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후 칼럼] 차이코프스키와 우크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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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2.06.21 08:20:12
  • 최종수정 2022.06.22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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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사태는 전쟁, 이념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할 문화 예술까지 말살하는 야만으로 치닫고 있다.
박상후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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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면서 그들만의 ‘역사 바로 세우기’를 하고 있다. 러시아와의 역사·문화적 관계를 단절한다면서 러시아와 관련된 모든 흔적을 지우려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문화말살의 반달리즘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국제적으로는 ‘캔슬컬처’(Cancle Culture)로도 확산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문화와 역사를 공유하는 뗄레야 뗄수 없는 관계인데 러시아 흔적 지우기로 스스로의 뿌리도 말살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정권은 위대한 음악가 차이코프스키, 대문호 톨스토이마저 캔슬(cancle·취소)하려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따른 반발도 만만치 않다.

지난주 초 우크라이나의 표트르 차이콥스키 국립음악 아카데미(UNTAM)는 이번주 초 학교명에서 ‘차이콥스키’를 빼라는 키예프 당국의 요구를 거부했다. 러시아의 특수군사작전이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관련이 있는 것이라면 모두 지운다면서 도로명과 기관명을 바꾸는게 유행이다. 키예프 지하철애서 레흐 톨스토이 광장역을 우크라이나 시인 이름인 바실 스투스로 바꿨고 푸시킨 거리역을 러시아의 공격을 비난한 미국작가 스티븐 킹으로 바꾸라는 제안했다.

그러나 키예프에 있는 표트르 차이콥스키 국립음악 아카데미의 이사회측은 회의를 열고 이같은 러시아 흔적 지우기 행렬에 동참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 학교 이사회멤버로 유명한 우크라이나의 작곡가 유리 립친스키는 “정부와 군대는 전투를 하지만 문화계는 절대 그럴수 없다, 문화예술계는 스스로를 풍부하게 하기 위해 경쟁만 할 뿐”이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또 차이코프스키는 셰익스피어, 잔다르크, 크라이스트처럼 어느 특정 민족의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의 것”이라고 말했다. 립친스키는 또 차이코프스키는 그의 혈통을 굳이 따지자면 러시아인이 아니기 때문에 학교명에서 빼서는 안된다고 설명했다. 차이콥스키의 부친은 자포리즈쟈의 코자크족(族) 출신이고 그의 모친은 프랑스계(系)라고도 말했다. 참고로 차이코프스키는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어에서 모두 갈매기를 뜻하는 단어 ‘차이카’에서 유래됐다. 차이콥스키는 우크라이나를 놀랄 만큼 사랑했으며 작품일부는 우크라이나 포크뮤직에서 모티프를 가져왔다는게 립친스키의 설명이다.

실제로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2번 ‘말로로시야’(Малороссия, Little Russia)는 ‘소(小)러시아’를 뜻한다. ‘소러시아’는 바로 오늘날의 우크라이나다. 역사적으로 보면 우크라이나는 동(東)슬라브 문화의 중심으로 9세기 키예프 루시공국 형태로 존재했다가 13세기 몽골의 침공으로 사라졌다. 이후에는 폴란드 리투아니아 연합왕조, 러시아의 짜르제국에 의해 복속됐다가 러시아 혁명직후인 1917년 우크라이나인민공화국이란 이름으로 아주 잠깐동안 존재했다. 그러나 볼셰비키에 의해 강제로 소련에 편입됐고 결국 소련 해체 후인 1991년 오늘날의 우크라이나가 독립했다.

온전하게 우크라이나란 이름으로 국가를 유지해온 역사가 거의 없다. 우크라이나(Україна)라는 국명도 ‘지역’을 의미하는 ‘크라이’(краї)와 ‘주변부’를 뜻하는 접두사 ‘우’(У), 그리고 명사형 접미사 ‘나’(на)의 조합이다. 나라 이름이 변두리, 주변지역으로 러시아 주변부의 작은 러시아란 의미의 ‘말로로시야’(Малороссия)와 일맥상통한다.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으로도 유명한 차이코프스키는 러시아 제국의 일부였던 우크라이나 지역을 생전에 여러 차례 방문했고 그 역시 차이코프스키 뮤직 아카데미의 창립 멤버 가운데 한명이다.

