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위치한 아르헨티나 국회의사당(Congreso Nacional)의 100년 전 흑백 사진과 현재의 모습을 담은 컬러 사진을 대비한 비교본. 이를 비롯해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여러 명소의 과거 사진과 현재 사진을 비교한 사진들이 한국에서 회자되고 있다. [사진=인터넷 커뮤니티]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우승한 아르헨티나에 대한 관심이 한국인들 사이에서 커지고 있다. 아르헨티나 축구 대표팀의 우승 카퍼레이드 등과 관련한 보도가 언론들 사이에서 연일 이뤄지기에 당연할 수도 있는 결과로 풀이되지만, 일부 호기심 많고 역사에 관심 있는 한국인들은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100년 전 사진과 현 사진을 직접 찾아 비교하며 아르헨티나의 비참한 경제 상황을 논하고 있다. 1900년대 초반 세계 최상위권의 선진국이었던 아르헨티나가 현재는 축구로 민심을 달래야 할 정도로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는 평가와 한국도 언제든 아르헨티나 '꼴'이 날 수 있단 경각심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네티즌들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명소를 동일한 각도에서 찍은 100년 전의 흑백 사진과 현재의 컬러 사진을 비교하며 이미 1900년대 초반에 전성기를 맞았던 아르헨티나의 과거에 놀라워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100년 전에 비해 지금의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시가지가 좀더 확장되고 고층 건물들이 추가적으로 건설되었으며 도로를 오가는 초기 자동차 및 마차가 현대식 자동차로 대체되었을 뿐 원형의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부에노스 아이레스가 '남미의 파리'란 별칭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인 유럽식의 고풍스런 랜드마크와 길가 주택들은 현대식 건물과도 어색함 없이 조화를 이룬다. 이를 본 한국 네티즌들은 난개발·보존의 법칙 없는 한국 도시와 비교해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아름다움에 탄복하고 있다.

100년 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시가지(상)와 현 시가지의 모습. 뒤편에 고층 건물이 올라가고 아스팔트 포장길로 바뀌었으며 초기 사륜차에서 현대 자동차로 바뀌는 등 일부 변화를 제외하곤 큰 틀에서 바뀐 바가 없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인터넷 커뮤니티]

네티즌들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아름다운 풍경 뿐만 아니라 과거 선진성에도 놀라는 모습이다. 일례로 부에노스 아이레스 지하철이 이미 약 100년 전인 1913년 12월 1일 첫 개통된 바 있기 때문이다. 이는 남반구 최초, 라틴아메리카에서 최초, 옛 식민모국 스페인보다도 먼저 개통해 스페인어권에서도 최초란 영예로운 타이틀을 갖고 있다. 그 명칭에서도 아르헨티나의 자부심을 알 수 있는데, 보통 스페인어권에서 메트로(Metro)라 통용되는 지하철 명칭이 아르헨티나식 스페인어인 '숩테(Subte)'란 별도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또한 1927년 개통한 일본 긴자선의 모델이 됐단 주장도 있다. 네티즌들은 한국이 일본 식민지가 됐을 때 아르헨티나는 이미 지하철을 개통했던 선진국이라며 감탄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한 지하철 입구. 부에노스 아이레스 지하철은 1913년 개통돼 역사적인 기록을 갖고 있다. [사진=인터넷 커뮤니티]

