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칼럼] 가끔은 희망도 보이는 대한민국
[남정욱 칼럼] 가끔은 희망도 보이는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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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역사를 가장 ‘전라도’스럽게 가르친다고 자부하는 70만 구독자의 한 유튜버는 우리 역사상 최악의 인물 베스트 5를 꼽으면서 거기에 이승만을 집어넣었다. 영상을 보면 공부를 하면 할수록, 까면 깔수록 양파 껍질 같은 인물이라며(죄과가) 한숨부터 내쉰다. 보수 우익이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이승만이 신박한 인물로 보이는 것과 정반대의 현상을 보이는데 이승만의 대표적인 죄상으로 민간인 학살(보도연맹), 한국전쟁 당시 홀로 도주, 해외에서 독립운동 당시에 자금을 착취(그의 표현이다), 친일파 청산 실패(역시 그의 표현), 독재(부산 정치파동, 사사오입)를 꼽는다. 뭐 익숙한 비난이긴 한데 헌법을 뜯어고쳐가면서까지 종신대통령이 되려고 했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라 좀 당황스럽다. 그리고 아직도 그런 인물을 좋다는 하는 사람들이 꽤 많아 안타깝다고 연민과 동정의 말씀을 주셨는데 그런 배려 안 해주셔도 된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이승만에서 다른 것을 보기 때문이다. 여기서 정상이라 함은 한반도와 일본 열도 그리고 중국 달랑 세 나라만 가지고 국제 정치를 시청하는 게 아니라 세계 전도全圖를 놓고 사정을 이해하는 사람을 말한다. 가령 1905년 한국의 외교권 박탈은 1904년 러시아 폭동과 긴밀하다, 가령 일본의 메이지 유신은 열도에서 벌어진 영국과 프랑스의 대결이라는 각도로 볼 수 있다, 가령 보불 전쟁은 프랑스의 주 병력을 유럽 대륙에 묶어놓고 아메리카에서의 헤게모니 장악을 구상한 영국의 전략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뭐 이런 분들이다.

세계관을 넓혀야 사실이 보인다.

보수 우익은 흔히 세계사적 관점에서 이승만을 봐야 실루엣이 보인다, 고 말한다. 그런데 정작 그게 어떤 관점이냐 물으면 바로 답이 안 나오시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답의 절반은 바로 맞춘다. 한미동맹이다.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고 전쟁의 역사는 동맹의 역사다. 센 놈은 세勢 자랑과 이익을 위해, 약한 놈은 생존을 위해 동맹에 가입했다. 국제정치학 공부한 이승만 눈에 한미동맹 말고는 한국이 발 뻗고 살 길이 없었다. 그리고 실제로 오늘의 대한민국은 그렇게 되었다. 또 하나의, 자주 놓치고 지나가는 세계사적 관점이 농지개혁이다. 영국의 산업 혁명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 농업혁명이다. 농업혁명으로 잉여 노동력이 발생하면서 그 노동력이 산업체로 이동했다. 농업혁명의 이익이 부분적으로 산업분야에 투자되었다. 농업 혁명으로 도시와 산업인구에게 식량을 저렴하게 제공할 수 있었다. 물론 필수는 아니다. 독일에는 마땅히 혁명이라 부를 농업 단계가 없지만 이 글의 논제가 아닌 까닭에 이 정도만 적는다. 한국의 농지개혁은 유럽과는 상황이 다르다. 산업 부르주아가 농업 귀족들을 압박하면서(정확히는 소멸시켜 가면서) 만들어 간 농업혁명과 우리의 상황이 같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역사적 맥락 없이 앞뒤 뚝 잘라서 무작정 농업혁명을 시작했는데 그게 바로 농지개혁이다. 농지개혁을 통해 대지주와 지주가 사라지고 소작농이 자영농으로 바뀌어야 생산성이 올라가고 농업 기술도 발달을 하는데 이는 아시아적 농업혁명이라고 부를 만하다. 이 농업혁명을 통해 비로소 공업화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1세계국가들은(유럽, 아메리카) 이를 자연스럽게 수행한 반면 우리는 인위적이고 비현실적으로 진행했다. 해서 전개 과정에서 불협화음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공업화에 성공했다. 아시아에서 농지개혁을 한 나라는 셋뿐이다. 우리와 일본 그리고 타이완이다. 일본과 타이완은 강제로 했다(개인적으로 일본의 농지개혁이 없었더라면 일본은 현재도 다이묘 중심의 세계관과 경제 환경 속에서 살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정치는 실제로 아직도 그렇다). 우리는 자발적으로 했다. 그걸 이승만이 했다. 이승만의 농지개혁이 없었더라면 박정희가 100명 있어도 대한민국의 오늘은 이 자리가 아니다. 노동자가 있어야 공업화를 하지. 그래서 브라질의 룰라는 한국을 그토록 부러워했다. 농지개혁해서 너네는 좋겠다고 그 사회주의 포퓰리스트가 아쉬워 입맛을 다셨다. 물론 이승만의 농지개혁은 순수하지 않다. 야당인 한민당의 경제적 기반을 무너뜨리기 위한 비수이기는 했으나 중요한 건 야당의 농업 대지주들이 기꺼이 이 조치에 합의를 했다는 거다. 왜 이런 설명까지 다느냐 하면.

