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고위간부 자녀 특혜 채용 의혹 진상 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에 대해 원칙적 합의를 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국정조사 범위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가 2일 국회에서 원내대책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가 2일 국회에서 원내대책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선관위 국정조사 제안에 민주당도 원칙적 동의...국정조사 범위 두고 이견

특혜 채용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는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가 지난 1일 제안했다. 윤 원내대표는 "선관위는 헌법기관이라는 조직의 특수성을 특혜와 특권의 철옹성으로 삼아왔고 반성과 자정 능력을 상실한 상태로 판단된다"면서 "우리 당은 국회 국정조사를 추진하기로 했고 민주당도 국민적 공분을 감안해 국정조사에 적극 협조할 것을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도 부정채용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국정조사에 원칙적으로 동의했지만 이번 사태를 빌미로 선관위의 중립성이 훼손돼서는 안된다고 강조, 여지를 남기고 있다.

여야는 5일 선관위 국정조사에 대한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북한의 선관위 해킹 시도에 대한 국가정보원의 보안 점검 요구를 선관위가 거부한 문제를 포함시킬지 여부를 둘러싼 갈등이 첨예하다.

국민의힘은 지난달 언론보도를 계기로 불거진 ‘북한발 선관위 해킹 시도’에 대한 국가정보원 보안 점검 요구에 대한 선관위 거부에 대해서도 국정조사에서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반면에 민주당은 이번 국정조사는 자녀 특혜 채용 의혹에 집중돼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지난 4월 선관위에 대한 북한 해킹 확인하고 보안점검 추진했으나 선관위 거부

지난 달 3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북한이 선관위에 수 차례 해킹 공격을 시도한 것으로 드러나 행정안전부와 국가정보원이 선관위에 보안 점검을 추진했으나 선관위가 거부해 내년 총선 관리에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여권 고위 관계자가 밝혔다.

이 관계자는 "국정원은 최근 해커 추적 과정에서 북한이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해킹 메일과 악성코드가 선관위에 수신·감염된 것을 확인하고 수차례 통보했지만 선관위는 이에 대한 조치 내용을 국정원에 회신하지 않아 해킹 침투 여부와 보안 조치 내용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말 국정원이 선관위 간부를 접촉해 보안 컨설팅을 권고했으나 이마저 거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해킹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을 경우 내년 총선에서 선거인 명부 유출, 투·개표 조작, 선거 시스템 마비 등의 재앙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정부 여당의 입장이다.

북한의 선관위 사이버 공격, 지난해에만 4만건...선관위, 자녀 특혜 채용 불거지자 마지못해 보안 컨설팅 수용

실제로 선관위에 대한 북한의 사이버 공격이나 해킹 시도는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말 국민의힘 장동혁 의원실이 선관위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선관위에 대한 사이버 공격 시도 현황은 2020년 2만5187건, 2021년 3만1887건, 2022년 3만9896건으로 급증하고 있다. 이중 상당수는 중국과 제3국을 경유한 북한의 해킹 시도인 것으로 분석된다.

유형별로 보면 지난해의 경우는 의도적으로 정상적인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게 하는 ‘서비스 거부 시도’가 1만1111건으로 가장 많았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여당 간사인 이만희 국민의힘 의원은 선관위가 북한의 사이버 공격 시도 7건 중 6건은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관위는 국정원의 보안 점검 권고에 대해서 “통보받은 사실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고위간부 자녀 특혜 채용으로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자 마지못해 국정원 보안 점검을 받아들이기로 한 상태다. 국정원, 한국인터넷진흥원과 3자 합동으로 보안 컨설팅을 수행하겠다고 지난달 23일 발표했다.

북한의 선관위 해킹, 대선·총선 등 투표 결과 조작 위험 키워...트럼프, “민주당 DNC는 러시아 해킹에 무방비 상태”

선관위에 대한 해킹은 대선·총선 등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위험성을 안고 있다. 이만희 의원은 “선거인 명부 유출, 투개표 조작, 시스템 마비 등 치명적 결과가 벌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선관위는 선거관리 시스템이 북한 해킹에 의해 뚫릴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선관위의 태도에 대해 다수 전문가들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러시아가 지난 2016년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당선시키기 위해 해킹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정도로 해킹에 의한 선거결과 조작 위험성은 상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2일 오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 착석해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위원회의에서 '자녀 특혜 채용 의혹'과 관련한 감사원의 직무 감찰 수용 여부를 논의한다. [사진=연합뉴스]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2일 오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 착석해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위원회의에서 '자녀 특혜 채용 의혹'과 관련한 감사원의 직무 감찰 수용 여부를 논의한다. [사진=연합뉴스]

2017년 1월 11일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승리 이후 첫 기자회견에서 "러시아가 대선 해킹의 배후였다고 생각한다"면서 "러시아가 미국을 해킹하지 말았어야 한다"면서도 "민주당 전국위원회(DNC)는 완전히 해킹에 무방비상태였다"고 밝혔다.

따라서 북한이 선관위에 대한 사이버 공격뿐만 아니라 해킹을 지속적으로 시도할 경우 대한민국의 선거관리시스템이 치명상을 입을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관위가 국정원의 보안점검 요청을 거부한 것은 누구를 위한 선관위냐는 질문을 떠올리게 만드는 행태이다.

선관위의 보안점검 거부는 국민적 의혹의 대상...민주당이 거부할 경우 또 다른 의혹의 불씨

이 같은 선관위 보안점검 거부에 대해 선관위 국정조사 범위에 포함시키자는 것은 국민적 의혹을 풀고 선관위를 정상화시키는 데 필요한 수순이라는 평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선관위 국조 범위를 자녀 특혜 채용에 국한시키자고 고집하는 것은 또 다른 의혹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회 국정조사 실시를 위해서는 민주당의 동의가 전제조건이다. 국정조사 요구서는 재적 의원 4분의 1 이상이 동의하면 제출할 수 있지만, 국회 본회의에서 재적 과반 출석, 과반수 찬성으로 국정조사 계획서가 통과돼야 국정조사를 실시할 수 있다.

여야 협상이 원만하게 타결돼 12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정조사 계획서가 통과될 경우 6월 셋째주부터 국정조사가 시작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민주당이 북한의 선관위 해킹에 대한 국정원의 보안점검 요구 거부문제를 국조범위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집할 경우 여야 협상은 난항을 거듭할 수도 있다. 협상이 어려워질수록 민주당의 태도에 대한 국민적 의혹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북한이 선관위 해킹을 통해 내년 총선 결과에 개입하려고 시도한다면, 민주당에 우호적인 결과를 만들려고 할 가능성이 지배적이다. 이는 러시아가 트럼프 당선에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미국 민주당을 해킹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때문에 더불어민주당이 북한의 선관위 해킹에 대한 국정원의 보안점검을 선관위가 거부한 문제에 대해 국정조사를 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은 의혹을 자초하는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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