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남부지법 손승우 판사, "도주 우려의 현저성 판단할 때 사회적 지위 고려 可"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고문 "구치소가 차마 하지 못한 말, 법원이 판결로 해 줘"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대한민국헌법 제11조 1항)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대한민국헌법 제11조 2항)

대한민국은 헌법 조문을 통해 법 앞의 평등과 신분제의 철폐를 선언한 민주공화국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피고로 한 어느 손해배상청구소송(서울남부지방법원 2019가단265059)에서 법원이 ‘사회적 신분 계급’을 인정하는 취지의 판결을 내려 논란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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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출두를 위해 출정한 김경수 경상남도지사(왼쪽)와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고문(오른쪽). 김 지사는 손이 자유로운 반면, 변 고문의 손에는 수갑이 채워졌다.(사진=연합뉴스)

문제의 사건의 당사자는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고문.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 ‘방아쇠’ 역할을 한, 소위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의 ‘태블릿PC’와 관련해, 여러 기사들과 책 《손석희의 저주》(2017) 등을 통해 해당 태블릿PC가 사실은 최 씨의 것이 아니라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가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피소(被訴)된 인물이다.

변 고문은 지난 2018년 12월10일 해당 혐의에 대해 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서울중앙지방법원 2018고단3660)받고 수감됐다가 2019년 3월4일 보석(保釋)을 신청했다. 같은 해 4월9일 보석 심문기일 출석을 위한 호송 과정에서 서울구치소 측은 변 고문에 대해 수갑을 채우는 처분을 했다.

‘유죄를 예단하는 행위로써 결코 인정할 수 없다!’

변 고문은 서울구치소 측에 강력 항의했다. 그러면서 변 고문은 자신의 심문기일에 앞서 열린 김경수 경상남도지사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서울고등법원 2019노461) 공판 절차에서 김 지사에게 서울구치소 측이 수갑을 채우지 않은 사례를 들어 자신에게만 수갑을 채우는 것은 불편부당한 처분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었다. 이어 변 고문은 대한민국을 상대로 1억원의 위자료 지급을 구하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고 나섰다.

지난 3일 열린 선고 기일에서 서울남부지방법원 손승우 판사(사시50회·연수원40기)는 원고(변희재)의 청구를 기각했다. 호송 과정에서 누구에게 수갑을 채울지, 또 누구에게 수갑을 채우지 않을지를 결정하는 것은 구치소장의 재량권 내에 속하는 처분이어서 김 지사에게는 수갑을 채우지 않고 변 고문에게는 수갑을 채운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판결이다. 그러면서 손 판사는 “사회적 지위가 고려 요소가 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 사건 변론 중 변희재 고문 측은 김 지사와 자신은 체격 조건이나 신분 등에 있어서 별 차이가 없는데 김 지사와 달리 호송 중 자신에게만 수갑을 채운 것은 평등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해당 재판의 증인으로 출석한 서울구치소 출정과장은 “(이같은 차별 처우는) 김 지사와 같은 정권 실세의 사회적 지위를 고려한 것이냐?”는 변 고문의 질문에 “고려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재판 과정에서 ‘수갑 차용’과 관련한 구체적인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하지만 손 판사는 “원고와 같은 출정 수용자의 경우 수갑이나 포승을 사용하는 것이 원칙으로 규정되어 있고, 예외적으로 소장의 허가에 따라 보호장비 사용을 완화하거나 사용하지 않을 수 있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으며, 실제 계호 업무의 경우 도주의 우려가 현저히 낮음을 이유로 수갑이나 포승 사용이 제외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원고는 김경수 경상남도지사와 같은 피고인 신분 또는 비슷한 신체적 조건 등을 강조하고 있으나, 도주 우려의 현저성을 판단함에 있어 피고인의 직업, 사회적 지위 또한 그 고려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변희재, “구치소 측이 차마 말 못 한 ‘사회적 신분을 고려’...법원이 대신 말해 준 셈”

이에 대해 미디어워치 측은 관련 보도에서 “서울구치소 측에서는 노약자나 환자가 아니고, 단지 ‘현저히 도주의 우려가 낮다’는 이유로 수갑(차용)을 면제시켜 준 대상을 김경수 경남지사 이외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조현오 전 경찰청장 등을 들었다. 모두 이른바 서울구치소 기준으로 거물급 인사”라며 “재판장 손승우 판사는 ‘김경수, 양승태 같은 사람들이 아닌, 일반인들 중에, 수갑 차용을 면제해 준 사례가 있냐’고 되묻기도 했다. 서울구치소 측에서는 ‘없다’고 답변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동(同) 매체는 “누가 봐도 김경수 경남지사와 같은 문재인 정권 실세, 대법원장, 경찰청장과 같이 법무부 행정과 연관이 된 업계 거물들에게만 수갑 차용 면제라는 특혜를 준 것”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구치소 측에서는 현행 법률의 차별금지 조항 때문에 차마 ‘사회적 신분을 고려했다’는 말을 못 했던 것인데, 그것을 법원 판사가 대신 ‘사회적 신분에 따라 차별해도 된다’고 판결을 내려준 셈”이라고 평했다.

변 고문 측은 즉각 항고하고 김경수, 양승태 등을 증인으로 소환해 그들의 의견을 물을 계획이라고 한다.

박순종 기자 franci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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