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근 칼럼] ‘욕설 대 폭언’의 선거 구도가 각광받는 이유
[황근 칼럼] ‘욕설 대 폭언’의 선거 구도가 각광받는 이유
  • 황근 객원 칼럼리스트
    프로필사진

    황근 객원 칼럼리스트

    이메일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 최초승인 2021.10.07 11:00:20
  • 최종수정 2021.10.07 11:00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오른쪽)와 이재명 경기지사.(사진=연합뉴스, 편집=조주형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오른쪽)와 이재명 경기지사.(사진=연합뉴스, 편집=조주형 기자)

본격적인 대선 정국에 들어서면서 언론이나 인터넷에 많이 회자되었던 용어들을 생각해보자. 쥴리, 욕설, 배신자, 고발 사주, 개발사기, 조국수홍, 아수라, 부적 어찌 보면 선거와 전혀 무관해 보이는 것들이다. 특히 여·야 모두 당내 경선이 가열되면서 나오는 말들의 수위가 점점 격해지고 있다. 정책이나 이념이 아니라 상대 후보를 비방하는 네거티브 선거 캠페인을 넘어 막장 싸움판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동물국회라는 말처럼 한국 정치가 금수보다 못한 수준으로 추락한 지 꽤 오래되었다. 정치 선진국들에서 볼 수 있었던 위트 넘치는 설전은 커녕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완전히 내다버린 것 같다. 그냥 서로 귀태(鬼胎)라고 낙인찍고 무차별 공격하는 ‘만인 대 만인’의 투쟁상태가 되어 버렸다.

이런 분위기에서 승자와 패자가 공생하는 성숙한 정치문화가 끼어들 틈이 있을 수 없다. 승자는 국민들이 투표로 선·악을 결정해준 것이라 호도하면서 정의라는 이름으로 패자를 마구 억누를 것이다. 반면 패자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선거 결과를 부정하려 할 것이다. 패배를 인정하는 것은 곧 자신이 악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정치가 야만적인 권력쟁탈전으로 추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정치가 싸움판처럼 전락하고 있는 것이 우리뿐만 아니다. 작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보듯이 욕설과 비방이 난무하고 선거불복과 폭력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또 강성 후보나 정당이 승리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비추어도 한국의 정치 수준은 이보다 훨씬 낮아 보인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유독 욕설과 비방이 더 많이 난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권력을 쟁취하는 것 자체가 목적인 패권정치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국민들을 보호하고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통치 권력을 수임받은 것이라는 대의민주주의 이념은 자신들의 패권을 포장하는 수사일 뿐이다.

'친형 강제입원' 등 3가지 혐의에 대해 기소의견으로 송치된 이재명 경기지사가 검찰 출석을 하루 앞둔 23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시 경기도북부청사에서 열린 경기북부 발전 상생협력 협약식에서 박수치고 있다. 2018.11.23(사진=연합뉴스)
'친형 강제입원' 등 3가지 혐의에 대해 기소의견으로 송치된 이재명 경기지사가 검찰 출석을 하루 앞둔 23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시 경기도북부청사에서 열린 경기북부 발전 상생협력 협약식에서 박수치고 있다. 2018.11.23(사진=연합뉴스)

그러니 정치적 패권만 차지할 수 있다면 비방이든 욕설이든 거짓이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천박한 인식이 정치권에 만연될 수밖에 없다. 또 정권만 장악하면 모든 거짓과 불법이 정당화되는 것도 패권정치를 부추기는 또 다른 이유다.

둘째, 정치적 패권을 쟁취하기 위해 이합집산이 난무하는 ‘패거리 정치’ 또한 문제다. 공동의 이념이나 목표와 무관하게 오직 정권을 쟁취하기 위해 모인 집단은 정치를 ‘아군과 적군’이라는 이분법 구조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인식구조에서 경쟁 집단 즉, 적군은 무조건 사악한 집단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사악한 집단이나 구성원들을 나쁘다고 욕하는 것은 절대 잘못된 일이 아니고 심지어 정의로운 것이라고 착각한다. 도리어 상대 집단이나 구성원을 심하게 욕하고 비방하는 것을 ‘사이다 발언’이라면서 더 큰 환영을 받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그런 방식으로 당원들의 지지를 받거나 받으려고 애쓰는 정치인이나 후보자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같은 저질 한국 정치를 막장으로 몰아가는 결정적인 주체는 언론이다. 한 사회의 정치 수준과 미디어 수준은 서로 비례하는 샴쌍둥이 같은 존재다. 이미 한국의 패거리·패권정치를 고착시키는데 언론이 큰 역할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바른 소리를 낸다는 ‘正論’이 아니라 정치적이라는 의미의 ‘政論’ 언론이 횡행했기 때문이다. 언론의 정치적 편파성이 항상 지적받고 있는 원인도 여기에 있다.

여기에 정제되지 않은 인터넷 언론들이 창궐하면서 공정성·객관성 같은 보도원칙들마저 거의 붕괴되어버렸다. 이제 인터넷 매체들은 물론이고 기성 언론들까지 지지하는 정파나 후보를 노골적으로 찬양하고 반대하는 후보를 무차별 공격하는 비방성 기사들이 난무하고 있다. 또 그래야 매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언론사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완전히 상반된 여론조사 결과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 정말 우연일까? 또 노골적인 정권호위방송이나 편파적인 시사프로그램들을 다른 언론들이 강하게 비판하지 못하는 이유는 남 욕할 입장이 아니라서 그런 것은 아닐까?

윤석열·홍준표 국민의힘 예비후보.(PG).2021.09.25(사진=연합뉴스)
윤석열·홍준표 국민의힘 예비후보.(PG).2021.09.25(사진=연합뉴스)

솔직히 주목을 끌 수 있는 자극적 보도를 갈망하는 매체들 입장에서 ‘쥴리’ ‘OOO아’ ‘돼지발정제’ 같은 욕설과 폭언은 이른바 돈 되는 좋은 소재임에 틀림없다. 믿을 수 없는 허망한 정책이나 공약보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흥미를 자극할 수 있는 네거티브 선거캠페인은 언론사 입장에서 도리어 더 고마운 일일 수 있다.

어쩌면 많은 매체들이 최종 대진표가 ‘욕설 대 폭언’ 구도가 되기를 앙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질 네거티브 공방전은 목마른 상업주의 매체들을 통해 확산되고, 이는 또다시 정치권의 네거티브 공방전을 가열시키는 이른바 ‘네거티브 나선’ 구조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욕설 대 폭언’ 대결구도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 될 수 있다.

흔히 정치를 자해산업이라고 한다. 네거티브 선거캠페인은 정치에 대한 불신감을 조성해 정치 무관심과 냉소주의를 유발하고, 결국 정치 참여의지를 약화시켜 정치 존재 의미 자체를 스스로 침식시킨다는 논리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에서 보면 저질 네거티브 공방전은 각 정파의 지지자들간 결속력을 강화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대다수 유권자들은 정치로부터 이탈하는 반면 광적인 지지자들의 참여를 부추겨 결국 그들이 정치권력을 장악하게 만든다. 거짓이 난무하는 대중선동이 지배하는 ‘우중정치’가 되는 것이다. 이는 팬텀으로 뭉친 컬트집단이 정치권력을 전유해 독재 또는 전체주의 사회를 탄생시키는 토양이 된다.

어쩌면 지금 한국 사회는 우려하는 것보다 훨씬 깊이 그 단계에 들어와 있는지도 모른다.

 

황근 객원 칼럼니스트(선문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