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앤 단독 인터뷰①] '국군포로 50년' 유영복 "돌아오지 못한 전우들 잊지 못한다"
[펜앤 단독 인터뷰①] '국군포로 50년' 유영복 "돌아오지 못한 전우들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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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6일 오전 서울시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6회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 추념사를 하고 있다. 2021.6.6(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오전 서울시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6회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 추념사를 하고 있다. 2021.6.6(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현충일 제66주년을 맞이한 6일, 국립서울현충원에 참석해 추념사를 밝혔다. 하지만 대통령의 추념사 속에는 여전히 돌아오지 못한 국군 장병들의 존재가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바로 70년 전 북한에 억류됐지만 귀환하지 못한 '국군포로'에 관한 이야기다.

기자는 지난 5일 저녁 경기도 외곽에 위치한 어느 집을 찾았다. 이곳에 살고 있는 유영복(92) 씨는 국군 이등중사로 1950년 6·25 전쟁에 참전했던 '참전 용사'다. 2년 전인 2019년부터 알고 지내다 약 10개월 만인 지난 5일 다시 만났다. 유 씨는 이날 기자에게 "그동안 잊지 않고 다시 찾아줘서 고맙다"라며 두 손을 잡았다.

유 씨는 6.25 전쟁에 참전(군번 9395049)했는데, 정전협정을 코앞에 둔 1953년 6월 강원도 금화전투에서 북한군과의 전투 중 포로로 잡혀 북한으로 끌려갔다. 1954년 9월 화랑무공훈장을 받으며 전사자(戰死者) 처리됐지만, 그는 북한의 한 광산에서 혹독한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다 2000년 두만강을 넘어 국내로 귀환했다.

기자는 지난 5일 저녁 경기도 외곽에 위치한 '국군귀환용사' 유영복 씨의 집에서 과거 그의 사진을 봤다.2021.06.06(사진편집=조주형 기자)
기자는 지난 5일 저녁 경기도 외곽에 위치한 '국군귀환용사' 유영복 씨의 집에서 과거 그의 사진을 봤다.2021.06.06(사진편집=조주형 기자)

앞서 그렇게 끌려간 수많은 국군포로가 있었지만, 이들은 고령의 나이가 되어도 돌아오지 못했다. 1994년 故 조창호 중위를 시작으로 몇 명의 국군용사들이 간신히 탈북하면서 국내 귀환했지만, 여전히 4만 명의 국군용사들이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돌아오지 못한 수많은 전우(戰友)들의 얼굴이 떠올랐다"라던 그는 '국군귀환용사회'를 만들어 '국군포로귀환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번 현충일 행사에 초청받지 못했다고 지난 5일 기자에게 밝혔다. 6일 서울 현충원에서 "국가가 나와 나의 가족을 보살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국가를 위해 몸을 바칠 수 있다"라던 문재인 대통령의 추념사가 무색하게 들리는 부분이다.

이에 기자는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여러 편에 걸쳐 그와 나눴던 그동안의 인터뷰 내용 일부를 원문 등으로 연재한다. 다음은 2019년 나눴던 첫 이야기다.

기자는 지난 2019년 경기도 외곽에 위치한 국군귀환용사 유영복 씨의 집에서 그를 만났다. 2021.06.06(사진편집=조주형 기자)
기자는 지난 2019년 경기도 외곽에 위치한 국군귀환용사 유영복 씨의 집에서 그를 만났다. 2021.06.06(사진편집=조주형 기자)

- 안녕하세요, 회장님. 국군포로, 그러니까 '국군귀환용사'에 대해 궁금해서 왔습니다.
▲ 우리들 문제를 얘기하기에는 때가 너무 늦은 것 같고 정부도 관심없어서 조용히 지내는 중입니다. 어떤 문제가 궁금한 거예요, 기자양반?

-'국군포로' 송환 문제입니다. 이런 부분이 좀 많이 궁금해서요. 혹시 말씀주실 수 있는지?
▲ 내가, 지금 분위기가 계속 하기에는... 나 분위기가.. 이거 국가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인데 언론에서 떠들어도 언론도 조용하고 토론 문제도 안나오고 나도 그래서 조용히 지내는데...어쩌다가 말이지. 내가 이렇게 기자 양반 만났는데, 궁금해 하시니까 다 답해 드리리다.

