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가 자녀 특혜 채용 의혹이 눈사태처럼 커지고 있는 가운데 감사원 감사를 거부해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헌법상 독립기관인 선관위는 감사원의 직무감찰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감사원은 채용 비리 의혹은 선거직무와 무관한 인사행정 영역이기 때문에 감사를 받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정승윤 국민권익위원회 사무처장 겸 부패방지 부위원장이 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최근 불거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녀 특혜 채용 의혹과 관련해 전수조사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승윤 국민권익위원회 사무처장 겸 부패방지 부위원장이 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최근 불거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녀 특혜 채용 의혹과 관련해 전수조사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채용 비리를 조사하는 것과 선관위의 선거 직무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1일 “선관위는 감사원의 직무 감찰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법률적 근거가 있는 국민권익위원회 조사, 수사기관의 수사, 국회 국정조사는 받을 수 있지만 감사원 직무 감찰은 받기 어렵다는 설명이었다.

국민비판 쏟아지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선관위, ‘소쿠리 투표’ 때처럼 감사원 감사 거부

국가공무원법 17조의 '선관위 소속 공무원 인사 사무에 대한 감사는 선관위 사무총장이 실시한다'는 내용이 감사원 감사를 거부하는 선관위의 근거이다.

지난해 대선 사전투표에서 불거진 '소쿠리 투표' 논란 때도 이 조항을 근거로 감사원 직무 감찰을 거부했었다. 감사원은 지난해 9월 선관위 정기감사 착수 당시 "3년마다 선관위에 대해 회계나 단순 행정에 대해 감사했고, 이번에는 대선 선거관리 업무에 대한 직무 감찰도 대상이 될 것"이라면서 선관위에 '소쿠리 투표' 관련 자료도 요청했다. 하지만 선관위는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구이기 때문에 감사원 직무 감찰 대상이 되기 어렵다'는 공식 문서를 감사원에 보냈고, '소쿠리 투표' 관련 감사는 불발됐다.

선관위는 이번 간부 자녀 특혜채용 의혹을 두고도 ‘소쿠리 투표’와 동일한 논리를 내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선거 직무와 무관한 인사행정 비리에 대한 감사원 감사 거부하는 이유는?

하지만 이같은 주장은 오만한 궤변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소쿠리 투표’ 논란은 선거 직무와 관련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직원 자녀를 특혜 채용하는 것이 독립적 선거관리라는 선거 직무의 일환이라는 선관위의 억지는 기상천외한 논리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선관위는 감사원의 정기 회계감사는 받고 있다. 회계는 투명한 선거 직무 보장과는 무관한 재정 투명성과 관련된 사안인 탓으로 보인다.

감사원의 회계감사는 받으면서 범죄행위인 인사비리에 대해서 감사를 받을 수 없다고 항변하는 것은 새로운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번에 드러난 자녀 특혜 채용은 수사나 국회 국정 조사 등을 통해 그 실체를 규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원 감사를 거부하는 것은 향후 선관위의 인사행정 비리에 대해 감사원이 정기적 혹은 비정기적으로 감사를 하는 새로운 관행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분석을 낳고 있다.

이는 역으로 보면 선관위 인사행정에 대한 감사원 감사를 도입하는 게 이번 사태와 같은 선관위의 인사비리에 대한 재발방지 대책이 되는 셈이다. 선관위에 대한 국민권익위의 전수조사나 검경의 수사, 국회 국정조사는 의혹이 곪아터지고 난 뒤의 수습과 처벌에 불과하다. 선관위의 인사비리에 대한 상시적인 감사원 감사가 가능해질 때, 예방효과가 발생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노태악 위원장이 이끄는 선관위, 국민권익위의 전수조사도 무력화할 방침...대신에 ‘자체 전수조사’ 진행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태악 선관위원장이 이끄는 선관위가 감사원 감사를 거부한 것은 부패한데다 오만하기까지 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처신이다.

선관위는 국민권익위원회의 집중 조사에는 협조한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그 실효성이 의문시되고 있다. 권익위는 강제 조사 권한이 없다. 선관위가 협조하지 않으면 구두선에 그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지난달 31일 오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고위직 간부들의 자녀 특혜 채용 의혹에 대한 특별감사 결과와 후속대책을 발표하기에 앞서 사과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지난달 31일 오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고위직 간부들의 자녀 특혜 채용 의혹에 대한 특별감사 결과와 후속대책을 발표하기에 앞서 사과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실제로 선관위는 이같은 한계를 빌미로 삼아 선관위와 권익위가 합동조사를 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감사원 감사는 거부한 채, 자기 비리를 자체 조사하겠다는 억지를 부리고 있는 셈이다.

권익위는 1일 "자녀 채용 비리 의혹 관련 전수조사를 오늘 시작했다"며 "국민권익위법에 의거한 실태조사권에 따라서 단독으로 조사를 하는 것"이라고 밝혔지만 선관위 반응은 냉소적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강제 권한이 없는 권익위 조사는 (선관위 협조 없이) 한발짝도 못 나갈 수 있다"면서 "전수조사라면 전 직원과 퇴직자까지 살펴보는 것인데 이들의 개인정보를 그대로 권익위에 넘길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미 특혜 채용 의혹이 특정된 간부 관련 정보는 제공할 수 있지만, 전 직원의 인사기록을 권익위에 모두 제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상 권익위의 전수조사를 무력화하겠다는 주장인 셈이다.

대신에 선관위는 권익위와 별도로 자체적인 전수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내가 알아서 전수조사할테니 감사원이나 권익위는 참견하지 말라”는 식의 오만불손한 태도인 것이다. 전 국민의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처럼 오만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 ‘강심장’의 원천이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조항에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여야가 관련 법률 손질해야 선관위의 ‘고용승계’ 관행 폐지할 수 있어

헌법을 손질해서라도 선관위가 선거 직무 이외의 인사행정 등에 대해서는 다른 정부기관과 마찬가지로 감사원의 정기감사를 충실하게 받을 수 있도록 여여가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선관위가 이번 사태 이후에도 ‘고용승계’에 가까운 자녀 특혜 채용 관행을 쉽게 버리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는 실정이다.

선관위는 1일 자녀 특혜 채용 의혹이 불거진 박찬진 사무총장 등 4명 모두 자녀 채용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정황이 있다고 보고 4명에 대한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 선관위가 조사해서 수사 의뢰할 사안은 수사 의뢰를 할테니 감사원이나 권익위와 같은 외부기관은 간섭하지 말라는 태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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