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이 그 어떤 가치를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인류가 성취해 온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능가할 수 없다. 역사에 대한 해석은 언제나 열려있어야 한다. 처벌법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기본권을 제약하겠다는 전체주의적 발상이다.

나연준 객원 칼럼니스트
나연준 객원 칼럼니스트

9일 '5·18 왜곡처벌법'(이하 '처벌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법에 따르면 '5·18민주화운동'을 부인·비방·왜곡·날조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적용 대상은 출판물, 전시물, 공연물 상영뿐만 아니라 토론회와 가두연설 등을 포괄한다.

좌파는 광주5·18을 '민주화 운동'의 상징으로 추앙하면서도 5·18의 이름으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법을 만들었다. 헌법적 가치와 충돌을 막기 위한 조항이 있다고 하지만, 진정 헌법적 가치가 중요했다면 애초에 '처벌법'은 탄생하지 말았어야 한다.

한편 국회는 천안함 폭침 왜곡을 처벌하는 법안에 대해서는 "학문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 요소가 있다"는 검토 보고서를 냈다. 두 법안에 대한 국회의 태도를 비교하면, 좌파가 얼마나 역사를 당파적으로 이용하고 있는지 여실하게 드러난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평가와 해석은 자유의 영역이므로 국가 권력의 개입을 최대한 배제해야 한다. 예컨대 '북한군 대규모 침투설'과 '광수 X호' 따위는 대표적으로 5·18을 왜곡하는 '설'(說)이다. 이러한 발언이 문제가 있다면 공론장에서 검증받으면 그만이다. 실제로 이것들은 공론장에서 게토화되었으며 학문적 발언권도 없다. 특정인에 대한 명예훼손이 있다면, 이 역시 지금 형법으로 처벌이 가능하다. 누구나 특정한 사건에 대해 발언할 자유가 있고 그에 대해 책임지면 되는 것이다.

반면 '처벌법'은 발언 자체를 막아버리겠다는 것이다. 5·18이 그 어떤 가치를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인류가 성취해 온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능가할 수 없다. 역사에 대한 해석은 언제나 열려있어야 한다. 처벌법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기본권을 제약하겠다는 전체주의적 발상이다.

무엇보다 절망스러운 것은 호남 시민사회와 지식인의 침묵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5·18 관련 단체와 학회에 직함을 갖고 있으며, 논문과 도서, 강연을 비롯한 텍스트를 만들어왔다. 뿐만 아니라 5·18 기념행사에서 기념사와 발언을 늘어놓았을 것이다. 이들은 5·18을 민주주의 현현, 공동체정신, 대동(大同)정신, 시민의 헌신과 저항 등으로 평가해왔다.

이들은 '처벌법'을 보고서도 저런 상찬을 할 수 있을까? 지금 5·18은 '명목'만 민주화 운동이다. 실제 기능으로서 5·18은 전체주의의 알리바이, 망자(亡者)를 앞세운 정치투쟁의 도구, 당파적 이기주의일 뿐이다. 처벌법 제정과 이를 둘러싼 호남 시민사회의 태도는 '기능으로서 5·18'의 성격을 스스로 폭로하고 있다.

호남 시민사회가 5·18과 광주를 당파적으로 이용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9월26일 광주지역 시민단체와 교수들은 소위 '검찰개혁'을 명분으로 무려 8천여 명을 모아 시국선언을 하며 '조국(曺國) 구하기'에 나섰다. 급기야 2019년 10월 서초동 '조국 수호 집회'에서는 '광주가 조국이다'라는 문구가 적힌 깃발이 등장하기까지 했다.

올해 1월 광주광역시 지하철 광주문화전당역에 극단적 문재인 지지자들이 대통령 생일축하 광고를 걸었다. '밝은 달을 향한 일편단심' 같은 낯뜨거운 문구와 함께 말이다. 역에서 나오면 바로 5.18의 상징과 같은 옛 전남도청이 있다. 지난 2월 윤석열 검찰총장이 광주고검·지검을 방문하는 자리에 등장한 5.18 관련 단체회원들은 '윤석열 총장! 오월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나와 시위를 하다 마찰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호남 시민사회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5.18의 상징성을 독점하고 친(親)정부적 행보로 일관하고 있다. 만약 이들이 5.18에서 계승할 정신이 있다고 믿는다면, 또한 과거 5.18을 상찬해온 자신의 발언에 일말의 책임의식이 있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짓이다. 위 사례들은 호남 시민사회와 지식인이 얼마나 당파적 이기주의로 5.18을 소비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처럼 살아있는 권력의 '마름' 노릇을 하며 5.18을 뜯어먹는 자들이 호남 시민사회와 학계다. 사실 '역사왜곡처벌법'이 가장 먼저 단죄해야할 자들이 있다면, 바로 이들일 것이다. 이들이야말로 5.18정신계승을 떠들면서 사실상 5.18을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들에게 5.18은 무엇인가? 이런저런 행사와 사업을 띄워놓고 착복하는 가외 수입이다. 권력에게 교태를 부리는 지적 매소부(賣笑婦)의 민낯을 가려주는 정숙한 가면이다. 성역을 만들어 정치적 반대파를 찌르는 칼날이다. 즉 돈과 위선, 무기인 것이다.

호남 시민사회와 지식인 집단은 5.18의 성역화·금기화가 호남인을 위한 것인 양 떠들고 다닌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다. 이들의 당파적 행태야말로 호남을 고립시키는 족쇄다. 이들은 호남인에게 역사적 트라우마를 자극하고 재현시켜서, 이를 빌미로 수준 미달의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 대가로 이들은 조직의 성장과 개인의 이익을 보장받는다. 반면 호남인은 맹목적 지지로 인해 다른 지역으로부터 비난을 받는다.

즉, 호남을 고립시킨 대가는 시민사회 인사들이 취하고, 그 손실은 대다수 호남인이 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고립을 두렵다는 이유로 문재인 정부를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호남 유권자도 지탄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더 큰 발언권을 가진 자에게 더 큰 책임을 물어야 한다. 5.18을 팔아 권력의 '마름'이 된 호남 시민사회는 가장 날서게 비판받아야 하는 집단이다.

5.18을 추앙하는 좌파들은 1980년 5월 광주가 고립되었다고 항상 말한다. 그러나 2020년 광주 역시 고립되었다. 다만 오늘의 고립은 5.18이, 더 정확히 말하면 5.18을 팔아먹은 호남 시민사회와 지식인이 자초한 것이다.

5·18 마지막 수배자였던 윤한봉이 미국에서 광주로 돌아왔을 때 지역 운동권은 그에게 안기부 프락치라는 둥, 청와대의 지원을 받았다는 둥하며 중상모략을 퍼부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 《망명》(2009)에서 당시의 심경을 이렇게 쓰고 있다.

"운동의 탈을 쓰고 5월을 팔고 자신들의 주도권과 영향력과 명예와 권위가 훼손되었다고 판단되자마자 대뜸 그런 모함 중상을 시작한 것이다. (중략) 나는 환멸을 느껴 5·18 기념행사장에는 귀국 후 한 번도 나가지 않았다. 도청 앞에도 망월동에도 행사 때는 가지 않았다. 또 중상을 한 모운동 세력들이 설쳐대는 행사장에도 가지 않았다."

지금 운동의 탈을 쓰고 주도권과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모운동세력은 누구인가. 호남 시민사회와 지식인의 거의 전부다. 입으로 민주화의 성지를 외치며 손으로 민주화의 묘지를 만드는 묘혈꾼, 이것이 호남시민사회의 자화상이다.

나연준 객원 칼럼니스트(제3의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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