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 노조 일부 간부들이 하청 급식업체 젊은 여성 영양사를 회식자리에 불러 갑질을 행사했다는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기아차 노조가 분명하게 반성과 사과를 하기보다는 ‘피해 호소인’이라는 부적절한 용어를 사용하면서 책임자에 대해 상응하는 처벌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문제를 제기한 영양사가 소속된 하청 급식업체에 대한 압력 행사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보복에 나서려는 움직까지 보이고 있다.

기아차 노조 간부는 [사진=TV조선 캡처]
기아차 노조 간부가 하청 급식업체 소속 여성 영양사를 회식 자리에 불러 갑질을 행사했다는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사진=TV조선 캡처]

기아차 하청 급식업체 현대그린푸드 직원 A씨, 지난 16일 ‘술자리 갑질’ 의혹 폭로

이 사건은 지난 16일 직장인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현대그린푸드 직원 A씨가 ‘고객사 기아차의 갑질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리면서 알려렸다. 기아차는 현대그린푸드와 아워홈 두 곳과 급식 공급 계약을 맺은 상태이다.

A씨는 “급식업체인 우리는 고객들에게 만족스러운 한끼를 제공해야 하고, 고객사(기아차)의 복지담당은 직원들의 그런 만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그 노력이 협력사에 대한 갑질이라면?”이라면서 “고객사 복지, 총무팀 회식에 영양사들을 강제 참여”라고 폭로했다.

그는 “회식에서 ‘나는 여자가 따라주는 술 아니면 안먹는다’라며 영양사를 접대부 취급하며 술 따르게 함”이라며 “매 끼니별 식수, 식판 샘플사진을 연차, 주말 포함한 업무시간 외에도 보내야 함”이라고 주장했다. 또 “초면에 나이가 많든 적든 반말은 기본”이라고 전했다.

A씨는 “정말 일부분의 내용들이고 블라인드라는 힘을 빌려 누구라도 글을 올리고 싶었겠지만 협력사로서 고객사에 당할 보복이 두려워 모두가 망설였다”면서 “하지만 갑질의 정도가 나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아무리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힘쓴다지만 과연 요즘 시대에 걸맞는 사람일까? 이 글이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기아차 노조 간부가 [사진=TV조선 캡처]
올 초부터 지속된 기아차 노조 간부의 갑질을 견디다 못한 하청 급식업체 직원이 최근 직장인 익명 게시판에 억울함을 토로했다. [사진=TV조선 캡처]

현대그린푸드 B씨, “노조 복지간부가 갑질...내가 그린푸드 왕이라고 말해”

이 글에는 현대그린푸드 직원인 B씨가 “(한 직원은) 본인이 하는 게임에 모든 영양사들을 강제로 초대하고, 관리자들 앞에서 '내가 그린푸드의 왕이다'라고 말했다"라고 댓글을 달았다.

현대자동차 직원 C씨는 지난 18일 블라인드에 ‘기아차 노조간부 그린푸드 영양사 성희롱 갑질사태’라는 글을 올려 “총무팀 아니고 노조 복지간부”라고 주장했다. 기아차의 복지팀과 총무팀 회식이라고 말했으나, 사실은 노조 복지간부라는 설명이다. 또 “응~ 피해 호소인”이라고 적어, 피해자라고 인정 못하는 노조 측 태도를 비꼬기도 했다. 기아차 노조가 갑질 의혹 제기에 대해서 명확하게 사실관계를 규명하기보다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한 태도를 취하면서 갑질을 폭로한 당사자를 ‘피해자’가 아니라 ‘피해 호소인’이라고 규정한 것에 대해 비판을 가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경찰청 직원이 “노조 간부야? 총무팀 간부야?”라고 묻자 B씨는 “노조 간부래. 총무팀은 착한 사람들이었다고 그린푸드 누나가 댓글 달아줬음”이라고 답변했다. 경찰청 직원이 “근데 언제부터 피해 호소인이라는 말이 나온 거야”라고 질문하자, C씨는 “박원순 자살때부터 아님?”이라고 말했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성희롱 사건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뒤 변호인과 유가족 측이 고발자를 ‘피해 호소인’이라고 지칭한 것과 기아차 노조의 태도가 유사하다는 지적을 한 셈이다.

