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것이 있으면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어린이였다"
"좌파 서적 읽던 '책벌레'…지금 돌아보면 그냥 '벌레'였다"
"우연히 읽은 우파 서적…빨간 시선 사라지니 완전히 다른 삶"

장려상 수상자 이병세 씨.

하늘이 키 크는 계절 가을, 나의 구름은 하늘에서 내려올 줄 몰랐다. 유난히 바람이 불지 않는 오후였다. 그때도 여지없이 나는 책 한권과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들고 나만의 그늘을 찾아갔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곳, 그리고 나의 말이 들리지 않는 곳. 어린이대공원 구석에 있는 낮은 나무 의자였다.

나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예쁜 여자가 있으면 속으로 고백을 수 십 번씩 하면서 애정표현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는 녀석이었다. 시험기간이 되면 밤이 새도록 공부하지만, 시험이 끝나는 다음 날이면 다시 아무런 생각 없이 놀았다. 시급 5000원이 조금 넘는 아르바이트를 알아보면서 수 십 만원이 넘는 여행을 계획했다. 어떻게 보면 현실성 없는 한량이었던 것 같다. 정말 현실성 없던 것은 내 태도였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남 탓을 하곤 했다. 그리고 그들에게도 사정이 있는 것 같으면 사회를 탓했다. 아무튼 문제는 나한테 없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어린이처럼 불평을 쏟아냈다.

그러나 나에겐 남들과 다른 한 가지가 있었다. 바로 책을 좋아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학교 1학년 가을, 내가 좋아하던 책이 나를 완전히 바꾸었다. 세상 물정 모르고 하늘을 날라 다니던 나의 구름은 그날 땅으로 내려왔다. 그날 난 그 공원에서 그 책을 읽으면 안 됐던 것이다. 바로 『반대세의 비밀, 그 일그러진 초상』이다.

어쩌면 실수하고 읽은 불온 서적일수도 있겠다. 그 전에 읽었던 책과는 완전히 다른 책이었으니 말이다. 사실 나는 완전한 좌파였다. 그리고 자신이 좌파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내 주변이 전부 좌파여서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중에서도 유독 새빨간 빨강이었다. 왜냐면 나는 책을 읽는 좌파였기 때문이다. 아직도 내 눈에 생생한 글들이 있다. 한두 권 읽은 것이 아니었다. 그중 특히 내 눈을 많이 유혹했던 것은 박노자씨의 『당신들의 대한민국1,2』다. 나는 이 책을 시작으로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 『좌우는 있어도 위 아래는 없다』 등을 섭렵했다. 당시 내 친구들은 나에게 ‘책벌레’라는 별명을 붙였는데, 지금 돌아보니 그냥 ‘벌레’였다.

한 가지 더 증명을 해야겠다. 고등학교 때 즐겨 읽은 책은 신영복씨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다. 아직도 내 눈에 그려지는 문장이 있다. 거꾸로 짓는 집에 대한 이야기다. 집을 실제로 건축한 사람들은 주춧돌을 그린 다음 기둥, 도리, 들보, 서까래, 지붕 순으로 그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집을 지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지붕부터 그린다. 삶의 경험을 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은 근본이 다르다는 메시지였다. 기반도 없이 하늘로부터 안식처를 쌓는 사람은 근본이 없는 사람이라 했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근본은 ‘정의’였다. 나는 아직도 그들의 이야기가 눈에 들리는 사람이다. 아침에 읽은 신문의 내용도 기억 못하는 멍청이지만, 그들의 말이 아직도 들린다는 것을 보면 정말 보통 감명을 받은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렇게 책에 빠진 데에는 또 남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들이 책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뒤돌아보면 너무 화가 나지만, 내 눈을 시뻘겋게 물들인 책 『당신들의 대한민국』은 고등학교 때 내가 좋아하던 국어선생님이 추천한 책이다. 그리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정신적 지주였던 윤리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말한 책이었고, 역사를 모르는 나에게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를 보여준 선생님은 언어선생님이었다. 내 환경이 특별히 다른 것이었을까?

아니다. 내 친구 중에는 시험의 주관식에 답이 기억나지 않아 에세이를 쓴 친구가 있었다. 그리고 그 글이 오답이지만 읽을 가치가 있다면서 읽어준 선생님이 계셨다. 그 답은 이러했다. “반 만 년 역사동안 피지배를 받아온 한 반도는 지금도 두 반도로 나뉘어 있다. 그런데 외세의 세력에 눈치를 보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우리의 식탁마저 빼앗겨 버려서 되겠는가? 우리의 식탁에 구멍이 뚫리는 한이 있더라도 뇌에는 구멍이 뚫리면 안 되는 것 아니겠는가? 한미 FTA에서 수입하는 광우병은 트로이 목마처럼 우리들의 식탁에 들어와...”

그렇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내 주변 똑똑한 친구들도 누가 더 멋진 문장을 구사하는지 경쟁하듯 서로 벌건 색을 자랑했다. 그러면서 공공연히 반미, 반정부를 외치게 만들었다. 2008년 광우병 소동을 기억 못한다면 내 뇌가 뚫렸단 소리일 것이다. 그러나 내 뇌에 구멍이 없기에 그때가 온전하게 기억난다. 내 친구들이 했던 말들이 생각나고 그 당시 선생님들이 했던 교육이 생각난다.

