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연합뉴스]

진심이 얼마나 담긴 말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얼마전 사장단 간담회에서 했다는 "2050년에는 저도 이자리에 없겠지만...”이라는 이야기는 한국 최대, 세계 일류기업인 삼성의 국유화라는 시나리오를 기정사실화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삼성전자의 지분구성은 이재용 회장 일가 등 총수 가족 및 삼성물산 등 계열사를 제외하면 국민연금이 단연 2대주주다. 국민연금은 지난 10년 가까이 7~8%대의 삼성전자 지분을 유지하고 있다. 이재용 회장 등 총수가족의 개인 지분을 다 합친 것 보다 두배 이상 많다.

이재용 회장은 지난 2020년 5월6일, ‘대국민사과’를 통해 “저는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입니다”라고 했다. 이 ‘약속’이 지켜진다면 국민연금, 즉 정부가 삼성전자의 주인이 되고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그룹은 국유화된다. POSCO나 KT같은 기업이 되는 것이다.

POSCO는 국영기업이기는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근대화 신념이 담긴 개인회사나 다름없는 기업사를 갖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일본의 식민지배 보상금을 받아 대한민국 산업화를 위한 필수조건인 제철소를 만들었고, 자신이 가장 신뢰했던 박태준에게 경영을 맡겨 온갖 외풍을 막아주었기 때문에 POSCO는 오늘날 세계 1위, 최첨단 철강기업이 될 수 있었다.

이병철이 삼성전자, 정주영이 자동차 및 조선산업에 쏟았던 열정과 기업가 정신이 박정희의 POSCO에 녹아았는 것이다. 반면, 수십년째 공기업인 KT는 ‘그저먹기’나 다름없는 허가산업인 통신분야에서 만년 2,3위를 헤메고, IT분야에서는 단한번도 두각을 나타낸 적이 없다.

KT의 이동전화 등 유무선 통신요금이 경쟁업체인 SKT나 LG유플러스에 비해 단 한번도 저렴한적이 없었기에 “공기업의 숙명인 공공서비스 때문”이라고 둘러댈 핑계거리도 없다. 공기업이 될 삼성전자의 모습은 오늘날의 KT를 상상하면 될 것이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6남으로 현대중공업 그룹을 승계한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도 당초 이재용 회장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정 이사장은 현대중공업의 사장과 회장으로 경영을 이끌면서 대한민국 조선업을 세계 1위로 만든 주역이다.

정 이사장은 국회의원에 여당의 당 대표, 재선후보 등으로 한창 정치를 하고 있을 때 사석에서 입버릇처럼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절대로 기업을 맡기지 않으려고 해요. 현대중공업 사장 회장 해보니까 세계 유수의 조선업체랑 수주경쟁에 노사분규, 환율걱정으로 단 하루도 편하게 잠을 잔 적이 없습니다. 뭐 때문에 그런 고생을 시킵니까”

하지만 정몽준이사장이 최대 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그룹, HD현대는 그의 장남인 정기선 HD현대 사장으로의 3세 경영승계가 마무리 단계다. 정기선 사장은 몇년전부터 대통령 주재 각종 재계 행사에 참석하거나 해외출장에도 동행하고 있다.

재계 안팎에서는 정몽준이사장이 당초의 생각을 바꾼 이유로는 2021년 타계한 막내삼촌 정상영 전 KCC그룹 명예회장 같은 현대가(家) 일원들의 꾸준한 설득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현대제철이 만드는 강판이 대형 선박의 주재료가 되고 KCC의 전신인 고려페인트가 당초 현대중공업에서 만드는 선박의 도장을 위해 설립되는 등 법(汎) 현대그룹간 수평계열화, 분업구조상 정씨가문의 경영승계가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정작 정몽준 이사장 본인이 정기선 사장으로의 승계를 공식화하면서 핵심 측근들에게 말했던 것은 ‘지속가능성’이라고 전해진다.

“창업주이신 선친이 울산의 허허벌판 바닷가에 조선소를 만들어서 대한민국이 세계 1위 조선국가가 되고 매출의 100%를 수출로 국가경제를 이끌고 있는데 기업가가 아닌 은행, 연금 같은 곳이 주인이 되면 회사의 미래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반도체 및 휴대폰 사업이 세계 1위로 올라서면서 삼성전자가 수십조원의 영업이익을 거두기 시작했을 무렵, 이건희 삼성회장이 한 이야기는 지금도 재계에 회자된다. “가을에 논밭에 황금들녁을 보고 사람들은 그저 자연의 이치이겠거니 생각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황금들녁이 되기까지 씨를 뿌리고 가꾼 농부들의 무수한 땀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10여년전, 삼성전자가 경기도 평택에 무려 100조원을 투자해 차세대 반도체공장을 짓기로 했을 때, 삼성그룹 내부에서 조차 반대가 적지 않았다. 특히 재무담당 고위 임원들은 “그동안 위험하게 투자해서 이제 막대한 이익을 내고 있는데 당분간은 이돈을 쌓아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전세계 반도체 업체들의 무한경쟁에 따른 투자양상을 보면 당시 평택공장 100조 투자 조차도 타이밍이 늦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문제는 POSCO나 KT 같은 공기업의 ‘월급쟁이 CEO’, ‘낙하산 경영자’가 그런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최근 POSCO나 KT를 둘러싼 잡음은 이들 공기업의 최고경영자라는 자리가 숙명적으로 ‘정치의 전리품’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POSCO는 재계 순위 5위임에도 불구하고, 얼마전 10대그룹 총수가 참석한 대통령 주최 행사에 초대조차 받지 못했고 KT는 신임회장 선임을 둘러싼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정권교체의 여파다.

정권교체의 전리품, 낙하산으로 임명되는 공기업 CEO의 최대 관심사는 회사의 미래, 지속가능한 발전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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