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4일 취임 2주년을 맞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11월 미국 중간선거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현대차그룹을 ‘글로벌 톱 3’ 기업으로 끌어올렸지만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전기차 시대의 약진을 가로막는 악재로 부상한 탓이다. 더욱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 개정 가능성에 대해 여당인 민주당과 야당인 공화당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글로벌 톱3 반열에 오른 현대차그룹,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라는 악재 직면

지난 8월 발효된 IRA에 따르면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만 최대 7천500달러의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한국에서 전기차를 전량 만들어 수출하는 현대차로서는 북미산 전기차에 비해 가격 경쟁력에서 열세에 처한 상황이다.

10일 각 기업 IR자료 등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올해 상반기 글로벌 판매량이 329만9천대로, 일본 도요타그룹(513만8천대)과 독일 폭스바겐그룹(400만6천대)에 이어 3위에 등극했다. 2010년 이후 12년간 5위에 머물렀던 글로벌 판매량 순위가 두 계단이나 올랐다.

그러나 IRA의 실행으로 정의선 회장의 혁신경영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정 회장은 전기차 시대의 ‘퍼스트무버’를 선언하고,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 개발을 성공시켰다.

E-GMP가 첫 탑재된 아이오닉5와 EV6는 북미지역 등에서 '올해의 차'를 석권했다. 현대차그룹은 2025년에 울산과 미 조지아주에 전기차 전용공장을 완공할 예정이다. 하지만 IRA로 인해 향후 계획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울산 공장에서 생산된 전기차는 북미시장에서 상대적 불이익을 지속적으로 감수해야 한다. 조지아주 공장에서 전기차가 생산되려면 2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IRA가 시행된 이후 지난 9월 한 달간 미국에서 팔린 아이오닉5는 1,306대로, 8월보다 14% 줄었다. 기아 EV6도 8월과 비교해 22%나 감소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IRA가 시행된 이후 지난 9월 한 달간 미국에서 팔린 아이오닉5는 1,306대로, 8월보다 14% 줄었다. 기아 EV6도 8월과 비교해 22%나 감소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미국의 11월 중간선거 결과, IRA 재개정 가능성에 주요 변수

미국의 11월 중간선거는 정 회장이 IRA 대응전략 방향을 정하는 데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민주당과 공화당 중 어느 쪽이 승리하느냐에 따라 IRA 재개정의 강도와 시기 등이 달라질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기 때문이다.

11월 8일 실시되는 중간선거에서 연방 상원 의원 100명 가운데 35명, 연방 하원 의원 435명 전원, 36개 주의 주지사 등이 선출된다. 조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을 갖고 있는 선거이다. 4년 주기로 실시되는 미국 대선 중간에 열려 집권 여당에 대한 심판론이 핵심 이슈가 되는 경향이 강하다. 역대 중간선거에서 집권 여당이 승리한 경우는 1934년, 1998년, 2002년 세 차례에 불과하다.

8일(현지시간) 현재 상원은 민주당이 48석, 민주당 성향의 무소속이 2석, 공화당이 50석으로 민주·공화 양당이 50대 50으로 정확히 양분돼 있다. 민주당 소속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당연직 상원의장으로서 캐스팅보트(찬반 동수일 때 의장결정권한)를 보유해 민주당이 겨우 우위를 점하고 있다.

하원도 민주당 220석, 공화당 212석, 공석 3석으로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다. 상원의 경우 공화당이 51석이 되면 다수당이 된다. 하원은 218석을 얻는 정당이 다수당이 된다. 누가 다수당이 되느냐에 따라 IRA 재개정 운명이 달라지는 것이다.

미국 언론들의 분석과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하원선거는 이변이 없는 한 공화당의 승리가 예상된다. 반면에 상원은 박빙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미 정치분석매체 '538'(대통령 선거인단수를 의미)은 지난 7일(현지시간) 기준으로 하원선거에서 공화당의 승리 가능성을 70%로 예상했다. 민주당이 208곳, 공화당은 215곳에서 앞서고 있고 초경합 지역구는 12곳이다. 공화당이 초경합지 중 3곳에서만 승리하면 매직넘버 218석을 달성하게 된다.

정치분석매체 리얼클리어폴리틱스(RCP)는 공화 220석, 민주 180석, 경합지 34석 등으로 분류했다.

