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정체성이 과잉이 되면 맹목적이고 광신적이며 배타적인 국수주의와 결합하여 파시즘의 광기로 폭발한다. 이 땅의 민족 지상주의자들이 원하는 세상은 그런 쇼비니즘(chauvinism)의 세상 아닐까?

 

#. ‘하늘이 열린 날의 기원

103일은 개천절(開天節), 하늘이 열린 날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날을 5대 국경일의 하나로 지정하여 거국적으로 기리고 있다. ‘하늘이 열린 날이 왜 국경일인가? 따져보면 한민족 역사에서 첫 국가인 단군의 고조선 개국을 기념하기 위해서란다.

필자가 지난해 107일 본지 칼럼(대한민국의 국경일, 국가기념일 이래도 되나?)에서 지적했듯이 개천절과 관련하여 두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첫째, 고조선 개국이 103일이란 근거는 무엇인가, 둘째, 21세기 대한민국이 고조선 개국과 단군을 기념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고조선의 건국 시기(연도)와 날짜는 누구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3일로 정한 근거는 단군교로 출범한 대종교의 경전인 삼일신고(三一神誥)에 근거하고 있다. 대종교 이전에 103일을 단군이나 개천과 연결하여 기렸던 사례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종교는 1909년 처음으로 음력 103일을 단군 대황조께서 나라를 세우고 참된 도를 세웠다면서 이날을 민족의 성절(聖節)로 기려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 땅의 독립운동가들은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대종교에 많은 신세를 졌고, 또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중 다수가 대종교 교인 혹은 관계자였다. 이런 입장이었으니 대종교가 단군 기념일을 개천절로 기려야 한다고 주장하자 임정은 이를 수용했다.

한국인들이 국경일로 기리는 개천절의 기원은 대종교다. 대종교의 축일이 국경일로 지정된 것은 대종교가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많은 도움을 준 덕분이다. 
한국인들이 국경일로 기리는 개천절의 기원은 대종교다. 대종교의 축일이 국경일로 지정된 것은 대종교가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많은 도움을 준 덕분이다. 

 

임정은 음력 103일을 기념하되, 다른 종교인의 입장을 감안하여 명칭을 대종교 축일인 개천절이 아닌, ‘대황조(大皇祖) 성탄 및 건국 기원절로 정해 임정 국무원 주관으로 축하 의식을 거행했다.

임정을 계승한다고 선언한 대한민국은 1949년 국경일 제정 과정에서 음력 103일을 양력으로 고쳤고, 명칭은 대종교 축일 명인 개천절을 그대로 사용했다. 이로써 전 국민은 영문도 모르는 양력 103일을 국경일로 기려야 하는 상황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 동화된 일본인을 한국인으로 만들기 위한 반일 교육

나라를 잃은 대한제국 구성원들이 기댈 언덕은 민족이었다. 그들은 우리는 하나임을 표출하기 위해 일본이 ‘nation’을 번역한 민족을 차용했고, 자신들의 상징물로 배달겨레, 단군의 자손을 창출해 냈다. 국가 부재 상황에서 민족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 땅의 지식인들은 상상으로 신념과 현실 간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국수적 민족주의에 의탁한 것이다.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개천절이 자연스럽게 국경일로 지정되었을 것이다.

36년 일제 식민지배의 와중에 이 땅의 구성원들은 일본어를 국어로 공부했고, 일장기를 국기로 수용했으며, 학교 조회 때마다 황국신민서사를 외웠고, 자신이 소속된 국가인 일본을 위해 싸우다 죽어 야스쿠니 신사에 위패가 모셔졌다. 자신이 배달겨레, 단군의 자손이란 민족 정체성은 사라지고 일본이라는 국가의 일원으로 동화된 것이다.

일제 시절 조선인들은 때마다 단체로 신사참배를 했고, 황국신민서사를 암송했으며, 일본어를 국어로 받아들이며 일본인으로 동화되어 갔다. 이 와중에 해방이 되면서 이들의 정체성을 '한국인'으로 바꾸기 위한 범국가적, 사회적 차원의 반일 교육이 시작되었다.
일제 시절 조선인들은 때마다 단체로 신사참배를 했고, 황국신민서사를 암송했으며, 일본어를 국어로 받아들이며 일본인으로 동화되어 갔다. 이 와중에 해방이 되면서 이들의 정체성을 '한국인'으로 바꾸기 위한 범국가적, 사회적 차원의 반일 교육이 시작되었다.

