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를 돕는 시민 단체가 징용 피해자들에게 ‘명칭을 불문하고 실제 지급받은 돈 중 20%는 단체에 지급한다’는 내용의 약정을 맺은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더욱이 이 단체는 윤석열 정부의 ‘제3자 변제’ 해법을 반대해왔지만, 일부 피해자 유족이 이를 수용해 2억원이 넘는 판결금을 수령하자 ‘약정서를 근거로 돈을 내라는 내용증명’까지 보낸 것으로 확인돼 충격을 주고 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를 돕는 시민단체가 11년 전 약정을 근거로 피해자 가족들에게 배상금 일부를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낸 데 이어, 전화를 걸고 자택을 방문하고 독촉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채널A 캡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를 돕는 시민단체가 11년 전 약정을 근거로 피해자 가족들에게 배상금 일부를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낸 데 이어, 전화를 걸고 자택을 방문하고 독촉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채널A 캡처]

겉으로는 윤석열 정부의 ‘제3자 변제’ 해결책을 극구 반대하며 ‘일본의 사죄를 요구’해온 시민 단체가 뒤로는 피해자 유족들에 반강제적으로 ‘20% 약정금’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새삼 ‘돈을 밝히는’ 진보 진영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특히 채널A에 따르면, 이 단체는 내용증명을 보낸 이후에도 유족들이 이행하지 않자 전화를 걸고 자택을 방문하고 독촉까지 한 것으로 확인됐다. 시민단체 측은 "전화로 설명을 했지만 약정 내용을 모른다고 해서 문서를 통해 알린 것"이라며 "고인의 유지를 따를지 여부는 유족이 결정할 일"이라며 한걸음 물러섰다. 현재 유족들은 단체 측이 수차례 찾아가고 전화를 하고 있어 심리적 압박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민변 출신 변호사, 정신대 할머니와 징용피해자 배상금 20% 받기로 약정 맺어

지난 23일 조선일보의 단독 기사로 ‘2012년 10월 23일에 체결된 약정서’ 내용이 처음 알려졌다. 당시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과 미쓰비시중공업(나고야) 징용 피해자 5명은 약정을 맺었다. A4 용지 2장짜리 약정서에는 “이 사건과 관련해 손해배상금·위자료·합의금 등 그 명칭을 불문하고 피고로부터 실제 지급받은 돈 중 20%에 해당하는 금액을 일제 피해자 인권 지원 사업, 역사적 기념사업 및 관련 공익 사업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모임에 교부한다”고 적혀 있다.

약정서에 서명한 피해자들은 1992년 일본 법원에 소송을 먼저 제기했지만,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최종 기각됐다. 피해자들은 약정서에 서명한 다음날 광주지법에 소송을 제기했고, 2018년 11월 29일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하면서 원고 일부 승소를 확정했다.

시민모임이 약정서를 체결한 명분은 ‘피해자 인권 지원 사업, 역사적 기념사업, 관련 공익 사업’ 등이다. 지급받은 돈을 정한 대로 사용하고, 위임인들이 생존해 있는 동안 매년 1회 그 구체적인 사용 내역을 위임인들에게 통지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조선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이 약정서에는 민변 출신으로 피해자들의 법률 대리인인 이상갑 변호사가 수임인 대표로 이름을 올렸다. 피해자들은 약정서에 도장 또는 지장(指章)을 찍어 동의를 표시했다. 이상갑 변호사는 조선일보와의 통화에서 “금전적 배상을 받으면 여러 지원 단체 공익 변호사들의 활동 결과로 얻게 되는 건데 다른 공익 변론을 위한 재원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라며 “돈을 나누자는 취지가 아니다. 당사자들에게 다 설명했고 다들 흔쾌히 동의하셨다”고 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전화로 설명을 했지만 약정 내용을 모른다고 해서 문서를 통해 알린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사진=채널A 캡처]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전화로 설명을 했지만 약정 내용을 모른다고 해서 문서를 통해 알린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사진=채널A 캡처]

20%는 일반적인 성공보수보다 과도해...궁지에 몰린 상태에서 ‘원천징수’ 방식 적용

하지만 이 약정서 내용은 몇 가지 점에서 충격적이다. 우선 수수료에 해당하는 20%가 너무 과도하다는 점이다. 당시는 피해자들이 미쯔비시를 상대로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기 하루 전이었다. 시민단체의 탈을 쓰고 고령인 피해자들에게 20%의 수수료를 요구했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성공보수로 책정되는 수수료에 비해 과도하다는 지적이 첫 번째다.