실제 아르헨티나의 전성기는 1900년대 초중반까지였다. 1901년 1인당 GDP를 봤을 때 아르헨티나는 9위(4591달러)를 차지했고, 1910년엔 7위(6092달러)로 오를 정도로 세계 최상위권의 경제력을 자랑했음을 자료를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일본 애니메이션 '엄마찾아 삼만리'와 그 원작인 '아펜니노 산맥에서 안데스 산맥까지'의 설정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의 소년이 1880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가정부 일을 하는 어머니를 찾아가는 여정이 주된 내용이었던 것이다. 당시 가난하던 유럽인들에게 '아메리칸 드림'에 비견할 만한 '아르헨티나 드림'이 있었음을 유추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한국 네티즌들은 "아르헨티나에 이탈리아계가 다수 이민 간 이유를 알겠다"며 "리오넬 메시도 이탈리아계 후손 아니냐"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일본 애니메이션 '엄마 찾아 삼만리'. 원작은 이탈리아의 소설 '아펜니노 산맥에서 안데스 산맥까지'다. 이는 당시의 시대상인 유럽에서 아르헨티나로의 이민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반면 과거의 영광이 무색하게도 현재 아르헨티나의 경제 상황은 최악 수준이다. 2020년 국가부도까지 총 9번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황을 맞았으며 10번째 국가부도를 앞뒀단 평가가 나올 정도다. 물가상승률은 70%를 넘어 지난달엔 88%를 기록하는 상황이다. 한때 1인당 GDP가 세계 10위권에 들던 상황이 무색하게 2022년엔 1만3622달러(IMF 추산 기준)로 세계 62위에 불과했다. 현 이탈리아인들은 역사를 공부하지 않으면 왜 조상들이 '아르헨티나 드림'을 좇아 이민을 갔는지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셈이다.

20세기 초반 아르헨티나의 1인당 GDP는 세계 수위권이었다. 1910년엔 세계 7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반면 올해 아르헨티나의 1인당 GDP는 세계 62위에 불과하다. [사진=OurWorldinData]

아르헨티나 경제의 몰락 원인을 단 하나로 정하기는 어렵다.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단 평가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몇 가지 원인을 추측해볼 순 있다. 2017년 산업통상자원부 구주통상과 자료에 따르면 아르헨티나는 리튬 매장량 세계 3위, 셰일가스 세계 2위 등 세계 6위의 자원부국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제조업 육성에 실패해 그로 인한 '자원의 저주'에 빠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후안 페론 정권의 '선 복지·빈민구제, 후 경제개발'의 결과란 지적도 나온다. 아울러 군사정권의 불안정한 통화정책으로 인한 외채문제, 통계조작 문제도 제기된다. 결국 국가를 이끌어가는 엘리트층이 미래를 바라보는 혜안을 갖고 있는가의 문제로 귀결되는 대목이다.

한국 네티즌들은 100년 전 이미 전성기를 누려버린 아르헨티나를 보며 여러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의 부에노스 아이레스가 아름다웠다는 단순한 반응에서부터 경제 몰락의 원인이 '자원의 저주'와 '지나친 복지', '비전 없는 정치'였다는 분석적인 반응까지 가지 각색이다. '(이는) 아르헨티나의 잃어버린 100년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명함도 못 내밀겠다'는 반응도 있었다. 

한국의 미래를 우려하며 '100년 뒤 한국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고민하는 반응도 보였다. 네티즌들은 이에 대해 부정적이다. 선구안이 없는 지도자가 다시 집권하게 되면 한국 경제가 추락할 것이 자명하단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이와 더불어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에 대한 우려도 크다. 특히 '인구 부족'으로 인해 가까운 미래에 한국 경제가 붕괴되기 시작하리란 두려움이 네티즌들 사이에 퍼져 있음이 포착된다. 이들은 한국이 수출의존형 국가라 할지라도 출산율이 감소하면 기본적인 내수마저 붕괴되고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산업에 종사할 인구 자체가 줄어들 것이 명약관화하다며, 아르헨티나를 남말 할 처지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 '100년 후 지구상의 다른 나라가 현 한국 사진과 그때의 한국 사진을 비교하며 똑같은 말을 할 지 모른다'는 자조섞인 말이 나오는 이유다.

100년 전 부에노스아이레스 지하철 사진과 현 사진. 의자를 제외하곤 거의 변화가 없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흑백 사진 속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민들은 유럽과 거의 동일한 스타일의 복장을 입고 있다. 앞에 앉은 젊은 남성의 장난스러운 모습에서 당시의 여유를 볼 수 있기도 하다. [사진=인터넷 커뮤니티, 편집=박준규]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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