-국군귀환용사회를 조직했다고 알고 있는데요, 계속하는 것인지?
▲ 너무 때가 늦었어요. 국군포로 귀환 문제를 어떻게 할 그런 방도도 없고, 살아있는 국군 포로도 없고 24명밖에 없는데(2021년 6월3일 기준 18명 생존).. 지금 북한에 얘기한다해도 응하지도 않을 겁니다. 지금 (국군포로가) 있다고 하더라도 많아봐야 1~2명 있을 겁니다. 모두 죽고...박선영 물망초재단 이사장도 22명 정도가 살아있다고 하는데... 훗날 역사가 논의할지는 몰라도, 지금 흐름으로 봐서는 그 문제는...정부 스스로가 조용하니까...참.

-이번 정부가 초기에 '남북 화해 분위기'를 대대적으로 알렸는데.
▲ 남북 관계를 좋게 풀면서 전사자 유해 발굴했잖아요? 돌아가신 분들도 중요하지요. 그런데, 지금 정부는 살아 있는 국군포로 1명도 못데리고 왔잖아요. 살아있는 사람도 못챙기면서 그게 무슨 소리인지. 참...(정부가)데려올 능력은 없지요. 그래서 제가 증언만 해드리는 거지요. 이건(국군포로 송환 문제) 국가가 할 일인데, 이명박 때부터도 국정과제로도 두고, 박근혜 정권때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들어오자마자 아주 쏙 들어갔어요. 조선일보 기자도 만나보고 그랬는데, 정부가 반응도 없고 끄집어 내봤자 말도 없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있는거지요. 기자 선생 생각은?

-그러면, 국군포로 문제가 처음부터 조용했던 겁니까?
▲ 국가가 발벗고 나서고 그랬어요 처음에는. '늙은 국군 포로 다 부려먹었는데 귀환시켜라'라며 처음에는 '보내달라'라고 그랬지만...그러다 김대중 대통령이(2000년) 북한에 갔을 때 국군포로 1~2명도 아니고 많이 있는데 아예 말씀도 없으시고. 그 때 '아 이제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우리 한국 대통령도 우리 국군포로에 대해 말이 없는데 누가 날 찾겠소? 그래서 내가 떠났어요. (2000년) 6월15일 공동선언을 했는데, 저는 7월 중순에 떠났어요. 두만강 넘어서 한국에 온게 2000년 8월30일이오. 드디어 47년만에 한국에 왔어요.

국군으로 6.25 전쟁에 참전했다가 북한군에 잡혀 50년 동안 억류됐다 생환한 유영복 국군귀환용사회장.(사진=연합뉴스)
국군으로 6.25 전쟁에 참전했다가 북한군에 잡혀 50년 동안 억류됐다 생환한 유영복 국군귀환용사회장.(사진=연합뉴스)

-그 때 많이 어땠습니까?
▲ 솔직히 말해서 그래도 그때 대통령 와서 국군포로 문제 협상해서 보내달라 그랬으면 못오더라도 서신 교환만이라도 얘기할 줄 알았는데...한마디 말도 없었어요. 내가 오기 전에 국군의 조창호 등이 왔더라고요. 여기 와서 몇 사람 만났고, 언론에서 공개하고 그랬는데요, 국군포로 문제를. 이명박 대통령도 박근혜 대통령도 일단 시도는 하는 것 같았어요. 다만 해결이 안됐지만...근데 문재인 정부가 들어오자마자 아예 해결은커녕 북한에 부담이 되는지 아예 말도 없었어요. 국가가 부담스러워 하는데 괜히 내가 복잡하게 해결도 못하면서 나서는 건... 일단 한 명도 없다고 하잖아요?

