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우 객원 칼럼니스트

 

윤석열 대통령은 3월 6일 일제징용 배상문제를 제3자 변제방식으로 해결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5년여 교착상태에 빠져있던 한일관계에 숨통을 트는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칼로 자른 것에 비견할 만하다. 용기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걸음이다.
 
  일본 정부와 언론은 물론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과 유럽연합 국가 수뇌들, 그리고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까지도 윤 대통령의 대승적 조치에 대해 입을 모아 환영의 뜻을 표했다. 한국의 국력과 국격이 높아졌고, 그만큼 국제사회의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2018년 애국자라고 자칭하는 김능환 대법관 주심의 재판부가 강제징용 피해자 원고들이 일본기업 미쓰비시와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피해보상을 개별적으로 청구할 수 있다고 판결하여 법 해석상 문제가 생겼다. 국제법상 국가 간의 배상청구와는 별도로 개인적 배상청구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사법부가 외교당국의 의견을 존중하는 사법 자제의 원칙을 외면한 국수주의적 판결이라 할 수 있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제2조 제1항은 “양 체약국 및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다”고 규정하였다. 본래 한일 국교 정상화 교섭 과정에서 일본 측이 피해자들에 대해 개별적으로 보상하겠다고 주장한 데 대해 한국 측은 정부가 일괄적으로 받아서 처리하겠다고 요구하여 일본 측이 이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무상(無償) 3억 달러, 유상(有償) 2억 달러의 청구권 자금을 한국 정부가 받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 자금으로 산업근대화를 위하여 포항제철, 경부고속도로, 서울지하철 1호선, 소양강댐 등 국가 기간시설을 건설하였다. 경제 강국으로 성장하기 위한 기초를 마련한 것이다. 한국보다 많은 금액을 받은 동남아 국가들이 효율적으로 쓰지 못한 것과 대조적이다.

  한편, 박정희 정부는 1974년 강제징용 사망자에게 30만 원을 보상하였다. 당시 한국전쟁 전사자에 대한 보상금이 30만 원이었음을 고려한 것이다. 다시, 2005년 노무현 정부는 7개월간 검토 끝에 강제징용 보상은 1965년 청구권 협정에 포함되었고, 정부가 일본에 다시 법적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신의(信義) 원칙상 곤란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2007년 특별법을 제정하여 2,000만 원의 보상금을 지급하였다. 총 78,000여 명에게 6,500억 원의 보상을 하였다. 

  한일 양국 간 및 개인 간 청구권이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는 청구권 협정 제2조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가 별도로 경비를 부담한 예외가 몇 가지 있다. 첫째, 1988년 올림픽을 계기로 한·소 관계가 풀리면서 사할린 동포의 귀국사업이 시작되었고, 이에 사할린 동포의 거주 시설을 인천 지역에 마련하는데 한국 정부가 땅을 제공하고 일본 정부가 건설 경비를 부담하였다. 원래 일본과 소련의 전후처리 과정에서 사할린 거주 일본인들은 모두 일본으로 귀환시켰으나, 함께 끌려갔던 한인(韓人) 동포는 남겨두는 차별적 조치를 했었다. 두 번째는, 일본군 종군 위안부들에 대한 보상이다. 1991년 8월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로 끌려갔다고 공개 증언한 이후 한일 간 외교 현안이 되었다. 한국 정부는 사실관계 인정과 재발 방지에 중점을 두었고, 피해자의 생계지원 문제는 한국 정부가 책임지겠다고 고차원적 접근을 하였다. 일본 정부도 청구권 협정 제2조 원칙을 주장하지 못하고 위안부 피해자의 복지를 위해 재정적 부담을 하게 되었다. 세 번째는, 한국 원폭 피해자에 대한 일본 의료진의 치료였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수많은 원폭 피해자를 치료한 의료기술과 경험의 혜택을 한국으로 귀환한 피해자들도 받도록 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도덕적 우월성’이다. 한국 외교가 일본과의 관계에서 기본으로 삼았던 도덕적 우월성을 상실하면, 일본을 상대로 신생 한국이 대등하게 협상하기 힘들었다. 

  한국 정부가 청구권 협정 제2조의 원칙, 즉 청구권이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는 원칙을 존중하지 않으면 양국 간 신뢰의 바탕이 무너지게 된다. 그동안 한국 측이 유지했던 도덕적 우월성을 잃을 수도 있다. 그것이 지금 역전되려 한다. 한국과 일본 어느 쪽의 입장이 타당한지는 제3자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판명이 난다. 

