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근 칼럼] 이재명의 반(反)시장적 거짓 경제가면을 벗긴다
[조동근 칼럼] 이재명의 반(反)시장적 거짓 경제가면을 벗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제대통령' 자처하는 李, 공공배달앱 등 지역화폐와 세금 보조 통한 불공정경쟁 납득 어려워
심판이 선수가 되면 '사회주의로 가는 길'...국가권력으로 발생하는 신용이익을 사회적으로 나눠야 한다니
'기본주택', '국가주도 투자' 등 반(反)시장적 사고를 ‘실용적 시장주의자’로 교묘하게 위장
조동근 객원칼럼니스트

O 이재명 후보의 ‘경제대통령’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이하 이재명)가 부쩍 자신을 ‘경제대통령’으로 부각시키려한다. 자신의 해박한 경제지식과 경기도지사의 실무경험 그리고 ‘합리적 시장주의’ 가치관으로 대한민국을 경제 강국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과거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경제대통령’을 얘기한 적이 있다. ‘기업 CEO’ 출신이었기에 먹혔던 것이다.

이재명은 전혀 결이 다르다. 그는 대장동 프로젝트를 단군 이래 ‘개발이익의 최대 공공환수 모범사례’로 자화자찬했다. 하지만 대장동개발 사업은 민·관 공동개발이라는 외피(外皮)를 입고 ‘관의 토지 수용권과 인·허가권을 이용해 개발이익의 대부분을 작위적으로 민간에 몰아준’ 스캔들이다.

그의 ‘경제대통령’론은 생뚱맞다. 빌 클린턴(Clinton)의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Stupid. It’s economy)’라는 절묘한 구호와도 결이 다르다. 아버지 부시(Busch)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을 수행하면서 무리한 전비 지출로 경제에 주름살이 깊어지자 클린턴은 유권자의 시선을 경제 이슈로 끌고 왔지만 경제대통령을 자임하지 않았다. ‘경제대통령’이라면 1932년 암울한 대공황 시기의 루즈벨트(Roosevelt) 대통령을 떠올 릴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경제대통령의 ‘경’자도 꺼내지 않았다. 대신 그는 “우리가 두려워야 할 가장 큰 두려움은 두려움 그 자체”라는 명언으로 미국 국민들에게 용기를 주었고 대공황을 극복했다.

경제대통령이 의미를 갖는다면, 외교대통령, 안보대통령, 문화대통령 구호도 나옴직하다. 대통령은 어느 한 분야로 특화되는 지위가 아니다. 더욱이 문재인 정부의 가장 두드러진 실정(失政)이 경제부문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그의 ‘대통령론’은 상투적이고 저급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그는 스스로를 ‘실용주의자, 합리적 시장주의자’로 자임하지만 실제로는 아래와 같은 이유로 대단히 반(反)시장적이다.

O 지난해 12월7일 서울대 강연회에서 ‘경제는 과학이 아닌 정치’라고 발언

그는 ‘경제는 과학 같지만 실은 정치’라고 했다. 그 근거로서 ‘반박불가’의 절대적 진리가 아니기‘에 차라리 정치에 가깝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교언(巧言)이다. 경제학의 연역적 귀결은 ‘명제’가 아니라 기각될 수 있는 ‘가설(假說)’(hypothesis)로 제시된다. ‘반증 가능성’(反證可能性, Falsifiability)’을 배제하지 않기 때문에 즉 ‘절대 진리’를 고집하지 않기 때문에 ‘과학’인 것이다. 반증가능하기에 과학이고 그렇기에 정치일 수 없다.

‘경제는 정치다’를 받아들이면 ‘다수의 지지로 선출된 권력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다수결(majority)은 의사결정의 수단일 뿐이다. 그 자체가 선과 악, 당(當)과 부당(不當)을 가르는 절대적 ‘판별기준’일 수 없다. 히틀러의 나치는 민주주의 다수결이 만들어낸 ‘정치괴물’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선출된 권력’이라는 오만에 빠진 나머지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 정치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무지와 오만’의 잘못된 만남이다.

O 이해불가의 이재명의 의식 세계

작년 12월 하순 이재명은 증권방송 ‘3프로 TV’에 출연한다. 증권 전문가(프로)가 묻고 후보가 답하는 형식이다. 이재명 지지자들은 ‘3프로 TV 출연’이 민주당과 이재명을 동시에 구했다고 감격해 했다. 윤석열 후보에 여론조사에서 뒤지던 이재명이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지지율 역전을 가져왔다고 해서 ‘3프로 TV’에서 이재명이 무슨 말을 했나를 면밀히 모니터링 했다. 너무나 현란한 인터뷰였지만, 논리의 일관성과 정합성 면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의 의식세계에 동의하기 어려웠다.