당초 하원선거는 공화당의 압승을 예상했으나 지난 6월 연방대법원의 낙태 금지 판결을 계기로 민주당 지지층이 결집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대세를 뒤집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관측이다.

혼전 양상인 35석의 상원 선거에 대해 ‘538’은 민주당의 승리 가능성을 67%로 전망했다. RCP는 상원선거에서 민주당 46석, 공화당 47석이 유력하다고 예측한 가운데 조지아, 네바다, 펜실베이니아 등 7 곳이 경합지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미국의 중간선거 최대 이슈는 ‘인플레이션’, ‘일자리’ 등 경제 이슈...현대차에게 유리한 국면

이번 중간선거에서는 북핵문제 등 외교안보 현안은 미 유권자들의 관심권에서 사라졌다. 경제가 압도적 이슈로 자리잡고 있다. 연방대법원의 낙태금지 이슈도 경제에 비하면 미풍이다. 경제이슈가 지배하는 현상은 현대차에 유리한 측면이다.

보안 강화한 美 선관위. 플로리다주 탤러해시 레온카운티의 선거관리 직원이 지난 5일 방탄유리와 케블러로 강화한 벽 뒤에서 근무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보안 강화한 美 선관위. 플로리다주 탤러해시 레온카운티의 선거관리 직원이 지난 5일 방탄유리와 케블러로 강화한 벽 뒤에서 근무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국 몬머스대가 지난달 21∼25일 성인 806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해 지난 3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이슈 우선 순위(중복 선택 가능)로 인플레이션을 꼽은 응답자가 82%로 1위였다. 일자리(68%), 인프라 문제(57%) 등도 경제이슈로 분류하면, 낙태권 문제(56%)보다 압도적 우위를 보였다.

이런 경제 이슈는 야당인 공화당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지난 3일 발표된 갤럽 조사에서도 공화당(51%)이 민주당(40%)보다 경제 해결능력이 앞설 것이라는 미 유권자들의 인식이 드러났다.

IRA 재개정 가능성은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적 수사학에 있지 않다. 미국 유권자들의 판단이 더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IRA 재개정이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의 관점에서 논의될 때, 탄력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차 전기차 공장이 들어설 조지아주에서 IRA 재개정이 이슈가 되고 있다는 사실은 정의선 회장에게 낙관적인 대목이다.

미 상원선거 경합지 조지아주의 민주당 의원, IRA 개정법안 제출...공화당 경쟁 후보는 “지역 일자리 외면한 인물”로 맹비난

상원 선거의 경합지로 꼽히는 조지아주의 래피얼 워녹 연방 상원의원(민주당)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은 IRA 일부 조항 시행을 유예하는 내용의 '미국을 위한 합리적인 전기자동차 법안'을 발의했다. 현대차그룹 전기차에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게 그 골자이다.

현재 시행중인 ‘북미생산’이라는 전기차 보조금 조건을 2025년 말까지, 미국 내 배터리 원재료와 부품확보조항의 시행시기를 2023년에서 2025년까지 각각 유예하도록 했다. 2025년이면 조지아주의 현대차 전기차 공장이 완공된다. 2026년부터 IRA가 적용되면, 현대차 전기차는 불이익 없이 북미 자동차 기업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게 된다.

워녹 의원은 지난 8월 IRA가 상원을 통과할 당시 찬성표를 던졌다. 이는 호된 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다. 11월 중간선거에 출마한 허셜 워커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로부터 “지역 일자리를 외면한 인물”이라는 집중 비난을 받았다. 워녹 의원의 새 법안은 여당인 민주당 차원에서 IRA를 재검토했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이처럼 공화당이 중간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IRA를 재개정 또는 폐지할 가능성이 부상한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표적 경제 살리기 입법인 IRA를 비판함으로써, 차기 대선의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화당은 IRA의 기후변화 대응과 의료보장 확충, 대기업 증세 등에 대해 비판적이다. 이 법에 대한 상·하원 표결에서도 전원 반대표를 던졌다. 또 공화당이 다수당이 되면 IRA에 포함된 국세청(IRS) 예산 800억 달러, 약 가격 조항 등의 폐지에 나설 것임을 공언하고 있다. 이처럼 IRA 자체가 흔들리게 되면 현대차 발목을 잡는 전기차 보조금 조항도 개선될 가능성이 커지는 셈이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