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천정 부지로 치솟는 기름값을 잡기 위해 23일(현지시간) 5000만 배럴 규모 '전략비축유(SPR)' 방출 방침을 발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유가 상승의 원인이 ‘산유국과 석유 관련 업체에 있다’고 질책하면서 한국 등 동맹과 협력해 전략 비축유 방출로 유가 하락을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의 적극적인 의지에도 불구하고 이날 국제유가는 상승해, 향후 유가 향방에 대한 어두운 전망이 예고되는 상황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등이 미국 등의 증산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고유가로 인해 생필품 가격이 폭등하는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다. ‘오일 인플레이션’의 전조라는 우려도 나온다.

1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의 한 주유소 앞에 휘발유 종류별 가격이 적힌 간판이 세워져 있다. 이날 캘리포니아주의 무연 휘발유 평균 가격은 갤런(약 3.78ℓ)당 4.68달러로, 주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AFP/게티이미지=연합뉴스 자료사진. DB 및 재판매 금지]
1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의 한 주유소 앞에 휘발유 종류별 가격이 적힌 간판이 세워져 있다. 이날 캘리포니아주의 무연 휘발유 평균 가격은 갤런(약 3.78ℓ)당 4.68달러로, 주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AFP/게티이미지=연합뉴스 자료사진. DB 및 재판매 금지]

바이든, 시진핑에게 ‘비축유 방출’ 동참 요청...중국 언론, “물가 고공행진하면 바이든은 내년 중간선거 망할 것”

“추수감사절은 앞두고 칠면조 살 형편이 안된다”는 푸념이 미국 중산층 간에서 무성해지고 있다는 언론 보도도 적지 않다. 내년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 정권으로서는 악재를 만난 셈이다. 경제에 실패한 정권이 선거에 승리한 경우는 거의 없다는 점을 바이든 대통령이 모를 리 없다.

이런 상황에서 바이든이 중국에 대해서도 ‘공조 체제’를 요청한 것이 특히 눈길을 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 연설을 통해 중국의 동참도 언급했다. 그는 "중국 역시 더 할 수도 있다"라며 "이런 공동의 행동이 결과적으로 가격을 완화하도록 공급 부족에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6일 미중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에게 비축유 방출을 요청했다. 중국은 전 세계 원유 소비량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이 비축유 방출에 동참할 경우, 상징적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비축유 방출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미 행정부의 이중적 태도를 비난하고 있다. 미국이 그동안 중국에 대해 정치경제적인 압박을 가해놓고서 자국의 필요성에 따라 국제적 공조를 중국측에 요청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중국 관매체인 환구시보는 “중국이 비축유를 방출하는 것은 ‘미국의 요구’가 아니라, 중국 경제에 필요하기 때문”이라면서 “물가가 고공행진을 지속하면 바이든 행정부는 내년 중간선거에서 망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미국은 전략 비축유의 8% 방출 방침...한국, 일본 등도 동참 예정

전략비축유는 산유국 테러, 재난, 경제 봉쇄 사태에 대비해서 보관해두는, 평균 석 달치 사용분의 석유를 뜻한다. 미국은 1985년 이후 지금까지 허리케인 같은 재난으로 인한 일시적인 석유 수급 불균형, 유가 안정, 재정적자 축소, 시험 판매 등을 이유로 모두 20여 차례 전략비축유를 방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 행정부는 총 전략 비축유 가운데 8% 수준인 석유 5000만 배럴을 시장에 내놓겠다고 밝혔다. 3200만배럴에 대해서는 시중에 풀었다가 몇 달 뒤에 비축유로 회수하고, 나머지 1800만 배럴은 수 개월동안 직접 판매하는 형태로 공급부족 문제를 풀어갈 계획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 규모인 6억450만배럴의 전략 비축유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몇 주에 걸쳐 준비된 이번 계획은 미국 가계와 사업장별로 부담이었던 연료 가격을 낮추려는 목적에서 시행된다. 코로나19 팬데믹 과정에서 국제유가의 가파른 상승은 인플레이션을 촉발하며 경제 회복을 지연시키는 핵심 원인으로 지목된 데 따른 조치이다.

미국은 그동안 동맹국들에게 공동으로 비축유를 풀자고 제안해서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냈다. 한국을 비롯해 일본·인도·영국 등 주요 석유 소비국들도 비축유를 시중에 풀어 공급을 늘리는 형태로 국제 유가와 물가 안정에 동참한다.