현대자동차 직원 C씨는 직장인 익명 게시판에서 '총무팀 아니고 노조 복지간부'라고 주장하며, '응 피해 호소인'이라고 적어 노조측 태도를 꼬집었다. [사진=블라인드 캡처]
현대자동차 직원 C씨는 직장인 익명 게시판에서 '총무팀 아니고 노조 복지간부'라고 주장하며, '응~ 피해 호소인'이라고 적어 노조측 태도를 꼬집었다. [사진=블라인드 캡처]

이번 사태의 뿌리에는 원청의 갑질 구조가 존재

이 같은 사태의 뿌리에는 ‘원청 갑질 구조’가 있다. TV조선 보도에 따르면, 기아차 화성 지부 직원은 1만 3000여명이고, 구내식당 한끼 식사 단가는 4500원 수준이다. 하루 두끼로 계산할 경우 월 매출이 35억원에 달한다. 급식업체인 현대그린푸드로서는 기아차가 엄청난 고객사이므로 막강한 권한을 가진 기아차 노조 간부들 앞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기아차 노조 복지 담당은 이같은 ‘갑을구조’를 십분 활용해 여성 영양사를 회식자리에 불러낼 수 있었던 것이다.

사태 본질 흐리는 기아차 노조, “노조는 부패집단 아니다”고 강변...술 따르기와 성희롱 의혹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 안해

그러나 기아차 노조는 사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 화성지회는 18일 소식지 ‘화성 함성소식’을 통해 “5월 16일 현대그린푸드 직원의 익명 게시판 갑질 피해 호소 글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사실 관계를 확인했다. 이는 피해호소인의 진심을 의심하거나 왜곡하려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1차 사실관계 확인 결과 금전 및 접대 등 어떠한 부정행위는 없었음이 확인되었다”고 주장했다. “노동조합은 부패집단이 아닙니다”라는 제목을 달기도 했다.

하지만 이같은 태도는 전형적인 ‘허수아비 논법’이다. 현대그린푸드 직원 A씨는 기아차 노조가 부패집단이라고 폭로한 적이 없다. 노조 복지 담당이 회식 자리에 여성 영양사를 강제로 불러내 술을 따르게 한 의혹을 폭로한 것이다. 강도 높은 성희롱 의혹이다. 그러나 기아차 노조는 성희롱 의혹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금전 및 접대와 같은 부정행위는 없었다고 오리발을 내민 셈이다.

“부끄럽지 않다. 식사질 개선 노력 멈추지 않겠다”...식사실 개선하려면 근무시간에 회의를 해야지 웬 술자리?

더욱이 18일 소식지에서 “노동조합은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고 있다. 식사질 개선을 위한 노력도 멈추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문제가 된 회식자리가 노조 복지 담당이 식사질 개선을 위해 하청 급식업체인 현대그린푸드 직원을 불렀다는 논리를 암묵적으로 내세운 것으로 보인다.

기아차 노조는 18일 소식지에서 "노동조합은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고 있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사진=TV조선 캡처]
기아차 노조는 18일 소식지에서 "피해 호소인께 정중히 사과한다"며 술 따르기와 성희롱 의혹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사진=TV조선 캡처]

26일 TV조선 보도에 따르면 기아차 노조 측은 6개월 동안 계속 제기해 온 해당 업체 문제점을 밝힌 것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기아 노조 관계자는 “우리가 지급하는 돈에 있어서의 그만큼의 식사 질이 나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전형적인 적반하장이다. 식사질 개선을 위해 현대그린푸드 여성 영양사를 부르려고 한다면 근무시간 중에 회사 사무실에서 회의를 갖는게 정상이다. 일과가 끝난 뒤 술자리에 불러서 술을 따르게 하는 것과 노조의 식사질 개선 노력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기아차 노조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따라서 노조가 식사질 개선 노력을 강조하는 것은 앞으로 현대그린푸드 측을 압박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번 사태로 인해 하청 급식업체가 부당하게 불이익을 겪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높다.

기아 노조, 열흘 만에 공식사과했지만 회사 측 처벌은 어려울 듯

다행스럽게도 기아 화성지회는 여론 악화를 의식한 것 같다. 지난 25일 소식지를 통해 “식당 관련 사업 중 과도한 언행으로 인해 급식업체 관계자 및 조합원들께 커다란 실망을 드렸습니다.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라고 밝혔다. 의혹이 폭로된 지 열흘만에 공식사과를 한 셈이다.

하지만 이 사과의 내용에도 사실 왜곡이 담겨 있다. ‘식당 관련 사업중 과도한 언행’이라고 일방적으로 사태를 미화한 것이다. 20대 여성 영양사를 특정해 술자리에 부른 게 ‘식당 관련 사업’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여성 영양사에게 “나는 여자가 따라주는 술 아니면 안 먹는다”라고 말한 것을 ‘과도한 언행’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억지에 불과하다. 그런 발언은 명백한 ‘성희롱’이기 때문이다.

기아차 노조가 이처럼 반성하지 않는 태도로 일관할 경우 기아차 노조원들에게도 부끄러운 일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아차 측은 자체 진상조사를 벌여서 징계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기아차 노조가 ‘과도한 언행’이라고 한 게 성희롱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측이 노조원의 성희롱 사실을 확인하고 징계를 하려고 해도 기아차 노조가 반발할 경우 징계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노조원 징계를 노조탄압이라고 반박하고 나오면 사측으로서도 곤혹스러울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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