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기 세종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진실에 기초하지 않은 채 무관심과 무지 내지 오해를 토대로 형성된 여론은 그 죄악성과 폐해가 그야말로 심각하다. 극적인 예의 하나로,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씌워진 악녀 이미지를 들 수 있다. 그녀는 프랑스 대혁명의 빌미를 제공하고 결국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진실이 밝혀지면서 그녀에 대한 무지와 오해가 매우 심각했음이 드러나고 있다: 그녀의 성적 문란의 극치로 예시된 아들에 대한 성추행, 사치로 인한 국가재정 탕진,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 스캔들, 빵을 달라고 여인들이 폭동을 일으키자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요!”라고 무심하게 내뱉었다는 망언 등등.

이 모두 세상물정 모르는 왕비의 무지와 함께 왕실의 부패와 비리를 과장하고 부풀려서 혁명의 정당성을 주장하고자한 당대의 혁명세력들 혹은 후대 사가들에 의해 조장된 근거 없는 낭설들로 밝혀졌다. 비난을 퍼부을 희생양으로 오랜 기간 프랑스와 적대관계였던 오스트리아 출신의 순진한 왕비는 좋은 먹잇감이었던 것이다. 최근의 파리(Paris) 여행 중 왕비가 처형되었던 ‘혁명광장’에서 필자가 느꼈던 감상의 일부이다. (물론 필자가 마리 앙투아네트를 전적으로 옹호하고 프랑스 대혁명의 의의와 진가를 폄훼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마찬가지로 특정 정치인이나 유명인을 마음먹고 모함, 파멸시키기로 작정하면 군중의 힘 즉 여론을 동원하여 얼마든지 실행할 수 있는 것이 오늘날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론이 과연 진실에 기초한 것인지의 여부이다. 
 
프랑스 혁명의 긍정적인 영향으로 급속히 발전한 자유민주주의 하에서도 여론이 진실에 기초할 때 비로소 민주주의의 진정한 가치가 창출된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나 정책결정 등 ‘집합적 선택(collective choice)’을 위한 합리적 의사결정과정 내지 선택 준칙(rule)의 구축 과 그 합리적 운용이다. ‘집합적 선택’이 진실에 기초하지 않으면 개인도 국가도 불행한 결과를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언제나 진실은 분명 하나이지, 둘이 아니다. 진실 앞에 겸손해야 한다. 진실이 승리하는 민주주의 세상이 되어야 한다.  

오늘날 자유민주주의 하의 올바른 여론 형성 및 수렴과 관련하여 매스컴(언론)의 역할은 물론이고 팬덤의 역할을 결코 가볍게 다룰 수 없다. 한국이나 미국 모두 진보와 보수 내지 좌우 이념 양 진영으로 나뉘어 특정  정치인이나 정치집단을 좋아하고 지지하거나, 혐오하고 미워하는 분열상이 심각하다. 팬덤(fandom)을 추구하며 날뛰는 정치인이나 그를 지지하는 팬들은 가히 광신적이다. 작금의 특징적 사회현상 중 하나인 팬덤은 특정 유명인물이나 집단에게 자신을 이입, 자신이 꿈꾸는 세계와 욕구를 대리 실현하면서 만족과 카타르시스를 향유하기 원한다. 한국의 ‘문파’나 ‘개혁의 딸들’, 미국의 ‘트럼피즘(Trumpism)’ 추종자들에게서 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팬덤의 발전은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의 급속한 발달로 신속한 정보유통과 팬덤 구성원의 집단화, 세력화가 더욱 용이하게 된데 힘입은 바 크다. 대규모 팬덤을 거느린 정치인들은 자신만의 신념에 기초하여 자기네 편만 바라보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 때문에 올바름에 대한 판단력이 마비되어, 자기세력이 믿고 싶은 대로 믿고 또 그것을 진실인양 생각한다. 전 국민과 구성원을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노력이 부족하게 된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 및 트럼프 전 미국대통령이 대표적이다. 그 결과로 사회 각 분야에서 빈부계층 간, 지역 간, 정치이념 간, 세대 간, 젠더(성별) 간에 ‘네 편 내 편 갈라치기’가 성행하고 갈등과 분열이 오히려 심화될 뿐이다. 더욱이 정치인 팬덤은 특정 정치인이나 정치집단에 대해 맹종적이고 선동에 취약한 경향이 있다. 미국의 경우도 최근 근본주의적 개신교를 중심으로 정치의 극단적 보수화를 주도하는 현상이나 팬데믹(Pandemic) 기간 중 성행한 코로나19 백신 거부운동 등이 대표적이다. 상당한 정도로 맹신과 무지 내지 오해의 소치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정치인 팬덤의 역기능은 음모론(conspiracy theory) 등 거짓정보(disinformation)의 파급효과를 증폭시키는 사회관계망 서비스 발달에 의해 가속되고 있다.  미국의 2021년 1월 6일 의회난입폭동은 추동세력인 극우색채 트럼피즘(Trumpism) 추종자를 중심으로 트럼프의 트위터(Twitter) 및 SNS를 통한 거짓정보의 파급과 선동에 의해 촉발된 사건이다. 지금도 각종 사법심판의 대상이 된 트럼프는 조작된 사진이나 이미지 및 거짓정보로 선동하면서 자신의 팬(지지자)들에게 호소하는 비굴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한국에서도 얼마 전 태극기를 일장기로 둔갑시켜 보수진영의 ‘친일 집회’로 오도한 진보진영의 꼼수 등. 김어준 같은 이가 좌파가 불리하면 음모론을 퍼뜨려 선동을 부추긴 사례도 있지 않은가. 거짓정보의 빠른 파급은 잘못된 신념과 맹종을 유발하고, 정치적 집합의사결정과정에서 왜곡된 판단과 선택을 초래한다.

요컨대, 매스컴(언론)이나 팬덤을 이용, 의견을 독과점하고 거짓정보와 선동에 의지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을 형성 내지 조작하려는 정치인과 정치집단은 정말 자성해야 한다. 진실에 기초한 올바른 여론 형성 및 수렴을 통하여 합리적인 집합선택 내지 집합의사결정이 이루어지도록... 나아가 건강하고 합리적인 자유민주주의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하여. 
        
이재기(세종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현 미국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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