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총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상속·증여세율 경영권 승계 작업에 걸림돌"
정규재 대표 "현대차 정의선 체제로 넘어가지 못해 사실상 경영공백"
황승연 경희대 교수 "상속·증여세, 이중과세 문제 존재…세계 각국 폐지 추세"

미국과 중국 등에서 판매량이 줄어 수익성이 악화돼 주식 가치 하락은 물론 외환위기 이후 20년만에 신용등급까지 하향 조정된 현대자동차를 둘러싼 위기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징벌적 상속·증여세 체계가 현대차 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회장 손경식, 이하 경총) 관계자는 5일 펜앤드마이크(PenN)와 통화에서 "경총이 개별 기업에 대한 사안을 파악하고 있거나 대변하는 단체는 아니지만 산업화 시대인 1960~1970년대에 문을 연 기업 중 상당수가 2~4세에게 경영권을 물려줘야 할 시점을 맞은 것과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상속·증여세율 탓에 사실상 기업 승계가 막혀 있는 것과 재계에서 상속세 제도 개편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 등은 모두 사실"이라고 말했다.

경총은 현대차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경영자 세대교체를 앞두고 있는 기업들은 그 규모를 떠나서 모두 징벌적 상속·증여세 때문에 승계 작업에 곤혹을 치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확인해줬다.   

현대차는 최근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 1일(현지시간) 현대차의 신용등급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무디스는 "현대차의 등급 전망 조정은 주요 시장의 비우호적인 영업환경과 지속적인 비용 압박으로 수익성이 향후 1~2년간 취약한 수준에 머무를 가능성이 증가한 것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31일에는 S&P가 현대차의 신용등급을 'A-'에서 'BBB+'하향 조정한 바 있다. 현대차의 신용등급을 S&P가 하향 조정한 것은 1998년 이후 처음이다.

현대차는 올해 3분기에 작년 같은 기간보다 영업이익이 76%나 격감하면서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 이는 2010년 새로운 회계기준(IFRS)이 도입된 이후 분기 기준으로 최저의 영업이익이다. 현대차의 이같은 실적은 시장 예상치보다도 매우 나빠 '어닝 쇼크'라고 할 정도였다.

현대차가 대내외적 경영 불확실성이 야기되는 상황에서도 생상라인 구조조정 등이 신속히 일어나지 않은 것은 상속·증여세 등의 영향으로 건강이상설이 나오고 있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으로부터 정의선 부회장에게 경영권이 완전히 승계되지 못하면서 사실상의 경영 공백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규재 펜앤드마이크 대표 겸 주필은 지난 2일 PenN의 유튜브(YouTube) 채널인 '펜앤드마이크 정규재TV'에 업로드한 영상칼럼을 통해 "현대차도 쉬쉬하고 언론도 쓰지 않지만 정몽구 회장이 경영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고 회사에 출근을 오랫동안 하지 않고 있다는 루머가 파다하다"며 이런 상황에서도 경영권 승계 작업이 진행될 경우 국가가 65%의 상속·증여세를 부과해 사실상 국유화가 되기에 정의선 부회장에게 경영권이 완전히 넘어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정 대표는 "지나치게 높은 상속·증여세율로 현대차가 정의선 부회장 체제로 넘어가지 못하면서 경영공백이 생겼고 결국 시대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며 "10년 넘게 부회장과 사장 타이틀을 달고 정몽구 회장 밑에서 일하던 직원들이 회사를 틀어쥐면서 현대차가 망해가고 있는 것"이라고 현대차의 진짜 위기는 사실 내부에 존재하고 있고 그 위기의 원인은 지나치게 높은 상속·증여세율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국내 기업 상속·증여세는 실효세율을 기준으로 최대 65%에 달한다. 이는 기업 오너가 자녀에게 기업을 물려 주면 사실상의 국유화가 되는 것이다. 명목 상속·증여세율은 최대 50%고 최대주주 지분을 물려받으면 명목 상속·증여세율 50%에 30% 할증이 붙어 실질 상속·증여세율은 65%가 된다. 이는 독일 4.5%, 벨기에 3.5%, 스페인 1.7%, 프랑스 11.5%, 영국 20%, 일본 55%의 실질 상속·증여세율을 넘어서는 수치다. 캐나다, 호주, 스웨덴 등 경제혁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5개국 중 절반인 17개국에서는 자녀가 기업을 물려받을 때 아예 상속·증여세를 물리지 않는다. 

상속·증여세가 기업승계에 걸림돌이 되는 상황은 현대차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지난 2일 구광모 회장은 (주)LG의 최대주주가 됐다. 선친인 고(故) 구본무 회장이 보유했던 (주)LG 주식 11.3%(1945만8169주) 가운데 8.8%(1512만2169주)를 물려받은 구 회장은 국내 역대 상속세 납부액 중 가장 많을 것으로 추정되는 9000억 원 이상의 상속세를 내야 한다. 재계의 관심은 구광모 회장이 이 상속세를 어떻게 마련할지에 쏠리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 역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부모의 지분을 물려받을 때 상속세 여파로 경영권이 약화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아버지인 이건희 회장과 어머니인 홍라희 여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4.72%)의 절반 이상을 팔아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 수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 회장과 홍 여사 지분은 현재가치가 13조3500억 원에 달하는 만큼 이 부회장은 8조~9조원 가량을 상속세로 내야 한다"며 "너무 규모가 크기 때문에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 상속 주식을 일부 팔아 상속세를 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총 관계자는 "기업승계가 단순한 부(富)의 이전이 아니라 기업의 존속, 체와된 노하우 및 핵심기술 전수, 일자리 창출  및 유지, 기업가 정신 함양 등 사회·경제적으로 미치는 긍정적 효과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며 "기업승계 문제를 '부의 대물림', '불로소득'이라는 부정적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경총은 상속·증여세를 부담하기 위해 경영권이 흔들리는 기업들의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경영권 방어수단인 차등의결권을 시급히 법제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공식적으로 냈다. 이는 재계가 그동안 상속·증여세율을 낮추기 어렵다면 차등의결권이라도 도입해달라는 요구와 일맥상통한다.

재계는 '1주=1의결권' 원칙의 예외를 인정하고 보통주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지닌 주식 발생을 허용해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은 상속세율이 40%로 높지만 차등의결권을 통해 경영권을 보해해 주고 있다. 워런 버핏이 운영하는 투자회사 벅셔해서웨이는 버핏 회장에게 일반 주주의 200배에 해당하는 의결권을 부여하고 있다. 미국 페이스북의 저커버그, 중국 샤오미의 레이쥔도 차등의결권을 인장받고 있다. 

상속·증여세에 대한 재계의 불만에도 더불어민주당은 최대 50%인 기존 명목 상속세율을 60%까지 상향하는 상증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에 대해 황승연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만약 새로운 법이 통과될 경우, 60%의 상속·증여세에 할증제도가 적용되면 최고세율은 78%가 된다. 이 정도 되면 기업에 대한 개인의 사유재산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고 일갈했다.

또 황 교수는 "상속·증여세는 이중과세의 문제가 존재한다. 상속인이 상속받는 재산은 그의 부모가 소득세 등의 세금을 내고 모은 재산일 것이다. 그 재산을 생전에 다 쓰지 않고 절약하고 모아서 자식에게 물려주었을 때, 이에 대해 세금을 또 부과한다는 것은 이중과세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세계 각국은 상속·증여세를 폐지하고 있고 상속·증여세가 존재하는 나라들도 세율이 높지 않다"고 덧붙였다. 

윤희성 기자 uniflow84@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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