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광고공사 KOBACO 코바코.(사진=연합뉴스)
한국방송광고공사 KOBACO 코바코.(사진=연합뉴스)

넷플릭스가 광고가 포함된 반값 상품을 내놓겠다고 한 데 이어, 지상파방송사들이 주도해서 만든 국내 OTT 웨이브도 대폭 할인된 프리미엄 상품을 내놓겠다고 발표하였다. ‘모범택시 시즌2’ 개봉 기념이라고 하지만, 넷플릭스와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고 심지어 티빙에게 조차 역전당한 것이 내면적 이유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웨이브나 티빙 같은 국내 OTT들도 생존을 위해 광고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이미 방송계에서는 한국 시장에서 수신료만으로 운영되는 B2C(Business to Consumer) 미디어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1990년대 후반 케이블TV 출범 이후 고착된 저가 유료 방송 시스템이 고질적 병폐가 되었기 때문이다. 무료 혹은 초저가 가입자들을 기반으로 다른 재원을 충당하는 기형적 방송시장이 당연한 일이 되었다. 미디어 이용 대가가 아닌 가입자 규모를 가지고 다른 데서 수익을 올리는 이른바 양면시장(two-sided market)이 형성된 것이다.

케이블TV는 인터넷 번들 상품으로, IPTV는 휴대폰 결합 판매로 저가 방송상품을 안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한 채널 건너 편성되어 있는 홈쇼핑 채널들이 유료방송사업자들에게 지불하는 송출 대가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 역시 가입자 숫자에 비례하기 때문에 저가 구조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우리나라 시청자들이 싼값으로 유료방송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누구나 무료로 시청할 수 있는 지상파방송은 오직 광고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특히 KBS와 달리 민영 지상파 방송들은 수신료라는 준조세 성격의 공적 재원도 받을 수 없다. 오랫동안 지상파방송이 3~5개 이내의 독과점 구조를 유지해왔던 이유가 주파수 희소성(frequency scarcity)이라는 기술적 요인 때문이지만, 어찌 보면 그 숫자가 광고로 생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규모 경제가 가능한 한계점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신규 매체나 경쟁 사업자의 시장 진입은 광고시장에서의 경쟁을 가열시키고 각자에게 돌아갈 수 있는 광고 파이를 줄이게 된다. 기존 사업자들의 결사적으로 저항하는 이유다. 특히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고 있는 온라인 매체들은 규모의 경제 마지노선을 붕괴시키고 있다. 신규 미디어의 등장을 ‘뉴미디어 난개발’ ‘통신사업자의 방송시장 장악’ 같은 험악한 슬로건을 내걸고 반대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인터넷 포털과 글로벌 플랫폼에 대해서도 대상만 바뀌었을 뿐 저항 분위기는 그대로다. 구글 독점구조에 대한 압박, 가짜뉴스 진원지로 공격받는 유튜브, 인터넷 포털의 불공정 경쟁 이슈들이 문제인 것은 맞지만, 다른 한편에서 보면 사업자간 갈등이 내면에 깔려있다. 어쩌면 이들의 원죄는 전통 미디어들이 분점해왔던 광고시장을 위협하는 ‘공공의 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공적 소유나 공공 독점 논리가 강하게 지배하고 있는 한국 방송시장은 대표적인 정치 영역이 되어버렸다. 공익 논리나 공영방송은 정치권력과 공생하거나 적어도 동의없이 존립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방송법에 용어조차 없는 이른바 사이비 공영방송들이 난립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공영이라는 상표를 붙여야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고, 굳이 TBS처럼 정권 호위에 앞장서지는 않더라도 광고시장 같은 데서 대가를 보상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광고는 전형적인 시장 논리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상징하는 영역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방송광고는 정부 정책에 의해 좌우되는 전형적인 규제산업이 되었다. 이 때문에 광고 재원에 의존하는 방송사업자들은 시장에서 경쟁하기보다 정부정책과 법규제를 놓고 경쟁해야만 한다. 이는 매체들이 정치권력 혹은 정부와 어떤 형태든지 연계되어 있어야 생존할 수 있는 조건이 되어 버렸다. 가장 자본주의적인 B2C(Business to Consumer) 산업이 정부 지원에 크게 의존하는 B2G(Business to Government) 산업으로 변질된 것이다.

최근 정부가 소유 또는 지분을 가지고 있던 일부 방송들에 대한 민영화 – 국가가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을 포기한다는 점에서 정상화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 가 모색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민영화로 방송이 상업광고에 직접 의존하게 되면, 자본논리에 지배될 수 있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생존을 위해 국가통제 우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지금이 더 큰 문제라는 생각은 왜 못하는지 궁금하다. 어쩌면 시장에서 경쟁해 생존해야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반대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황근 객원 칼럼니스트.
황근 객원 칼럼니스트.

황근 객원 칼럼니스트(선문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키워드
#방송 #광고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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