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에크가 임종을 앞두고 우리에게 남긴 인용구들을 세심하게 읽어보면, 그의 의견으로는, 어떤 사람이 진정한 경제학자인지 판별하는 궁극적이고 결정적인 테스트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하이에크가 이에 대해 그가 1941년에 저술한 그의 『순수자본이론』(Pure Theory of Capital)의 부록 III에서 이미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부록 III은 다음의 글로 끝나고 있다. “ ‘상품에 대한 수요는 노동에 대한 수요가 아니다’는 (경제)원리를 완전히 이해했는지 여부가 그 사람이 ‘경제학자인지 여부에 대한 최선의 테스트’라는 것이 내게 그 어느 때보다 진실로 느껴진다.”1)

여기에서, 하이에크는 자본이론의 핵심요점들 가운데 하나를 부각시키고자 하고 있다. 즉, 실제 생산구조는 매우 복잡하며 여러 단계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소비재 수요의 증가가 언제나 소비로부터 가장 먼 단계—이 단계에 바로 가장 많은 노동자들이 고용되어 있다—에서의 고용을 해치는(줄이는) 그런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른 말로 하자면, 고용주들은, 그들의 수입(즉, “총수요”)이 하락한다고 해도, 노동을 자본장비로 대체함으로써—즉, 그런 대체를 통해 소비로부터 가장 먼 자본재 생산단계에서의 고용에 대한 상당한 수요를 간접적으로 창출시키면서— 그들의 비용을 줄인다면,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다.2)

하이에크가, 거의 50년 후 우리에게 남겨주었고 우리가 지금 논의하고 있는, 경제이론에 대한 선별된 인용문구들을 모아보면, 그가 얼마나 자본이론의 이 핵심아이디어들을 언급하기를 원했는지를 설명해주는 이상의 의미가 있다.

결과적으로 하이에크는 이제 우리에게 “투자는 소비재에 대한 높은 수요에 의해 자극되기보다는 더 위축된다. 그리고 고용도 그렇기는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발전하는 경제에서 더 많은 노동자들이 현재보다는 더 먼 미래를 위해 고용되고 있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또한 “비용을 줄이기 위한 새로운 투자로 이끄는 것은 최종적으로는 현재가격들에서의 최종 수요의 감소이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하이에크는 ‘고용은 총수요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린다. 한 마디로, 하이에크에게 있어, 경제학자인지 최선의 테스트는 과소소비이론들 그리고 소위 ‘절약의 역설’ 혹은 ‘저축의 역설’ 주장 속에 내재된 암묵적 오류를 이해하느냐이다. 소득의 창출을 보장하는 것은 “소비자 수요가 아니다.” 소득이 계속 올라가도록 유지시키는 것은 소득 가운데 소비자 지출을 넘어서는 부분의 투자이다.”

많은 수의 경제학자들이 이 원리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 까닭은 그들이 거시 경제총량접근법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이에크는 이런 총량 접근법은, 최종적으로 분석해 볼 때, 사회공학과 사회주의로 우리를 이끄는 심각한 실수(오류)라고 본다. (“사회주의는 과학적 오류인 거시경제학에 기초해 있다.”) “거시적” 수준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미시경제학을 이용하는 것뿐이다. “우리는 거시사회를 미시경제학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시카고학파 통화주의자들조차 이런 실수의 희생자들이다. 밀턴 프리드먼까지도 “우리 모두 이제 케인지언이다.”라고 언젠가 말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균형모델과 거시경제학에 기초를 둔 접근법은 오류인데 그 까닭은 “획득할 수 없는 정보를 마치 보유하고 있는 듯이 착각하는 자만을 가지고 시작하는 과학은 과학이 아니기”때문이다. 후생경제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말할 수 있을 텐데, 하이에크에게 있어 후생경제학은 “사회주의 정책들의 가짜 과학적 기초”였다.

경제학자인지의 테스트는 시장가격들에 의해 가능해지는 경제계산과 기회비용의 추정의 본질적 역할을 이해하는지를 포함함으로써 더 확장된다. 사실 “기회비용(즉, 잃어버린 대안)을 이해하기 전에는 경제학이라는 적정한 학문 분야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 본질적 개념은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에 의해 이해된 적이 없었고 또 오늘날에도 “마셜학파의 타협3)에 의해 희미해지고 있다.” 혹은 하이에크가 다른 인용에서 더 잘 표현했듯이 “선명하지 못한 마셜학파의 타협이 경제학을 오래 지배함으로써” 흐릿해지고 있다.