 

해방이 되고 건국이 되었으니 일본인으로 동화된 이 땅의 구성원들을 한국인으로 시급히 돌려세워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 발생했다. 바로 이 부분에서 민족의식이 장려되었고, 그들의 영혼에 자리 잡은 일본인 의식을 정화하기 위한 반일 교육이 대대적으로 진행되었다. 일본인화 된 사람을 한국인으로 되돌리기 위한 극단적인 반일 교육의 결과 이 땅의 조직원들은 국가정체성보다 민족정체성이 더 익숙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 와중에 배달겨레, 단군의 자손들이 두 개의 국가를 세워 1민족 2국가로 갈라서게 되었다. 이로써 국가정체성과 민족정체성이 얼키고설키는 특이 현상에 처하게 된다.

 

#. 국가정체성의 기반은 헌법

정체성이란 개인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만나게 되는 한 대상으로부터 성찰적으로 구성해낸 의미들의 집합’(정호영, 민족정체성 형성에 관한 정치사회학적 연구, 고려대 사회학과 박사학위 논문, 2001)이다. 쉽게 설명하면 정치공동체 속의 우리’(we)는 누구이고, 외부의 그들’(they)과는 어떻게 다른가를 구분하는 기준이다.

여기에 국가란 개념이 부가되어 국가정체성(National Identity)이 형성되는데, 국가정체성이란 한 국가의 근본 성격이나 가치, 제도, 정책 등에 대하여 국가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믿음과 일체감으로, 국민 통합 또는 사회통합의 기본 토대가 된다. 만약, 국가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믿음과 일체감이 존재하지 않으면 한 국가는 존립하기 힘들다.

근대국가의 동일성을 확인하는 표지(carte d'identité)는 헌법이다. 국가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보장하는 방책은 국민의 합의에 기초한 최고의 합의문서인 헌법에 규범적 기초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성낙인, 헌법과 국가정체성, 서울대학교 法學』 52권 제1, 20113). 다시 말하면 국가정체성은 헌법에 기초하여 형성되는데, 헌법에 있어서의 대한민국 정체성은 다음 세 가지로 꼽을 수 있다.

첫째, 대한민국이 한반도에서 유일 합법정부임을 분명히 하는 국가적 정통성.

둘째, 헌법 그 자체를 수호하는 헌법적 정통성.

셋째, 법치주의에 기초한 자유민주주의와 자유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입헌적 정통성.

이 세 가지 원칙을 수용하면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임을 인정받을 수 있다. 이를 거부하면 그는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이 될 수 없다.

 

#. 민족정체성의 뿌리는 핏줄

국가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의 하나가 민족이다. 때문에 민족적 관점에서 민족정체성이 거론되기도 한다. 민족정체성이란 특정 민족의 고유한 특성 혹은 소속감을 뜻한다. 오랜 기간 전승된 혈연·언어·역사·문화 같은 공통된 요소들로 민족의 기초가 이뤄지며, 이러한 공통요소에 기반하여 민족적 감정과 귀속감 등이 형성된다.

민족정체성을 만드는 요소는 혈연, 언어, 영토, 종교, 역사, 관습 등 여러 가지다. 이런 요소들은 금방 만들어졌다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상당히 느린 장기적인 과정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고 민족적 정체성이 고정되고 정적인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다른 어떤 역사 현상과 마찬가지로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어느 정도는 변화하고 해체되고 다시 만들어진다(강철구, 민족, 민족적 정체성, 민족주의, 프레시안, 20081119).

모틸(Motyl)민족은 자기 인식적인 문화 공동체(self-conscious cultural community)이고, 국가는 영토 안에서 폭력을 독점하는 정치조직(political organization with a monopoly of violence in some territory)’이라고 정의했다. 국가정체성은 국가에, 민족 정통성은 민족이라는 바탕에 서 있기 때문에 그 개념과 가치관이 다를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 민족주의는 이념적 기능과 역할을 상실했으며, 민족·민족주의 개념에 함유된 대중동원 효과와 특정 집단에 의한 이데올로기 주입 효과의 위험성이 폭로되었다. 그 결과 민족·민족주의는 더 이상 사회구성의 원리가 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박민철, 한반도 통일과 민족정체성 문제: 1990년대 이후 남북 철학계의 민족·민족주의 이해, 시대와 철학, 2016, 271(통권 74)).