-북한은 국군포로가 없다고 선전(宣傳)하던데요?
▲ 초기에 국군포로는 포로수용소에 넣었는데, 그 다음에는 아예 명칭을 없앤 후 포로들을 인민군대에 편입을 시켰습니다. 광산에도 투입 했으니 없어졌다고 말을 합니다. 그래놓고서는 그 부대 명칭을 '내무성 건설대'다 해서 500~600명씩 부대를 편성해 탄광으로 보냈어요. 포로 수용소가 없다는 논리죠. 애초에 포로들을 보내려는 생각을 아예 안한게지. 광산으로 데려갈 생각이었으니까. 그 이후로는 아예 광산이나 탄광에서 부려먹자 하고 생각한거죠. 훗날 교환하겠단 생각 자체를 안한거죠. '000 인민부대', 'xxx 건설대'라는 명칭을 달아서 관리한 겁니다. 그러니까 일부러 또 압력을 가해서 인민군대를 투입하고요. '포로'라는 말 자체를 안한 겁니다. 그래서 포로수용소 없다고 하는 겁니다. '당신들은 해방전사'라면서 광산에다 집어넣고, 사상교육 시키고, 광산에서 무장보초를 같이 데리고 다니다가, 50년대에는 공민으로 넣어서 혜택 주는 것 처럼 공민화 시켰어요.

-북한에 따르면 국군 용사들이 자진 월북했다고도 하던데요?
▲ 그러니까, 그들 입장에서는 '포로'라는 건 아예 없는 거지요. 자진 월북으로 둔갑하는 겁니다. 북한은 자기네들 주민들도 '핵심분자네, 동요분자네' 하면서 구분을 하는데, 하물며 북한군을 상대로 총을 쐈던 국군포로는 적대계층으로 본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 가족까지도 차별하고 탄압하고 감시하는데, '검덕 광산에 남아서 일하겠습니다'라고 누가 하겠느냐라고 제가 과거 국회에서 증언을 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아예 반응도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 사람들 일부가, 남한의 국군 포로가 자진 월북한 사람이라는 등의 말을 자꾸 하고 있으니 증언에 나선 거예요. 그들은 성분을 구분해서 동요층이니 뭐니 하는데 당연히 총쏜자들은 안좋게 봅니다. 그런데 거기 남겠다고 했을 사람이 있겠느냐 이거예요. 여기서 그런 걸 인정안하는 사람들 있는데, 설사 한 두명은 있는지는 몰라도, 죽기 쉬운 탄광에서 일하는 걸 좋다는 사람이 누가 있겠소? 나도 나라 지키려다 이렇게 된 건데...

1950년 한국전쟁 발발 후 남하하는 수천명의 피난민과 북상하는 아군의 모습.(사진=연합뉴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후 남하하는 수천명의 피난민과 북상하는 아군의 모습.(사진=연합뉴스)

-지금 몇 명 정도 있을 것으로 보십니까? 이들이 돌아올 수 있겠습니까?
▲ 제가 1929년생입니다. 아버지가 출생신고를 늦게 해서 30년생으로 돼 있습니다.  제가 만70세 때(2000년) 한국으로 왔는데...지금은 국군귀환용사들이 거의 다 죽었습니다. 북쪽의 국군포로가 있더라도 한 두명 정도 간신히 살아는 있겠지요. 하지만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들하고 며느리하고 손자하고 제가 2011년경 빼내왔지만 처음에 나는 혼자 왔어요. 탈북이 참 힘든건데...

-다들 지금 말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내가 여기 한국에 와서 20년이 흘렀어요. 그동안 국가도 누구도 해결 못하고 누구 하나 발벗고 나서지도 못하고 있어요. 국가와 국방부에 부담이 되는 것 같은데... 실현성 있으면 내가 계속 떠들겠습니다. 박선영 물망초재단 이사장이 그렇게 노력을 했는데, 우리 국군포로 22명이 살아있다면서 주소까지 밝혔는데, 지금 하나도 못 데리고 오고 있어요.

-내년(2020년)이면 6·25 전쟁 70주년인데요. 무슨 묘안이라도?
▲ 우리 살아있는 국군포로들 문제는 대한민국 안보와도 연결되고, 앞으로 젊은 청년들이 군인이 되었을때 국가가 무책임하면, 용감하게 나설 수 있겠는가라는 문제와 연결됩니다. '미국의 강대함'이라는 것은, 국가가 나라를 위해 싸운 사람들을 책임져 준다는 것에 있지 않을까요? 우리도 그런 분위기가 있는 것 같지만, 현재 정부가 나서지도 않으니 원...어떻게 하면 좋겠소, 기자 양반?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27일 경기 파주시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악수하고 있는 모습(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27일 경기 파주시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악수하고 있는 모습(사진=연합뉴스)

 

조주형 기자 chamsae9988@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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