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7일 미국으로 출국했던 이낙연 전 총리가 다음 달 중순 쯤 귀국한다. 미국 조지워싱턴대 방문연구원으로 1년여간 지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사법리스크 고조로 인해 내년 총선 때까지 대표직 사수를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과 맞물려 이 전 총리의 정치재개 여부에 대해 여야 정치권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오른쪽)가 2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조지워싱턴대에서 열린 '대한민국 생존전략' 출간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사회를 맡은 마크 리퍼트 전 주한미국대사. [사진=연합뉴스]
이낙연 전 국무총리(오른쪽)가 2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조지워싱턴대에서 열린 '대한민국 생존전략' 출간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사회를 맡은 마크 리퍼트 전 주한미국대사.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표가 공천권을 장악할 경우 대대적인 물갈이 가능성이 높다. 개혁공천을 명분으로 삼아 민주당을 명실상부한 ‘이재명의 당’으로 탈바꿈시키려는 시도를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재명 중심의 ‘친명계’와 이낙연 중심의 비명계 간 ‘공천 전쟁’ 가능성 점쳐져

하지만 이 같은 흐름에는 이낙연계 중진으로 꼽히는 박광온 의원이 원내대표에 당선됨으로써 변화가 생겼다. 박 의원은 경선 과정에서 ‘통합론’을 내세우며 친명계와 비명계 간의 화합과 단합을 강조한 것이다. 이 같은 통합론이 민주당 현역의원들의 표심에 먹혀들었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친명계가 공천권을 독점적으로 행사해서도 안되고 그럴 가능성도 적다는 게 민주당 현역 의원들의 판단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낙연 전 총리가 귀국해서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을 재개할 경우 이 대표와 친명계의 힘은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재명 대안 세력의 구심점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 대표를 중심으로 한 친명계와 이 전 총리를 주축으로 한 비명계 간의 치열한 공천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낙연, 이재명보다는 윤석열 정부 외교안보 정책 비판에 주력?

그러나 이 전 총리는 이재명 대표 체제보다는 윤석열 정부에 대해 대립각을 세우는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이 전 총리는 지난 22일(현지시간) 조지워싱턴대학에서 ‘대한민국 생존전략-이낙연의 구상’ 출간 간담회를 갖고 “새 정부의 외교 전략이 길을 잃고 있다”면서 윤 정부의 외교정책이 미국과 일본에 지나치게 편향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외교의 본질은 줄 것은 주고 받을 건 받는 것”이라며 “미국의 무리한 요구에 대해 손해를 보면서까지 설득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있다. 중국에 대해서는 과도하게 도발해서 미움을 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제3자 변제’ 해법에 대해서도 “일본에 일방적으로 양보한 방안”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이 전 총리는 일본어에 능통하고 ‘지일파’로 알려져 있다.

이낙연, “정부와 민주당 모두 내 말 듣지 않기로 결심” 비판

하지만 출간 간담회에 이어진 특파원 간담회에서는 민주당 내 역할에 집중됐다. 윤 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한 이 전 총리의 입장보다는 이 대표와 이 전 총리간의 정치적 관계 설정이 더 큰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이 전 총리는 “현재 민주당 상황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민주당이 국민) 신뢰를 회복하려고 나름 노력하려 하고 있다고 보고 있고, 노력의 결과로 신뢰를 되찾을 수 있길 바란다”고 원론적인 답변을 했다.

이에 “민주당의 문제는 뭐라고 보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역할을 할 건가”는 직설법 질문이 나왔으나 이 전 총리는 “그렇게 세세한 건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다. 책을 쓰고 또 강연을 다니고 했던 그 주제가 저에겐 가장 긴박한 주제였다. 귀국 후에도 언제까지일진 모르겠지만 그 주제에 집중하게 될 걸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민주당내 역할론에 대해서는 끝까지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 전 총리는 특파원 간담회에 앞서 가진 현지 교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한국의) 어느 정당이든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면서 “이러한 엄혹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 데에는 저의 책임도 있다. 국가 위기 앞에서 제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민주당의 대국민 신뢰상실을 노골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이 전 총리는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주 포트리에서 연 뉴욕특파원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가혹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민주당 내 문제는 여의도에 맡기고 국가적인 현안에 집중하겠다”면서도 “정부와 야당(민주당) 모두 내 말을 듣지 않기로 결심하지 않았느냐”고 꼬집기도 했다. 정부 정책 비판에 무게를 두면서도 민주당에 대한 불만을 여과없이 드러낸 셈이다.

이낙연 지지율... 민주당 지지층 7.9%, 국민의힘 지지층 28.4%

따라서 이 전 총리는 이재명 체제에 대해 신중하게 도발할 가능성이 높다. 성급하게 행동하다가는 역풍을 맞을 위험도 적지 않다. 이와 관련 이 전 총리의 지지세가 민주당 지지층보다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높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뉴스토마토는 지난 18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의 대안이 누구?'인지를 물었다. [사진=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캡처]​
​뉴스토마토는 지난 18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의 대안이 누구?'인지를 물었다. [사진=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캡처]​

<뉴스토마토>가 미디어토마토에 의뢰해 지난 16~17일 전국 성인 유권자 108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0%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이재명 대표의 대안이 누구인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 이낙연 전 총리가 17.1%, 김동연 경기지사가 15.9%, 김부겸 전 총리 12.5% 등으로 나타났다. 김지사가 부상하고 있지만 이 전 총리가 여전히 1위이다. 김 지사가 경기도지사로서 활발한 활동을 편 데 비해 이 전 총리가 미국에 체류하면서 관심권에서 멀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낙연의 위력’은 만만치 않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전 총리의 약점이 드러났다. 같은 질문을 민주당 지지층에게 했을 경우 김동연 지사 22.7%, 김부겸 전 총리 8.3%, 이낙연 전 총리 7.9%의 응답률을 보였다. 반면에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이낙연 전 총리 28.4%, 김부겸 전 총리 16.5%, 김동연 지사 7.6%이다.

뉴스토마토가 지난 18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의 대안이 누구?'인지를 묻는 질문에 대한 응답률에 주목된다. [사진=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캡처]
뉴스토마토가 지난 18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의 대안이 누구?'인지를 묻는 질문에 대한 응답률에 주목된다. [사진=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캡처]

이재명 체제 섣불리 공격했다가는 ‘수박’ 낙인 찍힐 수 있어

이 전 총리를 이재명 대안으로 응답한 사람이 민주당 지지층보다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 전 총리가 섣불리 이재명 체제를 공격했다가는 ‘수박공세’에 시달릴 위험이 크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수박’은 겉과 속이 다르다는 의미로 이재명 강성 지지층이 비명계를 공격하는 용어로 사용해왔다.

민주당 지지층보다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더 높게 평가받는다는 여론조사 결과는 이 전 총리의 정치행보에 상당한 족쇄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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