 

#. 국가정체성과 민족정체성의 충돌

대한민국은 지난 70여 년간 근대 국민국가의 역사적 과제인 건국, 산업화,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달성했다. 하지만 근현대사를 둘러싼 국가정체성 논쟁과 대립이 지속되고 있다. 이유는 서구에서는 시들해진 민족 개념이 극성을 부리면서 국가정체성과 민족정체성의 충돌 현상을 야기했기 때문이다.

단일민족 단일국가를 이뤄왔던 한반도는 해방되면서 1민족 2국가 체제로 분단되어 국가정체성과 민족정체성이 상호 충돌하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단일민족 단일국가를 이뤄왔던 한반도는 해방되면서 1민족 2국가 체제로 분단되어 국가정체성과 민족정체성이 상호 충돌하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분단으로 인해 단일민족국가를 자부해왔던 이 땅의 구성원은 1민족 2국가로 분화되었다. 게다가 1950년 북한이 대한민국을 침략하여 자신들의 이념과 체제를 폭력으로 강요하는 체험을 통해 두 개의 국가는 하나의 민족이란 인식보다는 서로를 타도해야 할 ()’으로 여기게 되었다.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고, 의식 습관이나 문화가 같은 민족이 이념과 체제의 다름으로 인해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민족에 대한 충성심이 분리되어 상호 대립·갈등·충돌 현상에 처한 것이다.

진정한 한국인의 조건을 묻는 여론조사 결과 혈연적 정체성(민족)보다 정치적 공동체적 정체성(국가) 쪽으로 인식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강원택, 한국 사회의 국가정체성과 민족정체성의 변화). 하지만 한국 사회 일각에서는 국가정체성을 무시하고 민족정체성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집단이 강력하게 존재하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동아일보 편집국장, 한겨레신문 초대 사장을 역임한 저명한 언론인 송건호는 이 시대의 인물과 시대를 민족사적 입장에서 평가한다면 분단과 통일그 어느 측면에서 어떤 역할 했는가를 기준으로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송건호, 해방의 민족사적 인식, 송건호 외 11, 해방 전후사의 인식 1, 한길사, 2004, 14). 이것은 헌법을 바탕으로 한 국가정체성의 시각이 아니라, 민족정체성을 바탕으로 현대사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선전포고였다.

1980년대, 송건호가 주장한 민족적 관점의 역사 보기가 광풍처럼 우리 사회에 몰아쳤다. 북한에서도 1986년 김정일의 우리식 사회주의’, ‘조선민족 제일주의가 등장하면서 민족주의가 폭발했다. 조선민족 제일주의에 대해 북한 학자 김일순은 민족의 존재와 발전에 수령이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고 결정적 역할을 담당한다고 주장했다(김일순, 조선 민족 제일주의 정신의 본질, 철학연구 4,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1990, 16).

조선노동당은 한민족을 가리키는 용어로 조선민족을 사용했으나 1994년 김일성 사망 100일 후 김정일은 담화에서 김일성 민족이 등장했다. 우리 민족의 건국 시조는 단군이지만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는 위대한 김일성 수령 동지라면서 자신들은 배달겨레, 단군의 자손이 아니라 김일성 민족임을 선언한 것이다.

북한은 1990년대 중반부터 자신들은 배달겨레, 단군의 자손이 아니라 '김일성민족'이라고 선언하여 한민족은 2민족 2국가 체제로 돌변하게 되었다.
북한은 1990년대 중반부터 자신들은 배달겨레, 단군의 자손이 아니라 '김일성민족'이라고 선언하여 한민족은 2민족 2국가 체제로 돌변하게 되었다.

 

1995년에는 평양방송이 우리 민족은 수령을 시조로 하는 김일성 민족이고, 현대 우리나라는 수령이 세운 김일성 조선이라고 하여 김일성 민족이 공인화되었다. 이때부터 남북한은 2민족 2국가 체제로 갈라선 셈이다.

