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때’도 ‘올 때’와 같은 길, 동일 루트로...동부전선 또 뚫렸다
안보 전문가들 “특수훈련으로 단련된 자 아니면 철책통과는 매우 제한적”
“침투와 복귀패턴을 볼 때, 북한의 2군단 직할 정찰대대 전투원일 가능성 농후”

강원도 최전방 22사단 GOP(일반전초) 철책(연합뉴스)
강원도 최전방 22사단 GOP(일반전초) 철책(연합뉴스)

지난 1일 동부전선 육군 22사단 최전방 철책을 뛰어넘어 월북한 탈북민 김모 씨의 정체에 대해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군은 “간첩은 아니다”라고 했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지난 2020년 귀순 당시와 최근의 월북 정황, 특히 높이 3m 가량의 철책을 자유자재로 뛰어넘었다는 사실 등에 비추어 특수훈련으로 단련된 ‘간첩’일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2022년 새해 첫날 강원도 고성 22사단의 GOP 철책을 뛰어넘어 육로를 통해 월북한 김 씨는 지난 2020년 11월 같은 곳을 통해 한국에 망명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3일 “민간인 통제선 일대의 CCTV를 확인해 인상착의를 식별한 끝에 2020년 11월 강원도 고성 지역으로 탈북 귀순한 인물과 동일인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1992년생으로 알려진 그는 2020년 10월 말 북한 사리원시에서 택시를 타고 북한 강원도 고성으로 이동했다. 이후 걸어서 비무장지대(DMZ) 인근까지 남하해 11월 3일 철책을 넘어 귀순했다. 합동 심문 과정과 탈북민 정착교육기관인 하나원을 거친 뒤 지난해 3월 서울 노원구에 집을 배정받고 청소 용역업체에서 일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탈북 후 불과 1년여 만에 북한으로 재입국한 동일인이 같은 지역의 ‘동일 루트’로 탈북·월북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김 씨는 지난 2020년 11월 초 귀순 당시 높이 3m 가량인 철책을 단숨에 뛰어넘은 것과 관련해 정보당국 조사에서 ‘기계체조’ 경력이 있다고 진술했다. 그는 체중 50kg에 신장인 작은 왜소한 체구여서 높이 3m 가량의 철책을 비교적 수월하게 넘을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GOP 철책을 넘자마자 귀순 의사를 표명하지 않고 숲속에 은거하다 약 14시간 만에 기동수색팀에 의해 발견됐고, 동부전선 일대가 험한 지형이라는 점 등에 근거해 당시에도 ‘간첩’이 아니냐는 의심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 군 당국은 철책에 설치된 광망의 주요 구성품 중 하나인 ‘상단 감지유발기’의 나사가 풀려있어 김 씨가 철책을 넘을 때 경보음이 울리지 않았다는 조사결과를 내놓았다.

이에 대해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북한에서 민간인의 출입통제가 심한 남북 군사분계선 지역에 접근해, 북측 철책을 넘어 지뢰밭인 비무장 지대를 통과해 한국측 철책을 넘어 귀순했다는 것이 가능한가”라며 “특수훈련으로 단련된 자가 아니면 철책통과는 매우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의 형법 제63조는 한국으로 탈북한 북한주민이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면 ‘조국반역죄’로 최고 사형이나 5년 이상의 교화형 등 극형에 처한다. 유 원장은 “중국으로 탈북 후 북한으로 재입북한 자들에 대해서는 대남심리전용으로 좀 관대한 처벌을 내리지만 한국에서 직접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으로 돌아가는 것은 처형을 감수해야 하는 모험”이라고 했다.

더욱이 북한정권은 약 2년 전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 바이러스의 유입을 막기 위해 국경지역에 특수부대를 보내고 무단 월경자에 대한 사살 명령까지 내렸다. 이 같은 상황에서 DMZ 군사분계선을 넘어간 신원미상인에 대해 북한군 3명이 경고 사격도 없이 그를 북쪽까지 안내해 데려간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로서 “북한식 표현대로 하자면 ‘삶은 소대가리가 웃을 일’”이라는 지적이다.

