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날 때마다 미국 대통령, 국무장관에게 친서 보내고 협상 고비마다 비망록 작성
-확고부동한 미국의 재참전 약속 받아내기 위해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 총동원하여 미국을 물고 늘어져
-이승만의 애국심과 투철한 반공정신 높이 평가한 미국, 상호방위조약 체결로 보답

#. 7월은 이승만의 달

7월은 이승만의 달이나 마찬가지다. 배재학당 졸업식에서 졸업생을 대표해 ‘한국의 독립’이란 제목으로 유창한 영어 연설을 한 것이 7월 8일(1897)이요, 입헌군주정을 주장하며 고종 퇴위 운동을 주도했던 이승만 청년이 한성 감옥 탈옥 및 상해죄로 태형 100대와 종신형을 선고받은 날이 7월 11일이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미국의 영향을 받은 영세 중립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날이 7월 18일(1910)이요, 워싱턴 D.C에 ‘대한 공화국’ 임시공사관을 설치한 날이 7월 17일(1919)이다. 7월 19일은 건국 대통령 서거 58주기 되는 날이며, 제헌국회의 간접선거에 의해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날이 7월 20일, 초대 대통령 취임일이 7월 24일이다.

이처럼 뜻깊은 7월을 보내며 이승만 대통령이 6·25 전쟁을 휴전으로 끝맺으려 하는 미국을 맞아 상호방위조약을 얻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한 모습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1953년 7월 11일,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다.

#.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 한국과 동맹 체결하면 미국에 이익

미국 대통령의 특사로 방한한 로버트슨과의 협상을 마친 이 대통령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태평양 정책에 있어서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을 감안해 대한민국을 전략적 힘의 중심지이자 충성스럽고 능률적인 미국의 동맹국으로 삼아 아시아와 미국 관계의 장래 진로에 총체적 변화를 이룰 것을 촉구했다.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본인이 가장 진심으로 추천하고 싶은 것은… 과거 미국은 일본을 동북아 정책의 주춧돌로 삼았으나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한미 양국 간 상호 의존의 밀접성과 상호 가치를 과시해 주기를 바랍니다.…

통일되고 재건된 한국은 일본만큼 강하게 될 수 있으며, 일본보다 더 높은 수준의 번영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전략적 위치는 우리가 명백하고 의문의 여지 없이 강하지 않으면 항상 러시아, 일본, 중국에게 타국에 대한 침략의 통로로서 우리를 공격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하고 있습니다.

아시아를 위한 순수한 안보 제도가 한국의 독립과 한국의 국력이라는 강력한 기초 위에 입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남시욱, 『한미동맹의 탄생 비화』, 청미디어, 2023, 216~217쪽)

한국이 침략 당하자 재빨리 미군 참전, 유엔군 파견 결정을 내려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구해준 트루먼 미국 대통령.
한국이 침략 당하자 재빨리 미군 참전, 유엔군 파견 결정을 내려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구해준 트루먼 미국 대통령.

이 친서의 핵심 내용은 한국이 6·25 전쟁을 통해 통일 정부를 구성하면 일본만큼 강해질 수 있으며, 전략적 중요성을 가진 지역이 분명하니 미국은 한국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여 동맹을 맺어야 한다는 권유였다.

#. 덜레스 장관에게 보낸 친서: 재남침 막기 위한 확고한 대책 요구

같은 날(7월 11일) 이 대통령은 덜레스 미 국무장관에게도 친서를 보내 공산주의의 재침을 막기 위한 바람직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절절하게 설명했다.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사람들(그들은 본인을 고집이 센 사람이라고 부릅니다)은 지난 몇 주간의 이 끔찍한 시기에 본인이 감내해온 고뇌나 여러 가지 문제와 결정을 위해 본인이 바친 기도의 시간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본인이 지난 6월 22일 자 귀하의 서신에 대해 즉시 해답을 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본인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동시에 우리 두 사람 사이의 따뜻한 우정의 유대를 약화시킬 어떤 조치도 자제함이 갖는 압도적 중요성을 깨닫게 한 본인의 느낌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귀하께서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전우애는 잃어버리기에는 너무도 귀중한 것입니다.

