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은행(SVB) 붕괴 사태로 폭락했던 은행주들이 최근 급락세를 멈추고 급반등하면서, SVB사태가 치명적이지 않다는 섣부른 분석이 나오고 있다. 주식 시장과 채권 시장이 빠른 속도로 안정을 찾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위치한 실리콘밸리은행(SVB) 본사 입구. [사진=연합뉴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위치한 실리콘밸리은행(SVB) 본사 입구. [사진=연합뉴스]

14일(현지시간) 미국의 투자전문 매체 ‘배런스’는 ‘SVB 파산 이후 주가가 급락하고 채권 가격이 급등하는 등 혼란이 있었지만, 위험이 은행 시스템 전반으로 확산하지는 않았다’고 보도했다. 시장이 당혹스러워했지만 마비될 정도는 아니었으며 주식과 채권 시장이 모두 제자리를 되찾고 있으며 희망의 기운까지 발산하고 있다는 게 배런스의 진단이다.

배런스는 주식시장이 그 첫 번째 증거라고 지목했다. 14일(현지시간)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336.26포인트(1.06%) 오른 32,155.40에 거래를 마쳐 5거래일 연속 하락세에 마침표를 찍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64.80포인트(1.68%) 상승한 3,920.56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239.31포인트(2.14%) 급등한 11,428.15에 각각 장을 마감했다.

미국 정부가 지난 12일 내놓은 '예금 전액 보증' 조치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면서, 투자자들은 SVB 파산이 시스템 전체로 번지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은행주들은 일제히 급상승했다. '제2의 SVB'로 지목되던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은 27% 급등했고, JP모건체이스(2.6%)와 웰스파고(4.6%) 등 대형 은행들도 큰 폭으로 올랐다.

하지만 SVB사태를 심각하게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SVB 사태는 시작일 뿐, 더 큰 파장이 우려된다’는 전망과 함께, 이번 달 미국 기준금리 동결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SVB 파산 충격파에 대한 경계심을 늦출 수 없다는 지적이다.

① 무디스, 미 은행 시스템 전망 ‘부정적’으로 강등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인 무디스가 미국 전체 은행 시스템에 대한 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SVB 등의 붕괴로 주요 은행의 운영 환경이 악화됐다는 판단에서다.

14일(현지시간) 씨엔비씨(CNBC)에 따르면 무디스는 미국의 중소 지역은행들의 연쇄 파산 우려를 고려해 미국 은행권 전망을 기존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무디스는 “SVB, 실버게이트은행, 시그니처은행의 예금 이탈 사태 및 SVB와 시그니처은행의 파산 이후 미국 은행 시스템 운영 환경이 급격히 악화돼 이를 반영하기 위해 전망을 조정했다”고 보고서를 통해 설명했다.

무디스는 미국 당국이 SVB와 시그니처은행 연쇄 붕괴 이후 해당 은행들에 대해 25만달러를 초과한 예금도 보호하고 은행에 유동성을 투입하기 위해 ‘특별 조치’를 취했지만 여전히 우려 요소가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무디스는 “상당한 양의 미현실 증권 손실이 있거나 비보험 예금주가 많은 은행들은 여전히 예금주 (인출) 경쟁이나 궁극적으로 이탈에 더 민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이어 무디스는 “장기간 저금리가 유지되고 코로나19 팬데믹과 관련된 재정 및 통화 부양책으로 인해 은행 운영이 상황이 복잡해졌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은행 업계 위기로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금리 인상 속도 조절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지만 무디스는 당분간 금리 인상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무디스는 “인플레이션이 연준의 목표 범위 내로 돌아올 때까지 금리가 더 오랫동안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현재 진행 중인 통화 정책 긴축으로 압박이 지속되고 더욱 악화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미국 은행들의 자금조달 비용은 수년간 낮았지만 이제는 예금 비용이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며 “이는 은행들, 특히 고정금리 자산의 비중이 큰 기관의 수익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무디스는 올해 안에 미국이 경기 침체에 빠지면서 은행 업계에 대한 압력이 심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CNBC는 무디스의 이번 조치에 대해 “신용 등급과 은행 부문의 차입 비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밝혔다.

② ‘빅쇼트’의 또다른 주인공 대니 모세스, “SVB 붕괴는 시작일 뿐...더 큰 파장 우려”

무디스의 등급 전망 하향에도 불구하고 이날 주요 은행주들이 뉴욕 증시에서 반등에 성공했다. SVB, 시그니처은행 붕괴 사태로 폭락했던 퍼스트리퍼블릭은행, 웨스턴얼라이언스는 각각 26.98%, 14.36% 급등했다. 시티그룹, 웰스파고,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대형 은행주도 상승 마감했다.

