회나 선거, 일상활동에서 그 대변자 역할을 한다. 진보정당은 전위당의 최저강령, 민족민주강령으로 기층민중과 중간세력을 묶어세우는데서 민족민주운동을 대중화하는데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남측의 식민예속화와 정치불신이 심화될수록 진보정당의 필요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6.15공동선언과 조미공동코뮈니케 이후 진보정당은 더욱 절박한 요구로 되었다. 앞으로 민족통일기구가 수립되고 일반민주주의가 실현되며 단계적 미군철거가 단행되면 진보정당은 비약하게 될 것이다. 진보정당만이 미군철거와 보안법철폐, 연방제통일을 강령으로 삼으며 대안정치세력으로 부상할 수 있다.”(2002.7.27. 통일여명 141호 중)/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편집=조주형 기자)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편집=조주형 기자)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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