그래서 나한테 남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세상은 썩었다는 세계관을 마음 깊숙이 가지게 되었다. 뇌에 구멍이 뚫리는 대신 마음에 큰 구멍이 뚫려있었다. 뭔가 형용하기 힘든 공허함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공허함은 울분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소리 지르곤 했다. “세상은 왜 이렇게 불공평한가!”사회를 탓했다. 내가 가난한 이유는 돈이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고, 내가 좋은 대학을 못 들어가는 이유는 똑똑한 녀석들이 내 성적향상을 방해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지만 아무것도 제대로 이뤄낼 수 없다고 믿었다. 왜냐하면 나 같은 개인 한 명이 아무리 올바르게 산다 하더라도 사회 시스템이 썩었기 때문에 바뀌지 않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내 정신건강에 좋았다. 그래야 내가 틀린 것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그런 나에게 『반대세의 비밀, 그 일그러진 초상』은 하늬바람처럼 다가왔다. 하늘 높이 떠다니던 내 불평을 땅 밑으로 끌고 내려와 박았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이가 그저 즐겁게 웃고 울고 떠들고 칭얼거리는 곳, 어린이대공원, 나는 나의 모든 철학과 생각과 경험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했다. 그리고 내가 읽은 책을 들고 다시 학교 도서관에 갔다.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건 분명 누군가 고의로 나를 골탕 먹이는 계략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 책을 읽었다. 그래서 알게 된 분이 이승만 대통령님이다. 그리고 배운 분이 박정희 대통령님이다.

『반대세의 비밀, 그 일그러진 초상』은 광우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좌파와 우파를 떠나 대한민국에 반하는 세력이 있음을 실증적으로 증명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주의가 썩은 것이 아니라 자유 속에 방종이 썩고 있음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그 간결한 시원함은 내 두 눈을 모조리 빼앗았다. 마치 신약성서에 나오는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두 눈을 빼앗기듯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빨간 시선이 사라지자 나는 새로운 눈을 갖게 된다. 아나니아에게 안수 받은 바울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그리고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다. 내가 그랬다. 이전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이전에 알 수 없던 것들이 이해되었다. 그리고 이 세계는 경쟁과 자유가 숨 쉬는 곳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것이 계기였다. 『반대세의 비밀』이라는 주춧돌을 기반으로 두 개의 거대한 기둥을 세웠다. 박정희 대통령님과 이승만 대통령님이다. 그리고 자유주의 책을 읽었다. 마지막으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이란 지붕을 덮었다. 그러고 나서야 나의 집은 온전히 우파라는 세계관을 지을 수 있었다. 이전에 내가 그렇게 사랑하던 지식들이 배설물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아끼며 읊조리던 문구들이 역겨워졌다. ‘정의’라는 단어에 마음을 빼앗겨 반미를 외치던 어린이는 그렇게 성장통을 겪어야 했다. 이런 고난의 시기가 있었기 때문일까? 덕분에 나는 단단한 기반을 쌓을 수 있었고 그것을 반석삼아 대한민국 육군 장교가 된다. 자유주의 대한민국을 수호한다는 자긍심을 갖고 싶어서였다. 내가 사랑하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나에게 주어진 자유에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앞서 말했지만, 나는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 청년이었다. 사실 조금 한심한 한량이었다. 어떻게 보면 감정표현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해서 속으로 끙끙 거리던 소년이었다. 그래서 남들에게 나의 의견을 제대로 표현하는 법을 몰랐다. 흔히들 말하는 ‘샤이 보수’였던 것이다. 그러나 장교가 되었을 때는 달랐다. 내가 지켜야 하는 ‘정치적 중립’을 철저히 지키면서 해야 할 말을 하고 가르쳐야 할 것을 가르쳤다. 이승만 대통령님의 본을 따라 열심히 살았고 박정희 대통령님의 삶을 따라 스스로를 훈육했다.

나는 군대를 장기로 복무할 생각은 없었다. 단지 하나, 아주 잠시더라도 내가 사랑하는 조국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을 뿐이다. 그리고 남 탓하지 않았다. 문제는 나에게 있는 것이고 내가 바뀌면 내 주변이 바뀐다. 내 삶에 책임지는 우파다. 그리고 나의 말은 행동과 함께 갔다. 2015년 6월, 대한민국 육군 사단 중 가장 힘들다는 27사단 이기자 부대 소대장으로 임명되어 1년차 임무를 수행했다. 업무능력을 인정받아 2년차 때는 사단 행정장교로 부름을 받았다. 단기복무자임에도 불구하고 4성 장군을 만나 악수했고 상장을 수여받았다. 복무 말기에는 사단장 표창을 수여 받았고 내가 모시던 직속상관 두 분은 둘 다 중령으로 진급되었다. 내가 맡은 인사부문에서는 사단 인사우수부대로 지정받았고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칭찬을 받았다. 어른이었다.

지금 이렇게 뒤돌아보면 참 신기하다. 벌건 문장에 취해 세상을 온통 시뻘겋게 바라보던 어린이였다. 내 인생 하나 책임질 줄 모르고 세상을 불평했다. 그리고 이런 졸렬함을 숨기고 싶어 사람들을 피해 책을 읽었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한 마리 벌레였다. 그런데 그랬던 내가 이렇게 변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냥 한 권의 책이었다고 말하기엔 너무 낭만이 없는 것 같다. 아직도 좌파의 낭만이 남아있기 때문일까? 아니다. 내가 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낭만을 추구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그때를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2011년 하늘이 키 크는 시간 가을, 나의 인생은 어른이 된다. 그리고 그때 그곳의 공원은 눈이 부시도록 푸른 바람이었다. 그곳은 나의 잊을 수 없는 추억의 공간, ‘어른이대공원’이다.

이병세(29·취업준비생/장려상 수상자) thiat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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