잘 한 거를 강조하자, 못한 거는 알아서 일정부분 상쇄된다.

얼마 전 ‘1919 필라델피아’라는 악극을 봤다. 재미있기도 했지만 더 신기했던 건 관람객들의 구성이었다. 지긋하신 분들도 있었지만 아이들이 제법 많았다. 뭐 손잡고 끌려온 것이기는 하겠지만 아이들은 악극을 재미있게 보고 박수도 쳤다. 우리도 그 시절에 그런 congress를 했다는 게 멋져 보였나 보다. 최근 국회에서 상영한 이승만 관련 영상 상영회에도 아이들이 많았다고 들었다. 그 아이들이 흥미롭게 영상을 관람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좋은 시그널이라고 생각한다. 그 아이들은 지금 기성세대의 세계관과는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고 한반도를 중심으로 세상을 보기보다는 전체 맥락에서 세상을 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게 익숙하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에게는 세계사적 맥락에서 이승만을 설명해 줄 수 있다. 왜 한국이 선진국이 되었는지, 왜 우리의 영토가 그나마 안전한지 그 답으로 이승만 만한 게 없다. 그리고 아이들은 충분히 답에 공감할 것이다. 물론 그 아이들도 전교조 계통의 사고에 찌든 선생들을 만나 지겹도록 반反 이승만 정서를 주입받을 것이다. 이때 아이들이 “우리 선생님은 왜 이승만이 잘 한 거는 얘기 안하고 당시 수준에서 어쩔 수 없었던 것들만 저렇게 강조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면 우리에게 희망은 있다. 잘 한 거를 먼저 보고 못 한 거를 나중에 보게 해야 한다. 그게 긍정의 역사관이 된다. 못한 거를 자꾸 합리화시키려 하다보면 변명처럼 들린다. 잘 한거를 강조하자. 보수 우익은 좌파와 싸우는 것 이상으로 미래 세대의 교육에 투자해야 한다. 세계사적 관점에서 한국사를 설명하는 것은 필수다. 이승만의 과를 있는 그대로 알려주는 것 역시 필수다. 이게 차라리 예방효과가 있다. 아무리 비판의 목소리가 들려도 “어, 이게 예전에 진즉에 들은 얘기네.”라며 별로 감흥이나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이다. 있는 그대로 알려주기, 그리고 큰 그림으로 설명하기, 이런 각도로 아이들이 이승만을 만나게 해준다면 대한민국에도 희망은 있다. 글을 빌어 ‘1919 필라델피아’의 극본을 쓰고 연출을 하신 이혜경, 홍정민 선생에게 감사와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두 분 덕분에 대한민국에서 이승만 우호 인구가 늘어났다.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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