둘째는 이들에게 20% 수수료에 대해 정확히 설명을 했을지도 의문이다. 처음에는 일본 법원을 상대로 소송을 했다가 소송이 각하돼 포기 직전의 피해자들이 광주지법에 소송을 제기하기 하루 전날이었기 때문에, 힘들고 지친 상태였을 것으로 관측된다. 설령 제대로 설명을 했다고 하더라도, 지식이 없고 힘없는 피해자들은 이들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겉으로는 연로한 피해자들을 돕는 척하면서 뒤로는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고 있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셋째, 해당 단체는 ‘피고로부터 지급받은 돈의 20%를 기부’할 것을 명문화한 약정에 대해 “사회적 참사 등 공익 소송에서 일반적으로 있어왔던 일”이라며 “원고들이 인권 단체, 활동가 도움을 받아 수령한 금액 중 일부를 다른 공익 사업 기금에 출연하는 건 오히려 더 많은 선례로 남도록 권장되어야 할 일”이라고 했다. 평생 강제징용 피해를 보상받기 위해 분투한 피해자들에게 보태주지는 못할망정, ‘기부’ 형식으로 수수료를 약정했다는 점에서 비판받고 있다. ‘기부’는 기부하는 사람이 마음이 내켜서 흔쾌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 하지만 피해자 유족들은 피해자가 이런 약정서에 서명했다는 사실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해당 단체가 금액을 요구하는 데 대해 당혹스러워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마지막으로 시민모임이 피해자들에게 약정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약정서에는 ‘미쓰비시가 법원 판결에 따라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더라도 피해자들이 아닌 수임인들이 우선 돈을 받아 20%를 지원 단체에 지급’하도록 되어 있다. 일종의 원천징수와 같은 방식이다. 이상갑 변호사는 ‘당사자들에게 다 설명했고, 흔쾌히 동의했다’고 했지만, ‘노령자 약취 유인 강탈’이라는 비판까지 제기되는 실정이다.

약정 맺은 ‘시민모임’, 윤 정부의 ‘제3자 변제’ 반대했지만 판결금 수령한 유족에게 20% 내라고 ‘내용증명’ 보내

피해자들과 약정을 맺은 ‘시민모임’은 2009년 3월 결성돼 강제징용 문제를 공론화하고, 피해자 후원과 소송 지원 등의 활동을 했다. 이후 시민모임을 계승한 비영리법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이 2021년 출범했다. 이사장인 이국언씨는 오마이뉴스 광주·전남 주재 기자 출신으로 시민모임 사무국장을 지냈다. 정부 해법에 반대하는 일부 피해자를 대신해 최근까지도 집회와 기자회견 등을 진행해 왔다.

피해자들과 약정을 맺은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을 계승한 비영리법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홈페이지. [사진=홈페이지 캡처]
피해자들과 약정을 맺은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을 계승한 비영리법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홈페이지. [사진=홈페이지 캡처]

약정서 존재 자체만으로도 진보 시민 단체의 민낯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충격적인데,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피해자와 11년 전 맺은 약정을 근거로 판결금의 20%를 실제로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단체는 윤석열 정부의 ‘제3자 변제’ 해법을 반대했지만, 일부 피해자 유족이 이를 수용해 2억원이 넘는 판결금을 수령하자 약정서대로 20%를 내라는 ‘내용증명’까지 보낸 것이다. 내용증명의 형식을 띤 ‘독촉장’이 아닐 수 없다.

조선일보 24일자 보도에 따르면,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의 감사인 김모 변호사는 지난 1일 판결금을 수령한 한 피해자 유족들에게 ‘약정금 지급 요청 공문’을 보내 “수령한 2억5631만3458원 중 20%인 5126만2692원을 시민모임에 보수로 지급하셔야 한다”며 “많은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광주·전남지부 출신으로 단체의 전신인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공동대표를 지낸 인물이다.

당시에 약정을 체결한 피해자 5명 중 3명이 세상을 떴다. 이 가운데 유족 일부가 3월에 발표된 정부 해법에 찬성해 지난달 중순 2억원이 넘는 판결금을 수령했다. 해당 단체는 유족들이 판결금을 수령한 직후 유족들에게 연락을 취해 금액 일부를 요구했는데, 이게 받아들여지지 않자 약 2주 만에 내용증명을 보낸 것이다.

2012년 10월 약정서를 체결한 피해자 5명 중 3명은 세상을 떴고, 이 가운데 배상금(판결금)을 수령한 유족에게 시민단체가 내용증명을 보냈다. [사진=채널A 캡처]
2012년 10월 약정서를 체결한 피해자 5명 중 3명은 세상을 떴고, 이 가운데 배상금(판결금)을 수령한 유족에게 시민단체가 내용증명을 보냈다. [사진=채널A 캡처]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윤미향 의원의 경우와 다르지 않아 보여”

이 단체의 전신인 ‘시민모임’이 결성된 2009년 이후 징용 문제를 공론화하고 피해자들의 소송을 지원하면서 내세운 명분은 그럴 듯했지만, 실제로는 한일간의 과거사 해결을 방해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단체의 약정서와 약정금을 돌려받기 위해 보낸 ‘내용증명’을 보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돌본다는 명목으로 후원금을 사적으로 유용한 혐의로 기소된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이 겹쳐 보인다. 한일 과거사 해결에 걸림돌 역할을 하면서 뒤로는 잇속을 챙겨왔다는 점이 너무나 똑같기 때문이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위안부 피해자들을 돕는다는 이유를 내세워 개인적 이익을 취한 윤미향 의원의 경우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며 “강제징용 피해 어르신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보상금을 빼앗아 간다면, 이것이 조폭들의 보호비와 무엇이 다르겠느냐”고 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