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철 칼럼] 이야기 대한민국 – 공화국 만들기 7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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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3.01.25 10:15:14
  • 최종수정 2023.01.25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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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철 객원 칼럼니스트

명절 기간에 설날을 “Chinese new year”로 부른 연예인이 비난받은 사건이 있었다. 영국 대영박물관이 설날을 영문으로 “Celebrating Seollal”로 쓰고 “Korean Lunar new Year”라고 소개하였다고 중국 네티즌의 댓글 공격을 받은 사건이 있었다. 음력설을 민족의 정체성의 기반으로 삼는 한국과 중국 문화에서 기인한 사건이다. 해마다 이중과세(二重過歲)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설날은 하나의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시기다.

민족의 전통 명절인 설날은 조상을 기리는 사회적 의례다. 조상을 기리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신에게로 이르는 혈통을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친족을 중심으로 하는 개인적인 전통이다. 여기서 개인이란 가(家)를 가르키고 근대적 의미의 개인이 아니다. 마르티나 도이힐러는 "조상의 눈 아래에서"라는 저서에서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친족 집단의 존재를 확인하고 있다. 친족은 사회의 최소 단위이며 혈통을 통해서 친족 안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확인받는다.

공화국은 공적인 것(res publica)을 기반으로 한다. 근대적 개인이 없는 문화에서 이와 대응되는 공적인 것의 실체를 찾을 수 없음은 당연하다. 사적인 것이 공적인 기능을 담당하기에 공적인 것이 사유화되는 문제가 흔히 발생한다. 우리 문화에서는 나 개인과 친족을 떠나서 국가라는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이 쉽지 않다. 화폐 도안에 공화국 대한민국의 인물이 없는 것을 지적하는 SNS상의 논의는 이러한 상황을 보여주는 사례의 하나다.

대한민국 헌법에서 헌법 제정의 주체로 명기된 “대한국민(大韓國民)”보다는 종족적 정체성인 민족이 우선하므로 통상적으로 “한국인”이라고 불리운다. 대한민국의 중심지인 서울 광화문 광장에는 옛 조선의 왕의 동상이 서 있고 공화국을 대표하는 상징이 있는 풍경을 발견하기 어렵다.

한국적인 문화감수성이 K팝의 전파와 넷플릭스 영화를 통해서 세상에 알려지고 있지만 그것은 한국 문화의 우월성 때문이 아니라 도시화 및 세계화를 통해서 생활방식이 세계적으로 동일하게 된 상황에 기인한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일부 국가는 K팝을 젊은이를 타락시키고 국가질서를 해치는 불온한 것으로 여긴다. K컬츄어는 한국이라는 지역의 문화 정체성을 가리킨다고 하기보다는 세계 공통의 문화가 된 모두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K 컬츄어가 활약하는 배경인 도시를 중심으로 개인들이 연결된 세계화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 우크라이나 전쟁의 상황은 세계화의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보여준다. 1990년대 서구 공산권의 몰락과 냉전의 종식으로 자유민주주의가 최종적으로 승리하여 역사는 끝이 났으며 평화와 번영의 시대가 열렸다는 주장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도 보편적인 국제 질서와 국가 체제가 붕괴하는 무정부 시대가 올 것이라는 예견도 있었다. 어쨌든 세계화 시대는 오늘의 현실을 만든 지난 30여년이다.

세계화 30여년의 시기를 통해서 사람들은 교류하였으며 도시를 중심으로 인류 공통의 생활양식과 문화가 만들어졌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이를 더욱 가속시켜서 장벽이 없는 하나의 세계가 구현되었지만, 한편으로 그 과정에서 국가 단위의 정치 체제가 흔들리고 세력 균형이 무너지고 있었다. 2016년 브렉시트와 미국 대선 이후 민주정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정치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탄핵사태와 이어진 조국사태, 윤미향사태등으로 정치 리더십이 완전히 무너져서 정당정치의 위기와 제6공화국 체제의 지속가능성이 의문시되는 상황이다.