한국 산업통상자원부는 미국에서 제안한 비축유 공동 방출에 동참하기로 결정하고 구체적인 방출 물량과 시기를 협의할 방침이다. 산업부는 과거 2011년 리비아 사태 당시 국제에너지기구(IEA) 공조 사례와 유사한 수준의 물량이 방출할 것으로 관측된다. 당시 정부는 비축유의 약 4%인 346만7000배럴을 방출했다. 일본 정부는 우선 수 일분의 비축유를 방출하고 이후 추가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고, 인도 석유·천연가스부는 "비축유 500만배럴을 방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가와의 전면전 나선 바이든, 석유 공급업체의 ‘폭리’ 비판

바이든 대통령은 유가와의 전면전에 나선 상태이다. 그는 백악관 연설에서 “미국인들이 높은 기름값에 직면한 이유의 큰 부분은 산유국들과 대기업들이 가격 하락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최근 유가가 약 10% 하락했음에도 주유소 휘발유 가격이 별다른 변동이 없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러면서 "주유소 휘발유 가격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휘발유 공급업체들이 유가 하락분을 독차지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전략비축유 방출’과 관련, 중국에 ‘공조 체제’를 요청했다. [사진=연합뉴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전략비축유 방출’과 관련, 중국에 ‘공조 체제’를 요청했다. [사진=연합뉴스]

최근 미국 주유소에서는 1갤런(약 3.78ℓ)당 휘발유 가격이 올해 들어 1달러 이상 올라 평균 3.4달러를 기록했다. 최근 지방선거에서 기름값에 대한 유권자 불만을 확인한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비축유 방출을 주장하자, 바이든 행정부는 ‘비축유 방출’이라는 특단의 조치에 이르게 됐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유가 하락 유도 의지에도 불구하고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1.75달러(2.3%) 오른 배럴당 78.50달러에 마감됐다. 유가 하락을 원치 않는 OPEC+는 비축유 방출에 나선 미국에 맞설 것으로 전망되면서다.

OPEC+의 증산 거부로 글로벌 인플레이션 우려 커져

OPEC과 러시아 등 비(非)OPEC 주요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 플러스'(OPEC+)는 지난 5일 회의에서 매달 하루 40만 배럴씩 증산하기로 한 계획을 다음 달에도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이들은 세계 최대 석유 소비국들의 수 백만 배럴씩 비축유 공동 방출에 대해 현재 시장 상황에서 정당화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석유 수출국들은 기존 석유 증산 계획을 조율하기 위해 다음달 2일에 만날 예정으로 알려진다.

OPEC 로고. [사진=연합뉴스]
OPEC 로고. [사진=연합뉴스]

월스트리트저널은 비축유 방출로 유가가 하락하더라도 세계 경제가 회복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내년에도 수요가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단기적인 효과에 그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에너지 석유 시장 조사 책임자는 "비축유 방출 효과는 상당한 시간차를 두고 발생할 것이고 아예 없을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OPEC+가 원유 증산에 나서지 않는 한 석유 공급 부족을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다는 의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역시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당장 유가가 낮아질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하루아침에 고유가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할 것이며 주유소 기름값이 하락하는 것을 보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해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이려는 정책과 달리 원유 증산 노력에 나선 것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서도 그는 "장기적으로 석유에 대한 의존도를 줄일 것이지만 ,지금은 석유 가격을 낮추기 위해 해야 할 일을 하겠다"라는 의지를 드러냈다.

글로벌 경제 침체 원치 않는 중국도 불가피하게 비축유 방출 동참

이처럼 바이든 대통령이 유가에 예민한 이유는 미국 경제에서 유가가 차지하는 의미가 특별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휘발유 가격은 단순히 여러 상품 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미국의 경기를 부양시키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미국에서는 휘발유 가격이 올라가면, 다른 생필품 소비가 줄어든다. 기름을 덜 넣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등의 선택을 하지 않는다. 그만큼 미국인들의 생활과 휘발유 가격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반대로 휘발유 가격이 내리면, 다른 상품의 소비가 늘어난다. 따라서 미국의 휘발유 가격이 계속 상승하면 미국 경기는 내리막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이는 전 세계 인플레이션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주유하는 여성. [AFP/게티이미지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주유하는 여성. [AFP/게티이미지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현재 갤런당 3.4달러에 달하는 휘발유 가격이 4달러를 넘지 않도록 안정시키겠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의지는 결국 전 세계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의미한다. 바로 이 점에서 중국도 비축유 방출에 동참한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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