[그래픽] 미국 주요 은행주 주가 상승률
[그래픽] 미국 주요 은행주 주가 상승률

이에 대해 대니 모세스(Danny Moses)는 14일(현지시간) CNBC와의 인터뷰에서 “연준이 예정보다 일찍 금리 인상을 중단할 것이라는 생각에 대한 자동적으로 나온 반응”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SVB 붕괴 이후 더 많은 경제 둔화를 예견했다.

모세스는 마이클 버리와 함께 영화 ‘빅쇼트’의 실제 주인공으로, 모세스 벤쳐 설립자이다. 모세스는 2008년 금융 시장 붕괴 이전에 주택 시장에 성공적으로 베팅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날 모세스는 “실패가 이제 막 시작되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연준이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한 이후로 신용 역학이 있었다. 우리는 이제 막 후행 영향을 받고 있다”며, “99%의 사람들은 이것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 모든 것이 명확해졌는가? 그렇지 않다”며 앞으로 부정적 영향들이 더 남았음을 시사했다.

모세스는 뉴욕증시 3대 지수가 일제히 상승한 부분에 대해, “자본 비용이 상승하고 있기 때문에, 증시 강세가 유지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상업용 부동산 및 자동차 대출의 은행 대차대조표에 여전히 불길한 문제가 있다고 경고했다.

모세스는 연준이 2022년 3월 이후 금리를 450bp 올린 것을 언급하며, “금리를 인상할 때 일어나는 일은 전반적으로 과소평가했다”며 “우리는 다음 주에 연준이 무엇을 하는지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모세스는 “연준이 지금 상황이 ‘그냥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들이 농담을 하고 있다”면서, 연준의 급속한 금리 인상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연준은 오는 21~22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통화정책 결정 회의를 개최한다. 25bp(0.25%p) 인상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금융 혼란에 대한 우려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연준이 금리 인상을 결정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기준금리 동결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SVB 파산으로 연준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잡기'와 '금융 시스템 안정'이라는 두 가지 목표 중 당장 이번에는 금융 안정에 더 무게중심을 둘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은 데 따른 것이다.

③ 납세자 부담으로 SVB 사태 해결 등 문제점 많아...대공황 가능성도 우려

SVB 파산 사태가 금융 시스템 전반의 위기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미 당국이 조기 진압에 나선 것은 적절했다는 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하지만 초기 진화에는 성공했지만 많은 숙제를 남겨주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는 바이든 정부가 예금자 보호 조치를 취하면서 연방보험기금에서 재원이 조달된다며 '구제 금융'이 아니라고 밝힌 것에 대해 "바이든은 이것이 구제 ``금융이 아닌 것처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날 트위터 글에서 "만약 예금보험 기금이 고갈될 경우 모든 은행의 고객들이 영향을 받는다"면서 "이것은 공공 구제 금융"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SVB) 예금들은 SVB의 자산을 매각해서 지급돼야 한다"면서 "납세자들이 책임져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우리는 1929년보다 더 크고 강한 대공황을 맞을 것"이라면서 "은행이 벌써 붕괴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라고 주장했다. 그는 대공황기의 대통령이었던 허버트 후버 전 대통령을 언급하면서 "우리 경제에서 일어나는 일과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이자 가장 바보 같은 증세로 조 바이든은 우리 시대의 허버트 후버가 될 것"이라며 바이든 정부의 경제 정책을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일(현지시간) 워싱턴DC 근교 메릴랜드주 네셔널하버 소재 게일로드 내셔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보수우파단체 연례행사인 '보수정치행동회의'(CPAC)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트럼프는 이날 연설에서 "지금은 우리나라(미국)의 역사에 가장 위험한 때이며 조 바이든이 우리를 망국의 길로 이끌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일(현지시간) 워싱턴DC 근교 메릴랜드주 네셔널하버 소재 게일로드 내셔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보수우파단체 연례행사인 '보수정치행동회의'(CPAC)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트럼프는 이날 연설에서 "지금은 우리나라(미국)의 역사에 가장 위험한 때이며 조 바이든이 우리를 망국의 길로 이끌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물가를 잡기 위해 연준이 금리 인상을 단행하는 가운데, 정부가 돈을 풀면서 SVB 파산과 다른 은행의 연쇄 파산은 막았지만 더 큰 문제를 자초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2년 뒤 대선을 노리는 트럼프가 SVB 사태를 계기로 바이든 때리기에 나선 형국이지만, 연준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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