세대간 갈등이 드러나고 미래의 불확실성이 노정된 상황에서 우리는 현재의 현실을 만든 지난 30여년간의 공화국의 역사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정치 실패를 반성하지 않고 실패의 원천인 낡은 이념을 전파하겠다면서 책방을 내겠다고 억지부리는 행태를 보면 과거의 우리 모습과 실패를 되돌아볼 필요성이 더욱 크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건국과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 이후 1988년 성립된 제6공화국은 30여년의 세월을 경과하면서 처음의 헌법 정신을 잃어버리고 좌와 우의 진영으로 나뉘어서 서로 대립하고 싸우면서 건국 당시의 혼란으로 돌아가 있다. 과거사를 내세우며 정통성을 주장하지만 이는 정치파벌이 현재의 이해관계를 위해서 항상 정쟁의 수단으로 삼았던 일이다.

격변의 시기에 미래는 불투명한데 정치는 사라지고 어느 곳에서나 토착왜구와 죽창부대라는 상상의 파벌만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실질적인 내전 상황을 초래한 책임이 있는 우리가 무슨 면목으로 우리 자녀인 젊은이들에게 요즘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 배우자될 사람은 만나고 있느냐, 아이는 언제쯤 낳을 생각이냐라고 물을 수 있을까.

우리의 국가 이야기는 온통 현실 정치에 몰입되어 누구 편인지 여부를 가리는 것이 전부다. 경제보다는 정치를 생계로 하는 사람이 많은 상황이기도 하고 정치 분야의 경쟁이 그만큼 치열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우리가 겪은 제6공화국의 지난 30여년을 돌아보면 정치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여온 힘든 여정을 확인하게 된다. 1997년 국제경제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의 시대를 겪으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이 바뀌었는가.

2016년 이후 국내외적으로 민주주의의 위기 상황인 정치 혼란이 진행되고 팬더믹의 도래로 교류가 단절된 상황을 거쳐서 다시 경제위기를 걱정하는 국면에서 정치는 여전히 누구 편인지 여부만을 묻고 있다. 지난 30여년을 돌아보면 위기에 맞서서 삶의 현장을 지키면서 묵묵히 자기 일을 해왔던 아버지, 어머니의 분투가 현실에 대응하는 유일한 모습이었다.

책임지는 사람은 항상 새로운 현실에 맞서서 두려움을 떨쳐내고 대응한다. 1948년 이 땅에 공화국을 세우고 이제껏 삶의 터전으로 만들어 온 것은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있는 곳에서 공화국의 삶을 만들어 온 그 사람들이었다. 바로 그 사람들이 헌법을 만들었던 헌법 주체 세력인 “대한국민”이다.

내 삶을 국가가 책임질 것이라는 무책임한 선동으로 파벌을 유지하면서 권력의 수단으로 삼은 낡은 정치 세력이 아니라,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기 자리에서 맡은 일을 묵묵히 완수하면서 책임지는 삶을 살아온 그런 아버지 어머니의 이야기가 대한국민의 정체성을 만들어왔다.

올해는 대한민국 건국 75년, 건국을 완성하기 위한 625전쟁이 휴전된지 70년이 되는 해이고, 대립되는 진영간의 세력 균형 체제로서 설립된 제6공화국이후 36년이 되는 해이다. 세계화의 종언으로 국제 질서가 어디로 갈지 모르고, 전 세계적인 민주주의의 위기로 인한 정치적 위기의 혼란과 경제적 위기가 우려된다.

이제 나의 책임으로 만들어가는 대한국민의 이야기를 쓰자. 건국 75년간 공화국 대한민국을 지키고 만들어 온 자유의 이야기다. 각자 자기 삶을 스스로 책임지는 개인들의 이야기다. 건국과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를 이어서 지난 제6공화국 30여년 세월의 공화국을 지켜온 대한국민의 이야기다.

따뜻한 설 분위기만을 주면서 우리의 삶을 지켜주지 못하는 친족으로 함께되는 “한국인”이 아니라, 건국과 전쟁, 성장 및 갈등의 시기라는 역사에서 책임을 수행함으로써 하나가 되어온 “대한국민”이 공화국을 만들어간다.

이인철 객원 칼럼니스트(변호사, 전 MBC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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