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 F. 앤드루스, 쿠이 션 저/이희정 역,『중국 근현대 미술: 1842년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미진사

영미권에서 중국 근현대 미술사의 교과서로 널리 읽혀온 책이 이번에 한국에서 번역 출판됐다. 전근대 미술사, 이를테면 조선시대 미술사를 교양 차원에서 공부하기 위해서도 동시대 중국과 일본 미술사에 대한 이해는 가히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짐작하는 것 이상으로 동아시아 삼국은 큰 시차 없이 유행을 주고받으면서 각자의 처지에 따라 미감을 발전시켜 나갔기 때문이다. 이는 근대 이후 미술사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하지만 근대화의 방향에 있어 워낙 극과 극으로 다른 좌우파 이데올로기의 굴절을 겪었는지라 중국 근현대 미술사는 특히나 낯설고 경계해야 할 어떤 미지의 영역이 됐다. 중국 공산당의 선전선동 예술이 전부이지 않느냐는 고루한 편견 때문만은 아니다. 중국 근현대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미술에 대해 체계 잡힌 교양서적이 없다시피 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 근현대 미술: 1842년 이후부터 오늘날까지』의 국내 출간은 이 분야에서의 광활한 지적 공백을 중국 근현대 미술사에서의 명작 중심으로 채워주기에 충분해 일독을 권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아편전쟁으로 중화제국이 붕괴하면서 출발한다. 중국과 서양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이고 중국 미술이 서양 미술과의 대화에서 무엇을 배웠고 어떻게 융합해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바로 이 무렵에 장쑤성(江蘇省)의 작은 바닷가 마을이었던 상하이(上海)가 중국과 서양이 만나는 주요 도시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경제 중심지인 강남 지역의 부호들과 중국의 오랜 미술전통을 익힌 화가들이 상하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몰려들어 유행을 만들어냈다.

다음으론 청(淸)이 무너진 후 쑨원과 장제스가 통치하던 민국 시대의 미술로 이어진다. 중국 근대화의 길을 놓고 지식인 사회에서 일대 논쟁이 벌어졌고 신문화운동이 전개됐다. 서양화를 받아들일 것인가, 받아들인다면 어떻게 서양화에 필적하는 것으로 중국화를 융합해낼 것인가 등을 고민했는데 바로 이를 당시 일급화가들의 일련의 명작을 통해 확인해볼 수 있다. 

전근대 전통의 지필묵으로 그릴 것인가, 서양의 유화로 캔버스에 그릴 것인가, 시대의 어떤 주제와 내용을 어떤 형식으로 그려낼 것인가 등은 1949년에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된 이후로도 마찬가지의 문제였다. 이에 더해 중국 근현대 미술은 공산주의 체제 속에서 독특한 여정을 거치게 되었다. 민국 시대 좌파의 '사회적 리얼리즘'과 공산화 이후 공산주의 좌파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에도 계속해서 갈등을 보이며 여러 작품들로 나타났다. 특히 문화대혁명의 이상적 모습을 인민에게 주입하려는 마오쩌둥과 4인방의 요구가 무엇이었는지를 당시 검열 속에 놓인 화가들의 고충에서 읽어낼 수 있다. 

화가들은 마오쩌둥 사망 이후 마주한 적나라한 현실과 허무를 그리고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으로 다시 접하게 된 서구 문화의 최신 조류를 새로운 조형 언어로 자유롭기 그지없는 분위기 속에서 표현하게 된다. 1989년 6월 4일의 비극적인 천안문 사태로 끝나는 듯 했지만, 과거의 극단적 좌파 문화정책으로의 회귀와 같은 유턴은 없었다. 국제여행 허용과 예술 검열의 완화로 중국 예술가들이 국제 무대로 진출하고 활동들을 펼칠 기회를 얻었다.

역자는 이 책의 장점으로 '또 다른 중화' 미술에 대한 소개를 꼽는다. 홍콩과 대만 미술이 중국 대륙과 영국, 일본 등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어떻게 전통을 거듭 재해석해왔는가를 발견하게 된다.

역자 이희정은 영국 맨체스터 대학에서 중국 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대영박물관 아시아 부서에서 큐레이터 어시스턴트로 일했다. 지금은 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김진기 기자 mybeatles@pennmike.com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