 

#. 국가정체성을 부정하는 세력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민족정체성에 기반을 둔 분단과 통일의 기준과 관점으로 한국 현대사를 제멋대로 짜깁기하여 기존의 정설을 뒤엎고 날조된 역사로 둔갑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으로 자리매김하고 기념관 건립을 추진 중이다. 그런데 이승만을 송건호 등이 주장한 분단과 통일관점, 즉 민족정체성 시각에서 조명하여 분단의 원흉이자 독재자로 전락시킬 수도 있다.

한국 현대사를 국가정통성이 아닌, 민족정통성 차원에서 재구성하는 세력은 대한민국은 친일파 민족 반역자들이 외세와 야합하여 탄생시킨 분단의 원흉으로 매도하고, 항일 무장 독립운동가들이 수립한 북한에 민족사적 정통성을 부여한다. 헌법이 규정한 대한민국의 국가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건국훈장은 대한민국 건국에 공로가 뚜렷하거나, 국가의 기초를 공고히 하는 데 이바지한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건국훈장 수훈자 몇 사람의 이력을 추적해 보면 자유와 인권, 법치가 존중되는 자유 민주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보다 그런 가치를 파괴하고 전제 군주국으로의 회귀를 위해 투쟁한 자, 프롤레타리아 독재국가(공산주의) 설립을 지향한 자, 혹은 어떤 형태의 권력이나 억압에 반대한다면서 사실상 공산주의 활동에 주력한 아나키스트들이 다수 발견된다.

홍범도를 둘러싼 논란은 한국인들의 국가정체성과 민족정체성의 모순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민족우선론자들은 민족을 그 무엇을 우선하는 가치로 떠받들며 국가 개념을 파괴한다. 그러한 민족의식의 종착역은 쇼비니즘이다. 
홍범도를 둘러싼 논란은 한국인들의 국가정체성과 민족정체성의 모순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민족우선론자들은 민족을 그 무엇을 우선하는 가치로 떠받들며 국가 개념을 파괴한다. 그러한 민족의식의 종착역은 쇼비니즘이다. 

 

이처럼 중대한 혼란이 발생한 이유는 이승만 정부를 제외한 역대 정부가 건국훈장 수훈 대상자 원칙을 자유·민주를 기준으로 한 국가정통성 차원이 아니라 민족정체성에 근거하여 반일·항일을 기준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특정 인물이 구한말부터 일제 치하에서 구체적으로 대한민국의 건국에 어떤 도움을 주는 행위를 했는지는 묻거나 따지지 않고 반일·항일투쟁 여부만을 가치 기준으로 앞세웠다. 그 결과 공산주의자건 사회주의자건 아나키스트건 가리지 않고 반일·항일을 했거나, 그런 행위에 참여한 사실이 인정되면 건국훈장 수훈 대상자가 되었다.

 

#. ‘민족앞세운 파시즘의 광기

최근 정율성과 홍범도를 둘러싼 논란은 국가정체성과 민족정통성의 갈등·충돌 현상의 대표적 사례다. 국가정체성 입장에서 보면 두 사람은 자유 민주 가치에 반하는 활동을 한 공산주의자다. 반면에 민족정통성 입장에서 보면 정율성은 항일 독립운동가이자 세계적인 음악가이니 기념사업의 정당성이 충분하고, 홍범도는 항일 무장투쟁의 상징적 인물이니 육사 교정에 흉상 설립은 정당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항일 무장 독립운동의 신성성, 무오류성을 주장을 하는 이들에게 아무리 역사적 사실의 중요성을 일깨워도 소용이 없다. 그들의 정신세계는 국가는 없고, 애오라지 핏줄과 혈연으로 얽힌 민족만 존재하며, 민족이 국가를 초월하는 성스런 존재로 추앙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민족정체성을 바탕으로 국가를 허물고 민족의 아성을 쌓으려 한다.

민족정체성이 과잉이 되면 맹목적이고 광신적이며 배타적인 국수주의와 결합하여 파시즘의 광기로 폭발한다. 이 땅의 민족 지상주의자들이 원하는 세상은 그런 쇼비니즘(chauvinism)의 세상 아닐까?

 

김용삼 대기자 dragon00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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