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국내 첫 엠폭스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지난 27일까지 누적 42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중 지난해 감염된 5명을 제외한 37명이 모두 4월 들어 발생한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숨은 감염자를 통한 확산 가능성’이 드디어 현실화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 28일 질병관리청은 국내 엠폭스 확진자가 2명 더 늘어 누적 42명이 됐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지난 28일 질병관리청은 국내 엠폭스 확진자가 2명 더 늘어 누적 42명이 됐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질병관리청은 지난 28일 국내 41번, 42번째 엠폭스 확진자가 나왔다고 밝혔다. 이들은 엠폭스 주요 증상인 발진, 발열 등의 증세를 보인 것으로 확인됐다. 게다가 2명의 신규 확진자는 모두 내국인으로, 거주지는 각각 경기와 인천이다. 이들은 3주 이내 해외 여행력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질병관리청은 이들 확진자가 국내에서 감염된 것으로 추정하고, 역학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희귀 인수공통전염병 ‘엠폭스’ 확진자 지역사회에서 증가...보건당국, 감염원에 대한 추정을 밝히지 않아

엠폭스(MPOX)는 천연두와 우두(牛痘) 등이 포함된 오르토폭스바이러스(Orthopoxvirus) 속의 원숭이 두창 바이러스(Monkeypox virus, MPXV)가 일으키는 희귀 인수공통전염병이다. 본래 '원숭이 두창'을 가리키는 'Monkeypox'가 정식 명칭이었고 'MPOX'는 약어였으나, 2022년 11월경 세계보건기구에서 '특정 문화 및 지역과 관련하여, 감염자에 대한 차별과 낙인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정식 명칭을 'MPOX'로 변경하였다.

이에 같은 해 12월 14일 우리나라 질병관리청에서도 이에 대응하는 한국어 표기를 '엠폭스'로 변경할 것을 관계기관에 권고하였다. 다만 원인바이러스의 이름은 '원숭이 두창 바이러스'가 유지된다.

지난 7일 국내 6번째 엠폭스 확진자가 나온 이후, 이달에만 37명이 추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 최근 3주 간 엠폭스 확진자는 하루 평균 1.8명꼴로 발생했다. 이들 중 1명을 제외한 36명이 국내에서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35명은 최초 3주 이내 해외여행력이 없으며, 국내에서 감염원으로 추정되는 사람과 밀접접촉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질병관리청은 이와 관련해 “추가 발생 최소화를 위해 적극적인 증상 홍보 및 신고 독려에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방역 당국은 엠폭스 고위험군이 누구인지 정확히 제시하지 않고 있어 문제로 지적된다. 36명의 확진자가 국내 발생이라면, 지역사회 감염의 우려가 높은 상황인데도 감염원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밝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엠폭스의 감염 경로를 포함한 4가지 의문사항을 체크해본다.

① 주된 감염경로?...성접촉, 타액 콧물, 생식기나 항문 등 점막 부위 접촉 주의

엠폭스의 주된 감염경로는 성접촉 또는 피부접촉 등 밀접접촉이다. 감염자의 발진이나 딱지를 직접 만지거나 타액, 콧물, 생식기나 항문·직장 등 점막 부위를 접촉하면 전파될 수 있다. 즉 악수 같은 간단한 접촉으로 감염되지는 않지만 성관계나 포옹, 입맞춤, 마사지 등의 행위로는 전파된다.

국내 엠폭스 확진자들은 대부분 익명으로 밀접접촉을 하기 때문에 역학조사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밀접접촉으로 전파되고 치명률이 1% 미만으로 낮은 감염병의 특성상 숨은 감염자를 매개로 추가 전파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국외 여성 엠폭스 확진자의 41%는 가정에서 감염원에 노출된 것으로 파악됐다.

국내 확진자 42명 중 38명은 성접촉이나 피부접촉 등 밀접접촉을 통해 확진됐으며 3명은 환자를 접촉한 사례에 해당한다. 확진자를 치료하다가 주사침에 찔려 감염된 의료진도 1명 있다.

다만 코로나19처럼 비말 등으로 전파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따라서 호흡기 전파는 흔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다. 미국 CDC(질병통제예방센터)에 따르면 엠폭스 확진자가 사용한 의류나 침구, 수건 등 물체 표면을 통해 걸릴 위험은 낮은 것으로 보고됐다. 다만 우리 방역 당국은 감염된 환자가 사용한 물품, 특히 침구류 접촉을 피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인천공항 출국장 내 전광판에 원숭이 두창(엠폭스) 감염에 대한 안내가 표시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인천공항 출국장 내 전광판에 원숭이 두창(엠폭스) 감염에 대한 안내가 표시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② 고위험군은?...WHO 통계는 젊은 성소수자 남성임을 암시

방역 당국은 엠폭스 고위험군이 누구인지 명확히 제시하지 않고 있다. 다만 국외 환자 통계를 통해 간접적으로 젊은 성소수자 남성이 대부분이라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통계에 따르면 남성 환자가 96.4%로 그 중 18~44세가 79.2%를 차지한다. 성적지향이 확인된 사람의 84.1%는 남성과 성관계한 남성, 7.8%는 양성애자 남성이다.

