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의 운명⑩] 한류(韓流)를 등에 업은 CJ의 진격,윤석열시대에 어디까지?(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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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2.06.21 09:46:11
  • 최종수정 2022.06.21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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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 CJ그룹 회장/사진=연합뉴스
이재현 CJ그룹 회장/사진=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5월 발표한 2022년 재계순위(자산기준)를 보면 포스코와 농협, KT를제외한 사기업 중 상위 10대 기업에는 범(汎)삼성 그룹이 1위 삼성과 9위 신세계, 10위 CJ 등 3개, 범 현대가 3위 현대자동차, 8위 현대중공업으로 삼성과 현대 계열이 절반인 5개다.

한국 기업사에서 이병철 정주영 두 사람이 차지하는 위상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CJ는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장남 이맹희 회장(2015년 작고)을 거쳐 장손인 이재현 회장이 이끌고 있는 혈통상 삼성가의 장자(長子)그룹이다.

하지만 이병철 회장이 장남 이맹희가 아닌 셋째 아들 이건희를 후계자로 선택하면서 삼성가에서는 이건희 이재용 부자가 장자, 장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6년만에 이병철 창업주를 기리는 호암상 시상식에 참석했다. 호암상은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호암 이병철 선대 회장의 ‘인재 제일 및 사회공헌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90년 제정했다.

호암재단은 매년 학술, 예술, 사회 발전, 인류 복지 증진에 탁월한 업적을 쌓은 인물을 선정해 포상한다. 이건희 회장도 심근경색으로 쓰러지기 전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매년 호암상 시상식에 참석했다.

매년 11월19일 이병철 회장의 기일에 경기도 용인에 있는 묘역에서 열리는 추모식 또한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이 주관해왔다. 한동안 이건희 회장측에서 이맹희 집안의 용인묘역 참배를 막아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이맹희 회장과 이재현 회장측에서는 매년 이병철 회장 기일에 별도의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7년 이병철 창업주가 작고하면서 3남 이건희에게 삼성그룹 계열사 대부분을 승계하는 대신, 장남 이맹희에게는 당시로서는 알짜기업으로 꼽혔던 제일제당을 물려준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명확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제일제당의 부동산 등 주요 자산에 대해 이건희 회장이 조카인 이재현 회장에게 ‘반환’을 요구하는 일이 잦았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2000년대 초반, 한 시사월간지 기자가 이재현 회장이 연락을 해와 만난 일이 있는데 당시 이 회장이 들고 온 보따리에는 여러개의 녹음테이프가 있었고. 내용인즉 조카인 이 회장에게 삼촌 이건희 회장이 “어디어디 땅을 당장 내놓으라”는 으름장이 담겨져 있었다고 한다.

장남 이맹희 대신 3남 이건희가 삼성그룹의 후계자가 된 것을 놓고, 이병철 회장이 두 사람의 품성과 경영능력을 냉철하게 평가해서 내린 결론이라는 것이 삼성 안팎, 재계의 대체적인 결론으로 정리되고 있다.

하지만 ‘비운의 황태자’, 고 이맹희 회장은 이와관련해 흥미로운 주장을 펼친 바 있다. 바로 ‘전두환 전 대통령 입김설’이다.

이맹희 회장과 전두환 전 대통령 1931년생 동갑으로 6·25직전 대구 수성천변에서 함께 뛰놀던 동네친구 사이다. 당시 이들과 어울렸던 동갑내기 동내친구로는 유승민 전 의원의 선친 유수호 전의원도 있었다.

이맹희 회장은 1990년대 중반 출간했다가 곧바로 회수한 회고록을 통해 자신이 삼성의 후계자가 되지 못한 것을 두고 전두환 전경환 형제를 원망했다.

“어릴적 대구 수성천에서 같이 뛰놀 때 전두환은 이따금 막내동생 전경환을 데려오곤 했는데 그 인연으로 전경환이 육군 중위로 제대한 뒤 삼성 비서실에 입사시켜 아버지 이병철 회장의 수행업무를 맡겼다. 어릴적부터 친한 동생이라 업무상 이유로 자주 꾸중을 하고 심하게 대했던 일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형 전두환에게 다 일러바쳤던 것 같다. 나중에 대통령이 된 후 전두환은 아버지에게 나에 대해 부정적이고 안좋은 얘기, 심지어 회사를 물려주면 망할 것이라는 얘기까지 했다고 들었다.”

작고 3년전인 지난 2012년 이맹희 회장은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차명 상속주식을 넘겨 달라”며 7000억원에 달하는 소송을 냈는데 이 무렵 형제간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이건희 회장은 당시 이 소송을 두고 “(이맹희 회장은) 형도 아니다”라고 하는가 하면 상대방을 미행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CJ가 삼성그룹에서 벗어나 독립경영을 시작한 것은 1995년 부터다. 25년뒤인 2020년까지 CJ그룹의 매출은 30조, 자산총액은 24배가 증가했다. 매출 2조 원 안팎의 식품기업이었던 제일제당이 엔터테인먼트, 홈쇼핑, 물류를 아우르는 종합생활문화그룹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2022년 현재 자산총액은 37조, 계열사가 85개에 달한다.

이맹희 회장이 작고하기 전에도 오랫동안 병고에 시달려 정상적인 경영을 할 수 없었던 탓에, CJ그룹의 이같은 비약적 성장은 오롯이 처남 손경식 회장의 대리경영 및 이재현 이미경 남매의 공으로 평가되고 있다

1995년 출범 이후, CJ그룹 내수 식품위주의 사업구조를 대대적으로 재편했다.

국내 최초 멀티플렉스 극장 도입(1998년), 39쇼핑(현 CJ온스타일) 인수를 통한 국내 홈쇼핑 시장 개척(2000년), 국내 최초 헬스앤 뷰티스토어 사업진출(현 CJ올리브영, 1999년), CJ로 그룹 사명 변경(2002년), CJ E&M 출범 (2011년, 현 CJ ENM), 대한통운(현 CJ대한통운) 인수 (2011년) 등을 통해 ▲식품&식품서비스 ▲바이오&생명공학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신유통&물류 등 4대 사업군 포트폴리오를 구축한 것이다.

이재현 회장은 지난 2010년 CJ 온리원 컨퍼런스에서 ‘Global CJ’를 천명하며 그룹의 제2도약을 선포한 바 있다. 2030년까지 3개 이상 사업에서 세계 1등이 되고 궁극적으로 모든 사업에서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의미를 담은 ‘2030 월드베스트 CJ’를 목표로 내걸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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