증권방송이기에 그는 ‘자본시장 할인(discount)을 막기 위해서라도 금감원 감독인력을 크게 늘려야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돌연 사회 초년병 시절 ‘작전주 무용담’을 꺼낸다. 자신은 주가폭락 전에 빠져나와 돈을 벌었고 고의가 아니라 무죄라고 한다. 그러면 작전 세력에 휘말려 큰 손실을 입은 사람은 무엇인가? 나만 아니면 되는 갓? 작전주을 유체이탈식 화법으로 ‘타자화’ 하는 그를 보고 모골이 송연했다. 죄의식은 없어 보인다.

그는 조카 살인사건의 변호를 맡았던 사실을 고백한 적이 있다. 변호가 문제될 리는 없다. 하지만 그는 ‘살인을 데이트 폭력의 중대범죄’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조카를 심신미약으로 변론했다. 살인과 폭력은 층위가 다른 문제이다. 그의 인성과 도덕성을 여과 없이 드러낸 것이다.

그의 ‘자기과시’는 병적이다. 굳이 드러내지 말아야 할 것도 자랑을 한다. 그는 경기도를 불러들여 ‘공공배달앱’을 개발해 크게 성공했다고 과시했다. 땅 집고 헤엄치는 성공할 수밖에 없는 사업구조이다. 지역화폐로 결제하면 10% 선(先)할인하고 할인쿠폰도 제공한다. 세금으로 보조하는 불공정게임을 한 것이다. 자자체(심판)가 선수(player)가 되면 그게 ‘사회주의로 가는 길’이다. 민간과 공공 영역 간에 경계 관념이 없다고 밖에 볼 수 없다.

O 이재명의 현란한 경제 교언 10가지

이재명이 ‘3프로 TV’에서 행한 경제 교언을 10개로 정리한다. 그는 “1) 정치와 경제는 불가분의 관계이므로 정치가 자원을 배분한다”는 것이다. 이는 금선(禁線)을 넘은 것이다. 정치의 본령은 ‘갈등조정’이다. 쉽게 말하면 ’싸움을 말리는 게’ 정치이다. 경제의 본령은 ’희소한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다. 정치와 경제를 구분 안하기 때문에 포퓰리즘과 정치만능주의에 빠진 것이다. 시장경제는 정치와 경제 간에 ’방화벽‘을 쌓고 있다. 법치가 방화벽이다. 그는 정치의 경제 영역으로의 월담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 그는 말로만 합리적 ’시장론자‘이다.

그는 “2) 국가권력으로 발생하는 신용이익을 사회적 약자에게 나눠줘야 한다”고 한다. 약자차주에게 低이자율로 빚을 주라는 주문이다. 그 논리가 맞다면 저소득층에게는 소주를 반값에 팔아야한다. 이자율은 모든 사람에게 공히 적용되는 가격인 것이다. 가격을 비틀면 시장은 붕괴된다.

그는 신용이익의 원천이 국가권력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베네주엘라도 주권국가인데 왜 ‘신용이익을 나누지 못하는 가? 이재명은 ’화폐와 신용‘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권력은 ‘신용이 제도화 되도록 돕는 강제력으로 ‘촉매’에 지나지 않는다. 금융의 본질은 대차(貸借)이고 그 기저에 신뢰가 존재한다. 빌린 돈을 갚아야 다음 사람이 또 빌릴 수 있는 것이다. 국가권력이 신용의 원천은 아니다. 그리고 신용은 국민주권과도 무관하다.

그는 시도 때도 없이 아무런 감정이입 없이 ‘50만원도 못 빌리는 사회적 약자’를 조연으로 출연시킨다. 제도권에서 차용을 못해 사채시장으로 가게 되고 순식간에 신용불량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본금융’을 국가가 책임져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상황설정 능력과 지력은 거기서 거기다.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나기에 누구도 ‘사회적 약자’로 태어나지 않는다. 사회초년생이 사회적 약자인 것이다. 그렇다면 기성세대는 사회초년생이 최소한의 ‘종자돈(seed money)’을 마련하고 신용을 관리해 사회적 약자의 딱지를 빨리 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족보에도 없는 기본금융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재산형성의 유인을 제공해고 신용관리 중요성을 일깨우는 금융교육을 시행해야 한다. ‘탈무드’식으로 표현하면 청년에게 ‘국가에의 의존을 타성화 시키는’ 물고기(기본금융)를 줄 것이 아니라 ‘물고기 잡는’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

그는 “3) 혁신의 결과물은 존중하지만 독점의 횡포를 용납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혁신의 결과는 독점이 아닌 ‘초과이윤’이다. 그에게 혁신자의 이익은 과장되어 있다. 스티브 잡스는 스마트폰(아이폰)을 처음 만들었지만 독점하지는 못했다. 삼성전자는 후발주자로 참여해 이만큼 왔다. 혁신의 유인을 없애면 혁신의 싹은 고사한다. 우리나라는 중국 이상으로 빅테크 와 플랫폼 기업을 압박한다. 그러면서 무슨 혁신의 결과물을 존중한다는 것인가?