당초 동성애자인 남성만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여성도 엠폭스에 감염될 수 있다. 세계적으로 확진자 3.6%는 여성이다. 성적지향이 확인된 여성 중 이성애자가 96%이고, 52%는 성접촉으로 감염됐다. 성적 파트너가 1명인 여성 동성애자는 감염 가능성이 낮지만, 파트너가 2명 이상이라면 감염 위험이 높아진다.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엠폭스 고위험군은 미국 CDC(질병통제예방센터)의 예방접종 권고 대상에 준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감염자와 피부·성접촉 등 밀접접촉을 한 사람이거나 면역저하자나 임산부, 5세 미만 어린이도 해당된다"고 밝혔다.

③ 고위험시설은?...남성 성소수자가 주 고객인 클럽, 목욕탕·사우나, 숙박시설 등

방역 당국은 엠폭스 고위험시설로 클럽, 목욕탕·사우나, 숙박시설 등을 지목하고, 엠폭스 예방수칙과 주의사항 등을 안내·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시설이 아니라 엠폭스 고위험군인 남성 성소수자들을 주 고객으로 운영되는 시설만 해당된다.

엠폭스 바이러스는 염소 소독만으로도 사멸되므로, 수영장이나 일반 다중이용시설에서 감염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질병청 관계자는 "지자체 등에 내려 보내는 공문에는 고위험군의 방문 빈도가 높은 시설로 밀접접촉이 일어날 수 있는 시설이라고 안내하고 있다"며 "일반적인 다중이용시설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④ 예방접종 대상은?...방역당국은 서울의 특정 지역에 대한 ‘포위접종’ 검토 중?

방역 당국은 엠폭스 고위험시설 내 확진자와 밀접접촉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예방 접종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접종에 나서는 이들은 아직 많지 않은 편이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 도입된 백신 물량은 5000명분인데, 실제 접종자는 지난 25일 기준 141명에 불과하다. 그 중에서도 140명은 의료진과 역학조사관, 실험실 요원 등이다. 실제 감염원 중에서 접종한 사람은 단 1명에 불과한 셈이다.

27일 오전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의료진이 원숭이두창 백신을 접종받고 있다. 2022.6.27. [사진=연합뉴스]
27일 오전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의료진이 원숭이두창 백신을 접종받고 있다. 2022.6.27. [사진=연합뉴스]

우리나라처럼 비교적 최근 유행이 시작된 대만에서는 이달 들어 '6개월 이내 고위험 성행위에 참여한 사람' 누구나 엠폭스 예방접종을 예약하도록 한 결과, 지난 10일까지 3만 명이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CDC가 엠폭스 예방접종을 권장하는 대상은 ▲엠폭스 감염자에 노출된 사람 ▲성적 파트너가 2주 내 엠폭스에 확진된 경우 ▲남성과 성관계를 한 남성이거나 6개월 내 성병 진단을 받았거나 성적 파트너가 1명 이상인 트랜스젠더, 논바이너리(Non-binary) 등 ▲6개월 이내 성매매 또는 엠폭스 전파 지역에서 성행위를 경험한 사람 ▲엠폭스 감염 위험이 있는 성적 파트너가 있는 사람 ▲HIV 등 면역 억제 요인이 있으면서 향후 엠폭스에 노출될 위험이 있는 경우 ▲실험실이나 의료진 등 엠폭스에 노출되는 환경에서 일하는 경우 등이다.

우리 방역 당국도 최근 지역사회 확산 위험이 커지자 노출 전 ‘포위접종(ring-vaccination)’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포위접종이란 감염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우선 예방접종을 실시해 질병 확산을 막는 전략으로, 특정 지역 주민 전체를 강제적으로 접종시킨다는 것이다. 방역 당국은 예방접종전문위원회 등의 의견을 수렴해 종합적으로 판단한 뒤 다음 주 중에는 결론을 낼 예정이다. 다만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익명 접종’을 검토하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숙영 질병청 중앙방역대책본부 상황총괄단장이 지난 26일 발표한 국내 엠폭스 확진자 경과에 따르면 첫 국내 감염 추정 환자가 발생한 4월 7일부터 4월 25일까지 29명의 환자의 신상을 파악한 결과 서울 13명, 경기7명, 경남 3명, 경북과 대구 각각 2명, 전남과 충북 각각 1명 등으로 집계됐다. 서울이 확진자 13명으로 확산 위험이 가장 커보인다. 따라서 방역당국은 서울의 특정 지역을 포위접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성소수자들이 더 큰 위험이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익명검사‧ 접종 등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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