게다가 하이에크로서는 “경제학은 합리주의(rationalism)가 잘못임을 설명할 수 있는 과학이다. 왜냐하면 사실에 대한 합리적 지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서구 문명의 파괴자들은 19세기 위대한 합리주의 사상가들 가운데 일부였던, 벤담, 밀, 러셀, 케인즈 등이다.”고 결론을 내리도록 허용한다. 그래서 “강력한 (문명파괴의) 유혹자들은 이제 더 이상 맑스와 엥겔스, 푸르동 혹은 레닌이 아니라 케인즈, 틴버겐, 갈브레이스, 뮈르달, 레온티에프, 드워킨 등등이다. 그들은, 내가 볼 때, ‘거대 확장사회’(the great extended society)의 적이다.” 그들 모두가 많든 적든 어느 정도 시장이 없이도 사람들은 시장 없이는 알 수 없는 것들을 알고 있으리라는 오스카 랑게와 같은 사람들의 기본적 오류를 공유하고 사회주의 경제에서도 효과적인 경제계산의 가능성을 단언하고 있다.

한마디로 하이에크에게 있어 “바보들은 바로 실제로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안다고 믿는 사람들 즉 합리주의자들이다.”

한번은 루드비히 폰 미제스는 이렇게 쓰기도 했다. “오스트리아학파를 다른 학파들로부터 구별케 하고 불멸의 명성을 가져오게 하는 것은 바로 그 학파가 경제균형이나 경제적 비행동이 아니라 경제적 행동의 이론을 창출했다는 사실이다.”4) 하이에크는 미제스의 이 생각을 더 일반적 수준으로 확장해서 그가 남긴 카드들 중 하나에 이렇게 썼다.

“오스트리아학파의 주요 성취는 비교적 단순한 현상[거시경제학, 균형모델]을 다루는 과학과 매우 복잡한 현상을 다루는 과학[진정한 시장과정] 사이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차이를 명확하게 하는 것을 결정적으로 도왔다는 것이다.”

아마도 오늘날에도 경제학자에 대한 최선의 테스트는 이 본질적 차이에 대한 그의 완전한 이해일 것이다.

1) F.A. Hayek, The Pure Theory of Capital, London: Routledge, 1976, p. 439.
2) Huerta de Soto, J. (2006). Money, Bank Credit and Economic Cycles, Auburn, AL: Ludwig von Mises Institute, 2006, pp. 265-395.
3) (역주) 기회비용의 개념을 따져보면, 비용이 ‘객관적’이 아니라 ‘주관적’임을 알 수 있다. 기회비용은 어떤 개인이 ‘자기가 볼 때’ 선택하지 않은 차선의 대안이 주었을 것으로 기대하는 효용인데 이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알프레드 마셜은 수요가 주관적으로 결정되지만 공급은 ‘객관적’ 비용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다루었다. 즉, 비용의 주관성을 수용하지 않았다. 이를 ‘마셜학파의 타협’(Marshallian compromise)‘이라고 부른다.
4) Mises, L. von, Notes and Recollections, South Holland, IL: Libertarian Press, 1978, p. 36.

저자) ) Jesús Huerta de Soto
데 소토는 킹 후안 카를로스 대학(King Juan Carlos University) 경제학과 교수로서 스페인의 오스트리아학파 대표적인 학자이자 미제스연구소의 수석 연구위원이다. 저술가, 번역가, 출판인, 그리고 교사로서 그는 고전적 자유주의의 가장 활발한 전도사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화폐, 은행 신용, 그리고 경기순환』(Money, Bank Credit, and Economic Cycles), 『사회주의, 경제계산 그리고 기업가정신』(Socialism, Economic Calculation and Entrepreneurship) (Edward Elgar 2010), 『오스트리아학파』(The Austrian School) (Edward Elgar 2008) 그리고 『동태적 효율성 이론』(The Theory of Dynamic Efficiency) (Routledge 2009) 등이 있다.

역자) 김이석(아시아투데이, 수석논설위원)

 

원문) https://mises.org/wire/hayek%E2%80%99s-best-test-good-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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