유 원장은 월북한 김씨에 대해 “DMZ 경계태세, 아군지역 정찰, 침투루트 개척, 드보크 매설 등 (간첩으로서) 단기목적 수행 후 장기매복하다 북한과 교신 후 복귀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침투와 복귀패턴을 볼 때, 대남공작 전문부서인 정찰총국이나 문화교류국이 아닌, 북한의 2군단 직할 정찰대대 전투원일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국정원 제1차장을 맡았던 염돈재 전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도 탈북민 김모 씨가 유사시에 대비해 휴전선 일대의 경계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내려온 ‘간첩’일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염 전 차장은 지난 1967년 12월경에 발생한 이른바 ‘똘마니 간첩단’ 사건을 언급했다. 당시 국정원은 이들 간첩단을 심문했으나 남한의 주민등록증 수집 외 특별한 남파 임무를 밝혀내지 못했다. 그러나 불과 약 한 달 뒤인 1968년 1월 21일 북한 정찰국 소속 124군부대 무장 게릴라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하기 위해 서울에 침투한 김신조 사건이 발생했다. 훗날 국정원 조사에 의해 밝혀진 바로는 ‘똘마니 간첩단’은 자신의 정확한 임무가 무엇인지 모른 채 남파된, 남한의 경계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꼭두각시’였다. 염 전 차장은 “문재인 정권 들어 남북군사분계선 내 철책과 해안선 철책, 경비초소가 많이 제거된 상황에서 김씨의 탈북 및 월북 사건은 남한의 경계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작업일 수 있다”며 “북한군은 남한에 대한 기습공격을 오늘 내일 언제든지 추진할 수 있도록 상시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고 했다. 문재인 정권은 지난 2018년 9월 남북정상회담에서 ‘9.19남북 군사합의’를 체결하면서 남과 북이 일체의 군사적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했다. 이후 군은 비무장지대(DMZ) 내 GP 10곳을 폭파하고, 김포 한강 철책과 동해 해안 철책을 대규모로 철거했다.

사진은 지난 2019년 4월 27일 고성통일전망타워 인근에서 바라본 보존GP와 금강산. [연합뉴스 자료사진]
사진은 지난 2019년 4월 27일 고성통일전망타워 인근에서 바라본 보존GP와 금강산.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편 전문가들은 군이 김 씨에 대해 ‘간첩은 아니’라며 서둘러 대공혐의점을 부인한 것에 대해 군의 경계 실패 등 잘못을 감추기 위한 면피용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지난 3일 김 씨의 월북에 대해 “관련 기관에서 세부적으로 확인하고 있다”면서도 “확인한 바로는 (간첩활동 주장 등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안다”고 했다. 그러나 김 씨가 지난달 30일부터 연락이 두절됐고, 거주지에서 벗어나 강원도 고성까지 이동했음에도 경찰은 이를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김 씨는 탈북 전 신변보호 담당관에게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을 여행하는 방법을 문의했다. 그를 담당했던 노원경찰서는 지난해 6월 두 차례 김 씨에게서 월북 징후가 보인다고 서울경찰청과 경찰청에 보고했지만 상부에서 근거 부족으로 보강을 지시했다고 한다. 그는 하나원에서 김정은 생일(1월 8일) 남한언론이 김정은을 비판하는 보도를 보면서 “원수님 생일에 원수님을 욕하는 소리를 들으니 기분 나쁘다”며 화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와 함께 하나원에서 지낸 탈북민 A씨는 조선일보에 “김 씨가 북한에서 복싱을 하다가 머리를 크게 다쳤다는 얘기도 동기들에게 종종 했다”며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고 의도적으로 정신상태가 온전치 않은 척한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또한 그는 하나원 졸업 이후 동기들은 물론 탈북민 단체와 접촉하지 않았으며 남북하나재단이나 하나센터 등 탈북민 취업과 정착을 돕는 기관도 찾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일부 전문가들은 “제대로 조사도 하지 않고 김 씨의 월북에 대해 서둘러 ‘대동혐의점이 없다’고 결론은 내린 군의 주장은 김 씨의 최초 귀순 시 귀순동기를 제대로 밝혀내지 못한 합동조사의 문제점과 경찰의 신변보호 소홀, 월북 과정에서 드러난 군의 경계 실패 등에 대한 비난을 피하기 위한 변명으로 보인다”며 “아마도 더 큰 이유는 북한 김정은의 심기를 거스리지 않기 위한 것일 것”이라고 했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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