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에 덧씌워진 세가지 이미지와 진실
'전두환’에 덧씌워진 세가지 이미지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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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별세한 전두환 전 대통령처럼 미화(美化)와 왜곡이 교차한 정치인은 없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5공 신군부의 집권 계기가 된 12·12, 5·18로 인해 그에 대한 이미지는 대체로 단순 무식하고 저돌적인 독재자로 형성돼있다.

전두환 캐릭터1980년대 민주화운동 시기 대학가 등 민주화운동 진영의 반감과 김영삼 정부 이후 민주화시기에 만들어진 드라마 등 픽션에 의해 과장, 또는 왜곡된 점이 적지않다.

인간 전두환에 덧씌워진 세가지 이미지와 진실은 무엇일까?

 

머리가 나쁘다

1980년대 추반, 대학생들과 민주화 진영은 전 전대통령에게 머리숱이 없고, 세련되지 않고 촌스러운 이미지에 맞춰 돌대가리라는 별명을 만들었다. 부인 이순자씨에게 ‘xx이라는 별명을 붙인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그와 함께 한 사람들은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전두환 전 대통령은 기억력이 비상하고 직관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증언한다. 그는 영관장교 시절부터 수십명이 처음 만나서 한두시간 식사를 하고 헤어질 때면 참석자 거의 대부분의 이름과 얼굴을 외울 정도로 기억력이 비상했다고 한다.

이런 기억력은 나중에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 매년 신정때면 인사차 연희동을 찾아오는 기자들의 집주소와 전화번호, 부인 이름을 미리 외워두고 사모님 000여사는 안녕하시지요? 전화번호 000-000도 그대로 입니까라고 한치도 틀리지 않게 물어봐서 상대방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는 또 초급장교 시절 1년에 가까운 미국 특수전학교 연수를 통해 심리전을 공부한 까닭에 영어도 꽤 잘하는 편이어서 월남에서의 연대장 시절 동안 미군과 영어로의 의사소통에도 큰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고 김재익 경제수석의 회고에 따르면 전 전 대통령은 수치를 정확하게 제시하고 자신이 설명해준 실물경제의 흐름과 관련된 개념을 쉽게 정리해서 이해한 뒤 실제 정책 및 동향과 비교해서 되물어 당혹스러운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군인으로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는 늘 정치군인이라는 꼬리표가 따라 다니지만 1사단장 시절 그가 개발한 특화점(特火點) 전술은 매우 우수한 교리로 소개되기도 했다.

 

저돌적이고 과격한 강경파

이런 이미지는 197912·12사태 당시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을 기습적으로 전격 체포하고 1980년 신군부가 5·18에 공수부대를 투입, 강경 진압 한 것 때문에 형성된 측면이 크다.

당시 상황을 다룬 TV 드라마 등을 보면 하나같이 전두환 보안사령관 겸 합수본부장이 ‘12·12 거사를 결심하고, 당일 부대이동도 직접 지휘하는 등 전면에 나선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당시 합동수사본부에 파견된 서울지검 이건개 검사등은 정 총장에 대한 조사 및 처리가 불가피하다고 전두환 합수본부장에게 일찍부터 일관되게 요구하고 있었다. 막상 전두환 사령관 본인은 면전에서 이런 의견이 나오면 애써 무시하거나 말을 돌리는 등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10·26 한달 보름이 지나서야 뒤 정승화 총장 체포에 나선 것은 정 총장이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지방으로 좌천시키고 김재규를 석방해 권력장악에 나설 것이라는 신군부 측의 뒤늦은 판단 때문이었다.

저돌적이고 강경하게 그려진 것과 달리 겁도 많은 편이었다고 한다. 월남전 당시 연대장으로 헬기를 타고 가던 중 베트콩의 총탄이 날아들자 함께 있던 장세동 소령의 손을 얼마나 세게 잡는지 부러지는 줄 알았다고 나중에 장씨가 회고한 적이 있다.

19876월항쟁 당시 4·13 호헌조치를 철회하고 직선제를 수용하라고 후계자 노태우를 설득한 것, 5공초 일부 강경파가 대학생 시위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학원안정법이라는 초강경 법안을 만들려고 하자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철회한 사실 또한 과격하고 강경일변도로 그려진 미지와는 차이가 있다.

군 장성 시절 전 전 대통령은 당시 그 시대 군대 문화와달리 달리 매우 사교적인 면모도 보였다 1사단장 및 보안사령관 시절 전임자 때는 관행이 없었던 부부동반 회식을 일상화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대통령 시절에도 그는 각료나 청와대 참모들이 자리에서 물러나면 늘 사모님께 드리라면서 별도의 선물을 주기도 했다고 한다.

 

축재꾼, 돈벌레

전두환 전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 중 기업들로부터 수천억원대의 비자금을 거둬 집권 여당 등에 뿌리며 통치자금으로 사용했다. 이로인한 추징금 중 1000억원에 가까운 돈은 납부하지 않은채 23일 별세했다.

김영삼 정부 때 이루어진 검찰의 12·12, 5·18 수사와 재판으로 그가 수천억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은 직후 차명계좌 등에 남아있어서 추징할 수 있었던 금액은 60%를 밑돌았다.

반면 노태우 전 대통령의 경우 수천억원대의 추징금 중 95%를 법원 선고직후 곧바로 회수할 수 있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조성한 수천억원의 비자금 대부분을 이미 사용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준 상태여서 찾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반면, 노태우 전 대통령은 거의 전액을 본인과 부인 김옥숙 여사 명의로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검찰 주변에서는 두 사람의 이런 스타일 차이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우 측근에게 큰 돈을 주거나 맡기는 반면, 노태우 전 대통령은 아무도 믿지 않고 본인이 움켜쥐는 스타일이었던 것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하나회 리더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기업인 등으로부터 수금을 많이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만든 돈 거의 대부분은 본인의 수중에 넣지않고 주변에 뿌린 것으로 유명하다.

예컨대, 그는 1사단장 시절 사단장 판공비로는 감당이 안될 정도로 많은 돈을 예하 부대나 참모들에 회식비 등으로 나눠주곤 했는데 이것이 하나회의 리더로서 입지를 굳히고 12·12 사태 당시 주요 부대를 장악하는데 큰 비결이 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여기저기 손을 벌려 돈을 잘 만드는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자신을 위한 축재꾼이라기 보다는 나눠주는 타입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야당 총재시절 정치자금과 관련해 나는 스쳐가는 정거장일 뿐이라고 말하곤 했는데 두 사람이 일맥상통하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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