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전 기억, 시각으로 검찰해체 추진하는 운동권 출신 여권 핵심들
40년전 기억, 시각으로 검찰해체 추진하는 운동권 출신 여권 핵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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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킹' 포스터
영화 '더 킹' 포스터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은 서울지검 형사부 평검사로 있던 2006년 한 진보매체에 “검찰수사를 피하는 법”이라는 글을 기고했다. 당시 이 일은 검찰조직 내부에 적지않은 파문을 일으켰지만 금태섭 검사는 징계나 인사조치 같은 별다른 불이익을 별다른 불이익을 받지 않았다. 벌써 15년전의 일이다.

전국 2000여명의 검사 중 여성 검사의 비율은 지난 2018년 30%를 돌파했다. 2000년 1.8%이던 여성 검사 비율은 2007년 11.6%로 처음으로 10%대를 넘어섰고, 2010년에는 20%대로 올라섰다. 여성 판사의 비율도 2019년 30%를 돌파했다.

1980년대 중반 무렵 우리나라에 외국계 기업들이 막 진출, 지사를 차리기 시작했을 때, 여성 인력들을 집중적으로 채용했다. 국내 대기업의 유능한 남성 인력들을 스카웃하기 어려운 이유도 있었지만 보다 더 큰 원인은 한국사회에 만연한 남성들의 모럴 해저드, 유흥문화에서 비롯된 부정부패였다.

회사돈, 거래처로부터의 접대로 룸살롱을 전전하는 한국 남성들의 행태를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1990년대 이전, 즉 20세기 검찰조직의 문화는 ‘스폰서와 룸살롱’으로 표현할 수 있다. 부장검사가 평검사들과 회식을 하면 최고급 한정식집이나 일식집에서 저녁을 먹고 2차는 거의 룸살롱행이었다. 룸살롱에 가면 으레 변호사나 사업가 같은 스폰서가 나타났다.

하지만 김영삼 김대중 정부 시절 집중적으로 발생한 검사들의 폭탄주와 룸살롱, 스폰서 파동으로 이런 문화는 막을 내렸다. 대표적인 것이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과 옷로비 사건이다.

이미 10여년전부터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주변의 고기집이나 일식집에 검사들이 모여 회식을 하는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판검사들을 겨냥한 비싼 식당들도 사라졌다. 룸살롱도 마찬가지다.

검찰개혁이라는 명분하에 검사의 수사권을 경찰과 공수처, 중대범죄수사청으로 넘기고 검찰을 사실상 해체하려는 현 여권의 주류는 1980년대 이후 소위 ‘민주화운동’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에게 검사는 자신들이 한창 캠퍼스에서 민주화 시위를 하고 있을 때 “혼자만 잘먹고 살기위해” 고시공부만 하던 ‘이기주의자’들이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집시법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돼 포승줄에 묶여서 검찰에 송치됐을 때 고압적으로 조사를 하고 훈계를 하던 검사를 잊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그랬고, 지금 검찰해체를 밀어붙이는 여당 국회의원 대부분이 이런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다.

금태섭 검사가 한 신문에 그런 기고문을 냈을 때, 당시 서울지검 형사부의 한 부장검사는 이런 말을 했다. “요즘은 검사들과 저녁을 잘 먹지 않는다. 젊은 검사들이 술을 잘 먹지 않으려는데다 여성검사도 많고, 혹 소고기집이라도 가면 우리 부장은 무슨 돈으로 고기를 사는지 하는 눈총이 느껴진다.”

10년이 훌쩍 지난 일이다. 요즘 출퇴근 시간 서초동 길가,전철에서 마주치는 수수한 모습의 젊은 남성과 여성들이 알고보면 검사들이다.

하지만 20세기 검찰문화, 정경유착에 스폰서와 엮인 일그러진 검사들이 현재의 모습인 것처럼 묘사한 ‘내부자들’이나 ‘더킹’ 같은 영화나 드라마가 나온 것은 불과 몇 년도 되지 않았다. 이런 픽션들은 진보정권의 탄생은 물론 검찰개혁에도 큰 힘을 실어주었다.

지금 여권 핵심부가 밀어붙이는 검찰해체는 군사독재 시절의 데자뷰다. 40년이 지나 많은 것이 변했다. 그때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완전히 틀렸다.

이상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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