친애하는 덜레스 씨. 우리들의 나라와 국민들이 친구인 것처럼 귀하와 본인도 친구입니다. (중략) 본인의 사무실 창문을 통해 서울의 황폐한 잔해들 위로 바깥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수백만 명의 피난민들과 (전쟁으로) 사망한 수십만 명의 우리 국민들을 회상할 때 우리나라가 공산 독재에 대항하는 공동 투쟁에서 (미국의) 값진 동맹국으로 바로 서려는 우리 국민 자신들이 노력하는 과정에서 치른 그 어마어마한 대가를 귀하께서 모르시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중략)

우리들의 의도는 평화를 반대하는 데 있지 않고, 이를 성취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데 있습니다. 본인의 가장 엄숙한 확신은 귀하와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공산주의자들의 더 이상의 전진과 궁극적인 세계 대전을 막을 억제로서 한국에서 제한적이지만 결정적인 군사적 승리를 위해 압박을 가하지 않은 점을 머지않아 후회하게 될지 모른다는 점입니다. (중략)

이제 휴전협정은 곧 조인될 것입니다. 본인은 본인의 예측이 빗나가서 진정한 평화가 오기를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만약 그렇게 되지 않을 경우 세계 대전이라는 최후의 참화를 뒤로 미루거나 제거할 제한된 승리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다시 한번 가지려고 노력함에 있어서 우리가 미국 편에 서듯 미국도 우리 편에 서주기를 희망합니다.>(남시욱, 앞의 책, 217~218쪽).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의 특사로 방한하여 이승만 대통령과 악수하는 로버트슨. 그는 이 대통령과 회담 후 “그의 반공정신을 높이 기려 한국에 방위조약을 체결해줘야 한다”는 요지의 보고서를 올렸다.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의 특사로 방한하여 이승만 대통령과 악수하는 로버트슨. 그는 이 대통령과 회담 후 “그의 반공정신을 높이 기려 한국에 방위조약을 체결해줘야 한다”는 요지의 보고서를 올렸다.

다음날인 7월 12일, 이승만 대통령은 로버트슨 특사와 16일간의 긴 협상을 끝내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공동성명에는 포로들의 자유 귀환 보장, 상호방위조약 체결 합의, 한국의 자유·독립·통일 실현을 위한 공동 노력 등이 담겼다. 공동성명을 발표한 로버트슨 특사는 이날 서울을 떠났다가 18일 후에 한미상호방위조약 마무리 협상을 위해 덜레스 미 국무장관을 수행하여 다시 서울에 오게 된다.

이 대통령은 로버트슨 특사가 서울을 떠나자 “한국은 휴전을 수락하지 않지만 적어도 3개월간은 휴전에 방해하지 않기로 동의했다”고 발언했다. 이 발언은 양국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기로 원칙적으로 약속했으니, 조약에 담길 내용을 유리하게 이끌어가기 위해 이 대통령이 일종의 브레이크를 밟은 셈이다.

#. 이승만이 작성한 비망록: 한미동맹 체제의 기본 이론 담아

공동성명 발표 다음날인 7월 13일, 이 대통령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위한 자신의 철학과 소신을 밝힌 장문의 비망록을 작성한다. 이 비망록은 한미동맹 체제의 기본 이론이 담겨 있는 중요 문건이어서 전문을 소개한다.

<이승만·로버트슨 담판에서 이루어진 가장 중요한 조항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곧 조인하기로 양해에 도달한 점이다. 이 조약 체결에 간섭하는 어떤 시도도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은 이제 휴전을 방해하지 않기로 동의해 휴전의 길이 열리자 여러 부류의 친일적인 미국 관리들과 언론인들이 한미방위조약 체결 계획을 취소해야 한다는 떠들썩한 주장을 만들어내어 조약 체결에 대한 온갖 방해 공작의 소리를 낼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것은 이 조약 체결의 확약이 이승만·로버트슨 합의의 바로 기초이자 토대라는 점이다.

이승만·로버트슨 협상 종결 때 발표된 공동성명의 조문들을 주의 깊게 검토해 보면 “특히 우리들의 공통의 목표, 즉 자유롭고 독립되고 통일된 한국을 최단 시간 안에 달성하고자 노력하겠다는 결의를 강조하고자 한다”라는 구절이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 문장은 유엔 밖에서 한국을 재통일하려는 한미 공동의 노력을 위한 방법을 열어줄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욱이 이 구절은 시간 요소를 강조하고 통일 노력을 반드시 ‘평화적 수단을 위한 노력’에 국한시키지 않는다. 이 같은 사실들에 대해서는 비록 당분간은 공식적인 대한민국 대변인보다는 신문기자와 라디오 해설가들이 토론하고 강조하는 것이 더 좋겠지만, 대중적인 분석에서 토의하고 강조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일반 원칙의 문제로서 우리는 양보하고, 휴전이나 정치회담을 방해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한국의 분단으로 종식시키는 방식인 유엔의 ‘정치 회의’ 실패를 초래했다고 비난받게 하는 어떤 일도 말하거나 행하지 않도록 아주 조심하기를 바란다. 진짜 실패의 책임은 원래의 책임자들-즉 공산 침략과 이들을 다루는 유엔의 단점으로 돌리도록 하자.

