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여군의 열병식 모습 [사진=연합뉴스]
북한 여군의 열병식 모습 [사진=연합뉴스]

 

한국 페미니즘의 역사에는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양성평등을 지향하는 전통적인 여성운동도 없지 않았지만,1980년대 이후로는 좌파 운동권과 같은 물결속에 흘러왔다.

하지만 이념보다 더 여성해방을 중시하는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에게 최대의 적은 독재자나 부르조아가 아닌 남성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국면에서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이 탄핵의 배경에 여성에 대한 편견이 작용하지는 않는지, 또 탄핵으로 인해 상당기간 여성 대통령의 출현이 어려워지는 자충수가 되지 않을지 우려했던 것은 이런 맥락 때문이다.

급진적 페미니스트 진영에서는 한국의 남녀차별에 가장 큰 이유중 하나가 남자만 다녀오는 군대문제라는 인식하에 여성도 군복무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최근  청와대 청원 20만명을 돌파한 여성 징병운동의 단초가 20년쯤 전에 시작된 것이다.

2003년 봄, 한 진보적 페미니스트 잡지가 특집으로 ‘여자와 군대’를 다루면서 편집자가 “여자도 군대를 보내라”고 주장했다. 이에대해 “여자는 출산의 의무를 지고있지 않으냐” “군사문화로 인한 폐해와 여성문제는 국민 개병제가 주 원인인 만큼 모병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등 반박이 이루어지면서 거센 논쟁을 일으킨 바 있다.

그해 1월 미국에서는 이라크 전쟁을 앞두고 10대 남녀 청소년 5명이 남성만 징병대상으로 등록하게 돼 있는 현행법의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훨씬 앞서 90년대 중반, 유엔 사무총장을 지냈던 부트로스 갈리라는 사람은 ‘평화과정의 여성들’이라는 보고서에서 “여성을 군대로부터 배제하는 것은 여성에게나 평화과정 양쪽에 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여성을 위해서도, 평화를 위해서라도 여자도 군대를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해에는 또 애니카 소렌스탐이라는 여성 프로골퍼가 남자 프로골퍼들과 ‘맞장’을 떠 예선에서 탈락하긴 했지만 남자 프로골프계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는 실력을 보여주었다. 소렌스탐의 도전이 가능했던 것은 골프라는 스포츠의 속성 때문이었다.

달리기나 역도 처럼 근력에서 나오는 스피드나 힘을 겨루는 스포츠와 달리 골프는 장비(골프 클럽)를 이용하는 기술과 정교성, 경기운영 능력, 침착성이 더 중요하다.

이라크 전쟁에서 목격했듯이 현대전은 창과 칼을 쓰는데 필요한 근육의 싸움이 아니라 최첨단 장비전이다. 크루즈 미사일의 컴퓨터와 발사 버튼은 남녀를 차별하지 않으며 여자가 쏜다고 사정거리가 줄어들지 않는다.

실제로 미군에는 가장 비싼 전투기인 F14를 조종하는 여군 장교도 있었고 ‘무적 탱크’ M1A1 에브럼즈 전차의 여군 운전병도 많다.

‘1가족 1자녀 출산’으로 인한 병역자원 부족현상이 본격화 된 2005년부터 정부가 각종 대책을 만들어왔지만 여성 징병제야 말로 가장 본질에 접근한 대책이다. 청년 일자리 대책 차원의 모병제라도 상관이 없다.

현재 여성징병제를 도입하고 있는 국가는 북한, 이스라엘, 노르웨이, 스웨덴, 볼리비아, 차드, 모잠비크 등 11개국이다.

대표적인 여성징병제 국가는 이스라엘로 부대에 따라 여군은 10∼30%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여성은 24개월, 남성은 30개월을 복무한다. 여성은 결혼과 임신, 종교 등으로 면제가 가능해 전체 여성의 40∼50%만 군대에 가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스라엘을 포함해 네덜란드·노르웨이·스웨덴 등 4개국은 양성평등을 이유로 여성징병제를 실시하고 있다. 스웨덴의 경우 여성징병제를 2010년 폐지했지만 2018년 부활 시켰다. 스웨덴 정부는 당시 "현대의 징집제도는 성별 중립적이어야 하므로 남성과 여성 양쪽 모두 포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좌파 운동권과 같은 길을 걸었던 한국의 진보적 페미니스트들이 이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이상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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