그는 “4) 산업전환과 혁신을 위해서는 국가주도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지금이 개발년대 인가? 2022년 예산안(604.4조원)에서 ‘보건·복지·고용’이 216.7조원으로 1/3을 넘는다. 국가(정부)는 투자여력이 없다. 그리고 혁신능력은 민간이 공공부문을 크게 앞선다. 공공부문에 경쟁이 없기 때문이다. 혁신 능력이 떨어지는 공무원 집단에게 혁신을 리드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는 “5) 증세는 조세저항을 부르므로 자폭행위이다. 미래의 자산을 현재로 앞당겨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 고통스럽게 세금 걷지 말고 편하게 빚을 내라는 것이다. 이게 포퓰리즘이다. 이재명은 “IMF, 국가부채비율 85% 적정으로 권고, 다른 나라는 120%인데 뭘 그러냐?"고 힐난한다. 우선 IMF는 ‘적정부채비율을 권고’하는 기관이 아니다. 그리고 ”85%는 국제결제은행(BIS이 국가부채비율이 85%를 넘으면 위험하다”며 상방 임계치로 경고한 것이다. 이재명이 헛짚은 것이다.

그는 “6) 타인의 주거를 제한하면서 돈을 버는 다주택자에 대해 중과해야 한다”고 했다. 공공재가 아닌 한 ‘소비의 경합성’은 당연하다. 다주택자를 악으로 간주해 없애면 전·월세는 누가 공급하나? 국가가 공급하는 공공 임대주택에서 살라는 것인 가? 공공임대주택은 ‘선택지 중의 하나’여야 한다.

그는 “7) 정부의 가계지원이 부족해 가계부채가 쌓인 것이다”라고 했다. 정부가 빚을 충분히 내지 않아 가계의 빚이 늘었다는 것이다. 국가 빚이 개인 빚을 줄여주지는 않는다. 가계부채가 쌓인 것은 ‘부동산 정책 실패’에 기인한 것이다. 생활비가 모자라 몇 억대의 빚을 지지는 않는다. 부동산 불로소득이 주택가격 상승에 기인하는 것이라면, 부동산 정책에 실패한 정부가 불로소득을 제공한 범인이다.

그는 “8) ‘기본주택’은 국가가 토지를 소유하는 싱가폴식 주택정책을 참고한 것으로 한국에 적용가능하다”고 했다. 한국이 도시국가인가? ‘토지 국가소유, 건축물 민간소유’는 토지공개념을 넘는 사회주의 발상이다.

그는 “9) 종합주가지수 5000을 위해서라도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보유 비중을 늘려야 한다”고 했다. 위험한 발상이다. 국내주식이 아닌 해외주식 비중을 늘려야 한다. ‘연금사회주의’를 피가기 위해서라도 도리어 국내비중을 줄여야 한다. 2021년 5월 현재 한국 코스피 PER은 24.1배로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대표지수 기준 23개 선진국 평균인 30.4배 보다 낮다. PER이 낮기 때문에 ‘같은 수익을 내더라도 주가를 밀어 올리는 힘’이 약한 것이다. 국민연금이 국내주식 비중을 늘린다고 주식시장의 할인이 해소되지 않는다.

그는 “10)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와 ‘억강부약(抑强扶弱)’은 서로 일맥상통한다”고 했다. 깊은 이해 없이 좋아 보이니까 갖다 붙인 것이다. 공리주의는 누구도 ‘1/n 이상의 비중’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逆평등주의’가 전제된 것이다. ‘扶弱’은 사회복지 차원에서 맞지만 抑强은 반시장적 자승자박이다.

이재명의 경제관은 ‘자학적’이다. 공정은 실종되고 약육강식이 횡행하고 ‘억강부약’의 공동체 의식은 실종됐다는 것이다. 기업 간 불공정거래, 약탈적 하도급 거래는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팔을 비틀지 않는 한, 일방이 손해를 보고 타방이 지속적으로 이익을 보는 불공정 거래는 존속될 수 없다. 지금은 손해를 보더라도 길게 보면 거래를 지속하는 것이 이익이 되기 때문에 거래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제 3자가 개입하는 것은 위험하다. ‘을(乙)’을 착취하는 것을 구제하려면 ‘을’이 선택할 수 있는 또 다른 갑(甲)이 시장에 진출 할 수 있도록 진입장벽을 낮춰주는 것이 실효적이다.

O 에필로그: 화려한 언변 속의 빈시장적 공허감

이재명의 “3프로 경제 TV” 인터뷰는 일종의 롤러코스터였다. 현기증을 진정하고 그의 발언을 곱씹어 보면 조명 꺼진 막 내린 무대 같다. 순발력은 뛰어 나지만 ’지력과 겸손 그리고 사려 깊음‘은 크게 부족하다. 대통령직은 순발력으로 수행하는 자리가 아니다. 그는 내재적 반(反)시장적 사고를 ‘실용적 시장주의자’로 교묘하게 위장하고 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