  또 한 가지 국제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전기가 있었다. 자유세계의 일원으로서의 일본의 책임을 물은 것이다. 1982년 1월 전두환 대통령이 레이건 대통령과의 워싱턴 회동에서 한미 양국 군대가 공산세력에 맞서서 자유전선을 지키고 있는데 일본은 무임 승차하여 경제적 이익만 추구한다고 지적하고, 일본도 자유진영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한국 정부는 동아시아 자유전선 방어를 위해 일본에 60억 달러 경협을 요구하였다. 나카소네 총리가 취임 후 40일 만인 1983년 1월 한국을 방문하여 40억 달러 경협에 합의하고 일본이 자유진영의 일원임을 확인하였다. 이어서 5월 워싱턴을 방문하여 레이건 대통령과 ‘론-야스’관계를 맺고 그 후 미·일 양국이 쌍 기관차로 세계 경제와 정치를 주도하였다. 이로써 일본은 남북한에 대한 등거리 정책을 포기하고 자유민주주의 한국과의 유대를 확인하였다. 1985년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글라스노스트 정책과 동유럽 공산권의 민주화, 베를린 장벽 붕괴가 일련의 연관성을 갖는 국제정치의 큰 흐름이었다. 

  한국인이 일제 36년 식민 지배의 피해를 잊을 수는 없다.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충분하게 배려해야 한다. 그러나 과거에만 얽매여 미래에 눈을 감아서도 안 된다. 지금 한국은 북한 핵, 중국의 조공체제 복원 시도, 반도체·에너지 문제 등 경제·안보의 현안이 산적해 있고,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으로 무역적자가 쌓이고 있다. 동아시아의 세력 전이 과정에서 한일 간의 긴밀한 협력이 절실하다.

  이웃 국가 간에는 크고 작은 문제가 언제나 일어나기 마련이고 이를 대승적으로 해결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한일 양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법치주의의 이념을 같이한다. 양국의 미래지향적 협력이 미국과의 동맹과 함께 지역 평화와 번영을 위한 기초다. 

  유럽의 프랑스와 독일은 나폴레옹 전쟁, 보불전쟁과 같은 악연으로 수백 년에 걸친 적대관계였고, 나치의 프랑스 침공과 악행의 쓰라린 역사에도 불구하고, 1963년 드골 대통령과 아데나워 총리 간의 ‘엘리제’조약 체결로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화해 협력을 도모하여 유럽의 평화와 번영의 중심축이 되었다.

  더불어민주당은 ‘경술국치’, ‘계묘늑약’이라고 정부의 대일정책을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죽창가를 부르며 ‘반일몰이’를 해서 국내정치에 이용하던 과거를 반복하려 한다. 심지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이용해 먹던 윤미향을 국회의원으로 만들어 보호하고 있다. 최근 창원, 충북의 간첩단에게 보낸 북한의 지령에서 밝혀졌지만, 결과적으로 ‘우리 민족끼리’ 반일, 반미를 선동하는 북한 정권의 노선에 맞추는 것이다. 지금도 민노총과 개딸들이 외치는 구호와 피켓에는 반일, 반미, 미군철수 요구가 넘쳐흐른다. 

  이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일본에 대해 앵벌이처럼 요구하는 관행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군대 위안부나, 강제징용 문제를 끝도 없이 제기하여 일본을 윽박지를 시기는 지났다. 그것은 우리의 자존심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일본을 극복하고 세계 6대 강국으로 발전하여, 일본과 대등한 협력관계를 주도해갈 의지를 반영하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야말로 과거에 매몰되지 않고 시대정신을 읽는 토대 위에서 용기와 자신감을 발휘하고 있다. 그것이 새로운 동아시아 시대에 일본,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당당한 지도자의 길이다. 높은 산, 낮은 봉우리라고 굴종 외교를 하던 문재인과 비교되지 않는가?

  윤석열 대통령이 3월 16일 일본 방문을 통해 대승적 걸음을 디뎠고, 이제 4월 26일 미국 국빈 방문하여 미래지향적 대외정책을 과감하게 펼치게 된다. 글로벌 중추국가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리는 큰 걸음이다.

  자유·인권·법치의 가치관을 공유하는 한미일 3국 간 협력을 강화하여 우리의 안보를 튼튼히 하고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촉진하는 전기를 마련하기를 바란다. 

김석우 객원칼럼니스트(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 전 통일원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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