가장 엄밀한 신뢰의 바탕 위에서 미국과 대한민국의 정치회담이 90일간의 회기 말에 이르러 한국의 통일을 달성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입증되는 경우 함께 철수하기로 합의했다. 그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직 결정된 바 없다. 아마도 미국은 실행 가능한 계획을 마련할 것이며 우리는 아마도 이 문제에 있어서 우리 고유의 정책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한편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도움이 될 방위조약이 최단 순간 안에 체결되고 비준되도록 모든 우리의 친구들이 어떤 노력이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치 회의가 실패하는 경우 대한민국으로 하여금 어떤 다른 조건을 수락하도록 강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방위조약 체결을 하나의 미끼 또는 ‘위협’의 수단으로 계속 이용하려는 미국 행정부가 고의적으로 조약의 체결을 지연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로버트슨 씨와 우리의 양해를 배반하는 것이며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용인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미국의 진정성, 호의, 그리고 우정에 크게 의지하고 있다. 만약 이러한 의존이 근거가 있는 것으로 판명되면 우리는 장기간의 상호 이익을 위한 긴밀한 협력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마음속에 가장 크게 지니고 있는 한 가지 기본적인 목표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태평양지역의 모든 미국의 계획을 일본 중심으로 집중시키려는 낡은 미국의 정책을 포기하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우리는 한국이 강하고 독립하지 않고는 중국, 러시아, 일본 모두가 북부 아시아에서 평화를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못 알아보는 일이 없도록 아이젠하워가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을 이해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또한 그가 한국의 경제적 재건이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모든 아시아인들을 격려할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기를 바란다. 한국을 적절하게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데 실패하면 모든 나라들을 실망시킬 것이다. 이들 나라는 그렇게 되지 않으면 모두가 친미적이 될 나라들이다. 우리가 가장 열성적으로 노력해온 것은 한국의 주권 정부가 아시아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동등한 반려국이자 동맹국으로 대우받아, 더 이상 보잘것없는 존재를 무시당하지 않는 데 있다.

만약 우리가 우리 고유의 노선을 확고하게 지키고 우리가 약속한 모든 것을 완수하되 우리가 적절하다고 간주하는 고유의 국가 이익을 추구할 주권적 권리를 항상 유보한다는 것을 명확히 함으로써 우리는 현재 획득한 이익을 보존하고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든 태평양지역에서 금후에 회의가 개최되어 한국 대표가 참석하도록 해서 한국의 이익이 충분한 고려 대상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에서 눈을 돌려서는 안 된다.

한국에 대한 경제 원조 문제에 관해서는 외국이 경제 전문가와 정치인들이 우리가 자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우리에게 가르쳐주던 시대는 지나갔다. 우리는 ‘한국 원조’로 책정된 자금으로 일본 기업을 재건하려는 어떤 계획도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원조 자금이 우리의 장기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진짜로 사용되지 못하도록 제한되어 있다면 우리는 이들 자금의 수령을 거부하고 그 대신 우리가 희망하는 만큼 쓸 수 있는 차관을 도입하도록 노력해야 될 것이다.

군사 문제에 관해서는 우리의 목표는 우리 고유의 군사력, 특히 해군력과 공군력을 한층 강화해서 독자적인 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내실을 확보해야 한다.

이상은 로버트슨 씨와의 회담에서 이룩한 합의 사항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몇 가지 간단한 지표들이다. 그는 우리들의 과제들과 목표들을 보다 더 잘 이해하고 한국을 떠났다. 그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우리가 필요한 경우에 하려는 것을 존중한다. 동시에 우리가 우리의 동맹국들과 충분하게, 그리고 상호 이해 속에 활동하기를 원하는 합리적인 국민이라는 것을 배웠다. 협력은 양방향의 길이라는 사실이 워싱턴의 관리들에게 더욱 많이 명백해지고 있다.

