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DPR 면제 대상' 한국 제외 충격에 대러시아 제재 조치 발표한 韓 정부
일본, 대러시아 제재 따른 경제 타격에도 미국과의 동아시아 안보협력에 더 비중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FDPR 면제 대상 논의 위해 미국 방문

문재인 대통령

러시아에 대한 독자 제재는 없다던 한국 정부가 뒤늦게 제재에 참여했다.

최근 미국이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 면제 대상에서 한국은 제외하고, 러시아에 대한 독자 제재에 나선 국가들만 포함시키는 등 한국이 국제 사회에서 배제된다는 기류가 흘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FDPR는 미국 밖에서 외국기업이 만든 제품이라도 미국이 통제 대상으로 정한 소프트웨어, 설계를 사용했을 경우 수출을 금지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지난달 24일 미국 정부가 발표한 7개 분야 대러시아 수출통제 조치에 포함됐다.

2일 정부가 발표한 제재 내용에 따르면 한국은 7개 주요 러시아 은행 및 자회사와의 금융거래를 중지하고 러시아 국고채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며, 전 세계 금융기관이 결제 주문을 주고받는 전산망인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배제를 이행하기로 했다.

나아가 전략물자에 대한 수출을 차단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전략물자가 러시아로 수출되는 경우, 전략물자관리원을 통해 불승인하는 방식으로 심사 제도를 까다롭게 운용해 실질적인 수출 차단 효과를 내겠다는 것이다. 또 미국이 FDPR을 적용하기로 한 비전략물자 수출을 통제하는 방안도 강구 중이다.

이같은 조치는 최근 미국이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과 영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일본 등 32개국을 FDPR 적용 예외 대상으로 발표한 가운데 발표됐다.

EU와 영국, 일본, 호주 등은 앞서 미국의 대러 제재에 준하는 독자 조처를 시행했으며, 중립국인 스위스와 스웨덴 등까지 적극적으로 제재에 동참했다.

특히 주요 7개국 G7 정상들은 지난달 28일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조율하기 위해 대서양 연안 국가 간 태스크포스를 곧 가동한다는 내용의 공동 성명을 발표하는 등 협력국들이 발빠르게 대응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러나 한국은 그동안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을 고려해 최소한의 움직임만을 보여왔다. 일각에선 한국 정부의 제재 의지가 상대적으로 약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자 부랴부랴 뒤늦게 동참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앞서 외교부는 지난달 24일 '대러 독자 제재도 포함해 검토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일부 국가의 경우에는 독자적인 것을 하고 있는데 저희가 그런 것을 고려하고 있지는 않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일부 국가의 독자적인 제재'라고 칭한 내용은 국제 사회에서 러시아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제재를 제외한 개별 국가의 조치들을 뜻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앞서 EU와 일본 등이 미국과 함께 제재에 나선 것도 독자적인 제재에 포함된다.

특히 한국과 같은 동아시아 국가인 일본은 일찍부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시 유럽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LNG를 유럽에 빌려주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히는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선 바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일본은 러시아와 남쿠릴 4개 섬 반환 협상을 진행 중이며, 천연가스 수입의 10%를 러시아에서 들여오는 등 전방위적인 타격 우려에도 강경 대응에 나섰다. 일본 금융기관의 러시아 채권은 1조엔(약 10조 원) 규모로 금융 제재에 따른 여파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지난 23일 러시아에 대한 1차 제재 조치를 발표, 채권 발행 및 유통 금지 등을 단행하겠다고 밝혔다.

나아가 지난 25일엔 미국 등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춰 러시아에 대해 개인·단체 비자 발급을 중단하고 금융기관 자산을 동결하는 한편 반도체 등 수출 규제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이에 대해 "미국과 협의했다"며 "특히 주요 7개국(G7)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인식 아래 긴밀히 조율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8일 서한을 통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대응에서 기시다 총리의 리더십에 특히 감사한다"며 "일본의 강력한 대응은 러시아의 불합리하고 부당한 공격에 대해 국제사회가 연대해 맞서는 메시지가 됐다"고 화답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중국 견제 협의체인 '쿼드'(Quad·미국·일본·호주·인도) 정상회의를 위해 5월 중 일본을 방문할 계획이다.

이같은 일본 정부의 판단에 대해 현지 언론은 경제에 앞서 미국과의 동아시아 안보협력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위기의 도미노를 막기 위해선 침략국 러시아에 주요국이 최대한 경제적, 정치적 고통을 줘야 한다"며 "미온적으로 대응하면 아시아·중동에서도 군사력에 기대는 나라들이 나올 것"이라고 논평했다.

아사히신문은 "힘에 의한 위협에 중국이 동조한다면 국제질서는 붕괴될 수 있다"며 러시아의 침공 사태가 동아시아 안보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했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한편 한국 정부는 뒤늦게 FDPR 면제 대상에 한국을 포함시키기 위한 노력에 나선 상황이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날 미국의 대(對)러시아 수출통제 조치인 FDPR 면제 대상에 한국을 포함하기 위한 합의를 최대한 빨리 끌어내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멕시코와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재개 논의 등을 위해 멕시코를 찾은 여 본부장은 멕시코 일정을 예정보다 단축한 채 2일 미국으로 떠나 3일과 4일 미 상무부와 미 무역대표부(USTR) 고위급을 만날 예정이다.

홍준표 기자 junpyo@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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