따라서 ‘표트르 차이콥스키 국립음악 아카데미’라는 교명에서 차이코프스키의 이름을 빼는 것은 상식적으로 무리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학교 이사진들은 만장일치로 교명을 유지하기로 결정하고 서한을 보내 젤렌스키에게 이 같은 취지를 전달했다. 차이코프스키는 러시아뿐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러시아 때리기에 따른 캔슬 컬쳐는 국제무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4월에는 제네바에 있는 국제 음악 콩쿠르 세계 연맹이 1958년부터 모스크바와 상트 뻬쩨르부르크에서 4년마다 열리는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를 축출했다.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를 규탄한다는 명분이었다. 또 3월에는 웨일스의 카디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차이콥스키를 프로그램에서 지워버렸다. 카디프 필하모닉은 3월18일 세인트 데이빗 홀에서 열린 컨서트에서 차이코프스키의 1812 서곡과 슬라브 행진곡, ‘소러시아’란 명칭의 교향곡 2번을 연주목록에서 삭제했다. 카디프 필하모닉의 책임자 마틴 메이는 차이코프스키의 1812 서곡이 나폴레옹의 침략에 맞서 싸운 러시아를 묘사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분쟁이 발발한 시점에서는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또 슬라브 행진곡도 군대와 연관이 있어 부적절하며 교향곡 2번도 우크라이나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대문호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도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금지됐다. 우크라이나 교육부는 전쟁과 평화가 러시아군을 미화하다는 이유로 더 이상 학교에서 가르칠 수 없다는 방침을 밝혔다. 안드리 비트렌코 교육담당 제1부총리는 국영 매체 우크라이나24(Ukraine 24)에 출연해 톨스토이를 포함한 러시아 문학작품들은 외국문학의 범주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폴레옹 침략시기의 러시아를 그린 전쟁과 평화를 읽는 것은 러시아의 선전에 말려드는 것이라는게 우크라이나 당국의 논리다.

지난달 초에는 러시아의 정상급 성악가로 국제무대에서 지명도가 높은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비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무대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오페라단측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터지고 국제적으로 러시아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자 그녀에게 입장표명을 압박했다. 이에 대해 안나 네트렙코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분별없는 침략전쟁을 멈추기를 바란다는 문구를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그러나 오페라단측은 그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는지 푸틴 대통령 개인을 지명해 비난하라고 압박했다. 영국매체 가디언에 따르면 오페라단측은 그녀에게 여러차례에 걸쳐 집요하게 푸틴을 비난하라고 강요했지만 네트렙코는 차마 그렇게는 하지 못하겠다며 거부했다. 결국 안나 네트렙코는 메트에서 200차례 가까이 공연을 해왔지만 무대에서 쫓겨났고 그녀의 빈자리는 우크라이나 소프라노로 채워졌다.

안나 네트렙코는 2008년 푸틴 대통령으로부터 러시아 국민예술가 훈장을 받았고 2014년에는 우크라이나 내전으로 파괴된 도네츠크 오페라 하우스 재건비용에 쓰라고 100만 루블을 쾌척하기도 했다.

서구에서는 이를 두고 돈바스 분리주의자편을 든다고 비판하기도 했지만 그녀는 정치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러시아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난 분위기속에서 직업을 잃은 문화예술인은 네트렙코 뿐만이 아니다.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에프도 해고됐다. 그 역시 동일한 이유로 뉴욕 카네기홀, 비엔나 필하모닉,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거부당했다. 러시아에 관련된 것이라면 모두 말살하려는 광기가 세계적이다.

예술의 본령은 경연·경쟁(competition)을 의미하는 콩쿠르(concours)라는 단어에도 잘 나타나 있다. 경쟁을 통해 자신의 감성, 나아가 감상하는 모든 이들에게 심성의 결을 풍족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예술이다. 경쟁자를 지우고 묻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전쟁, 이념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할 문화 예술까지 말살하는 야만으로 치닫고 있다.

박상후 객원 칼럼니스트(언론인 · 前 MBC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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