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서울 연서중에서 치러진
'기사·산업기사 실기시험' 
한국산업인력공단 실수로
609명 답안지 인수인계누락
전량 파쇄, 황당 사고 
산인공, 6월 1~4일 재시험 
문책·줄소송 이어질 듯
금전적 보상 방안과 
재발방지대책 마련 중
수험생 "말문 막힌다" 분통

어수봉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왼쪽 네번째)과 임직원들이 23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사과하고 있다. [연합]
어수봉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왼쪽)과 임직원들이 정부세종청사에서 답안지 파쇄사고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연합]

국가기술자격 시험에 응시한 609명의 답안지가 착오로 채점 전에 파쇄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23일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서울 은평구에 있는 연서중학교에서 시행된 '2023년 정기 기사·산업기사 제1회 실기시험'의 필답형 답안지가 채점 전에 파쇄됐다.

공단은 시험을 준비해 온 응시자 609명에게는 재시험 기회를 제공하기로 했지만, 난이도·변별력 등을 두고 기존 응시자와 피해 응시자 간 불만제기 등 논란이 불가피해 대규모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또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가자격시험 공신력이 치명상을 입게됐다.

서울 지역 시험장 가운데 한 곳인 연서중에서는 건설기계설비기사 등 61개 종목의 수험자 609명이 시험을 봤다.  시험종료 후 답안지는 총 18개 포대에 담겨 공단 서울서부지사로 운반됐다.

그러나 18개 포대 중 17개 포대만 답안지 보관용 금고에 정상 입고되고 나머지 한 개는 담당자가 남은 시험지라고 오인해 창고로 옮겨졌고 다음날 파쇄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전국에서 이 시험을 본 15만1797명 가운데 609명이 공단의 잘못으로 시험을 다시 한번 치러야 하는 황당한 상황에 놓였다.

공단 본부는 답안지 인수인계 과정에서도 이를 인지하지 못했고, 한 달여간 답안지가 없는 상황에도 담당 직원들은 정상적으로 인수·인계를 마쳤다고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채점 과정에서야 609명의 답안지가 사라진 사실을 지난 20일 파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단은 부랴부랴 뒤늦게 조사에 착수했지만 609명의 답안지는 잔여문제지 등 인쇄물과 함께 이미 파쇄된 이후였다.

609명의 응시자는 이 같은 사실을 모른 채 시험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공단은 수험자의 공무원시험 응시 등 자격 활용에 불이익이 없도록 다음 달 1∼4일 추가시험 기회를 제공하기로 했다. 내달 1∼4일 시험을 볼 수 없는 수험자는 내달 24∼25일에 치를 수 있다. 이들에 대한 합격자 발표는 내달 27일 이뤄진다.

따라서 공단은 각기 다른 6번의 시험 문제를 다시 출제해야 한다. 그러나 이 경우 각각의 시험 난이도를 어떻게 조절할 것인지, 또 이미 시험을 정상적으로 치른 15만여 다른 수험자들과 형평성을 어떻게 맞출지 등 복잡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재시험이 기존 시험과 다른 난이도로 출제될 경우 논란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재시험을 치른 이후 그 결과에 따라선 응시자들의 대규모 소송전이 제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음달 10일과 14일 국가·지방직 공무원 시험이 예정돼 있는데, 기사 자격 보유에 따라 가산점은커녕, 응시자격도 갖추지 못하는 수험생이 발생할 수 있다.

더욱이 국가기술자격 시험은 대학 졸업예정자 또는 졸업생들이 관련 직무로 취업하기 위해 필수적인 자격으로 통하며 '취업 등용문'으로도 불린다.

한 응시자는 "가채점 결과 합격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재시험을 봐야 한다니 말문이 막힌다"며 "다음 달 초까지 열흘 남짓 다시 공부해서 합격할 자신이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대규모 손해배상 소송이 예상된다는 지적에 공단 관계자는 "손해가 최대한 복구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며 "되도록 내달 1∼4일 시험에 많이 응시해 당초 예정된 합격자 발표일(6월 9일)에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해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다"고 답했다.

공단은 609명에게 교통비 등을 지원하고, 추가 보상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이들 중 재시험을 보지 않는 사람에게는 수수료를 전액 환불한다.

공단은 책임자를 문책하는 등 엄중히 조치하고, 유사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국가기술자격 시행 프로세스 전반에 대해 재점검하기로 했다.

어수봉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은 23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자격검정 관리를 소홀하게 운영해 시험 응시자에 피해를 입힌 점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며 "이번 사고에 대해 철저히 조사해 잘못된 부분을 확인하고 저를 비롯해 관련 책임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경동 기자 weloveyou@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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