유엔과는 골치 아픈 문제들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우리의 과제들이 모두 해결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우리가 미래에 해결책을 찾을 적절한 기초는 마련되어 있다. 이것은 아주 많은 대가와 오로지 커다란 어려움 속에서 성취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그처럼 고통스럽게 쟁취한 미래에 길을 잃지 않도록 크게 조심해야 할 것이다.>(남시욱, 앞의 책, 222~225쪽)

이 비망록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하루빨리 체결되어야 한다는 점, 미국이 태평양지역의 모든 전략을 일본 중심으로 집중시키려는 정책을 포기하고 한국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 한국의 경제 재건 약속을 미국이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점, 한국에 제공하는 경제 원조 자금의 집행에 대해 미국이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상기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 확고부동한 안전판 마련을 위한 노력

한미상호방위조약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끝까지 물고 늘어진 핵심 쟁점은 대한민국이 공산군의 재침을 당했을 때 ‘미국의 즉각적이고 자동적인 군사 지원’에 대한 확고부동한 담보였다. 휴전협정 조인을 앞둔 1953년 7월 24일, 이 대통령은 덜레스 국무장관에게 이와 관련한 질의를 보냈다.

이에 대한 덜레스의 답신은 “귀국은 당연히 우리의 즉각적이고 자동적인 군사적 대응을 믿어도 좋다”는 것이었다. 다만, 미국 헌법에 의하면 오직 의회만이 선전포고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군사적 대응은 “우리의 헌법적 절차에 따라서”라는 단서가 붙어 있었다. 그러면서 덜레스는 “미국은 전체 역사상 귀국에처럼 타국에 많은 것을 제공한 적이 없다. 최근 며칠 동안 여러 사람과 여러 나라들이 각하(이승만)를 비방하고 있으며, 각하가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본인에게 행한 약속이 믿을 바가 못 된다고 중상하고 있다”고 의미심장한 경고를 덧붙였다.

방위조약 체결을 위한 최후의 진검승부는 1953년 8월 5일부터 시작되었다. 이 대통령은 8월 7일 제3차 회담에서 덜레스에게 방위조약에서 한국이 침략을 당할 경우 ‘즉각적이고 자동적인 군사 지원’ 조약의 수준을 필리핀이 아닌 일본 수준으로 격상할 것, 한국 육군의 20개 사단으로의 증강, 한국에 대한 경제 원조를 강화해 한국을 ‘민주주의의 쇼룸’으로 만들 것, 미국 측은 한국을 ‘가치 있는 동맹국’이라고 전 세계에 선언할 것 등 12개 항을 요구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가조인하는 변영태 외무장관(앞줄 왼쪽)과 델레스 미 국무장관(앞줄 오른쪽). 그 뒤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서명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가조인하는 변영태 외무장관(앞줄 왼쪽)과 델레스 미 국무장관(앞줄 오른쪽). 그 뒤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서명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이에 대한 타협안으로 제시된 것이 미군의 대한민국 주둔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제2조에서 한미 어느 한쪽이 외부로부터 무력 공격에 의해 위협 받을 경우 상호 협의하에 단독이든 공동이든 그것을 저지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제3조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서 ‘각자의 헌법상의 수속에 따라 행동할 것’을 선언하고 있다.

이 두 조항만 놓고 보면 한반도에서 공산군이 재차 남침할 경우 미군이 자동으로 개입한다는 보장이 없다. 헌법상 절차를 거쳐 대통령이 의회의 승인을 요청할 때 의회가 거부하면 미국은 참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4조에서는 한국에서의 전쟁이 미국이 즉각 개입하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했다. “상호 합의에 의해 미합중국의 육군, 해군과 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 내외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허여하고 미합중국은 수락한다”는 조항이다.

휴전 후 미국은 이 조항에 의해 미군을 남한에 주둔할 수 있게 되었으며, 주한미군 제2사단을 서울 북방의 서부전선에 배치했다. 이는 북한이 서울을 겨냥해 기습 남침할 경우 미군을 공격할 수밖에 없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해외에 주둔하는 미군이 공격을 받을 경우 미국 대통령은 의회의 승인 없이 즉각적이고 자동적으로 참전할 수 있게 된다(김일영, 『건국과 부국』 기파랑, 2012, 155~162쪽 참조). 이것이 이른바 인계철선 개념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로 대한민국은 한국에서 발을 빼려던 미국을 붙잡아 둘 수 있었고, 미국의 동아시아 집단안보 체제에서 반공의 전초기지가 되었다. 그 대가로 한국이 지불한 것은 휴전협정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각서 한 장뿐이었다. 우리가 뭘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저 미국이 하는 일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말 한마디로 일찍이 어느 약소국도 받아본 적이 없는 강대국의 파격적인 지원을 받아낸 것이다. 이것이 이승만의 신기에 가까운 외교술의 본질이었다.

김용삼 대기자 dragon00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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