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KBS 망할 것처럼 위기론 펴는 자세는 무책임한 태도

이인철 객원 칼럼니스트

전기요금과 통합고지되어 실질상 강제징수되고 있는 KBS 수신료 통합고지를 폐지하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방송통신위원회가 확정하여서 조만간 분리고지가 시행된다. 그동안 공영방송의 역할을 하지 못함은 물론 편파보도로 방송공정성을 훼손하고 정파적 방송으로 방송 독립을 스스로 허문 KBS의 행태로 인하여 국민 대다수는 수신료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다, 이번 시행령 개정에 앞선 국민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 의사가 다시 확인되었다.

KBS 수신료에 대한 의문 제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분리고지 정책이 갑자기 나온 것처럼 이야기되지만 이는 오래된 사안이면서 분리징수로 합의가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가장 가까이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지난 20대 국회에서 수신료를 전기요금과 분리해서 고지하는 내용의 법안이 다수 제안되어 논의되어 왔다. 당시 제안된 법안의 취지는 여야를 막론하고 국민의 방송 선택권을 보장함으로써 시청자 권리를 강화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정부의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은 종전 법안 중 민주당 박주민 의원 안과 똑같다. 박주민 의원제안 법안은 법률로 통합고지를 못하게 하는 것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박주민 법안(2017.4.3.발의, 2006551)에서 제안 취지 전부를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현재 한국방송공사(KBS)가 TV수신료를 징수할 때 한국전력공사에 위탁하여 전기사용료에 병합 징수함으로써,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공사가 송출하는 방송을 시청하지 아니하는 시청자에게까지 수신료를 강제 납부하게 하는 불합리한 점이 있음. 이에 수신료 징수 위탁기관이 TV수신료를 징수할 때에는 위탁기관의 고유업무와 관련된 고지행위와 결합된 형태로 징수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TV수신료 징수제도를 시정하고 시청자의 방송 선택권을 존중하여 방송 수혜자인 시청자의 권리를 강화하고자 함.”

수신료 징수방법에 있어서 전기요금과 통합하여 부과고지함으로써 사실상 강제징수하도록 하는 것은 KBS에 대한 특혜 부여이므로 이번에 시행령 개정으로 특혜를 없앤다는 것이다. 분리고지를 해야한다는 것은 지난 20대국회에서 제안된 모든 법안에서 그 취지를 분명히 하고 있듯이 여야가 모두 동의하고 있으므로 국민적 합의가 있었다고 할 것이다. 필요한 개선임에도 개선에 머뭇거리는 태도와 단호히 실행하는 자세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방송법 시행령 개정에 대한 반대 논지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시행령 개정 절차를 문제삼는 것과 개정의 효과로서 공영방송위기론이다. 절차적 정당성 문제라는 거창한 제목으로 포장되어 마치 무슨 절차의 문제라도 있는 양 제기되는 제목만 있는 주장은 입법예고의 일시, 방통위 의결 절차등을 거론하고 있으나 절차적 문제는 없다. 분리징수하면 수신료 수입이 반으로 줄어들 것이어서 공영방송 유지가 어렵다는 공영방송 위기론은 실증적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강제성이 없으면 국민이 납부 의무를 회피할 것이라는 가정이 전제되어 국민 수준을 낮게 보는 지극히 잘못된 생각이다. 국민을 가르치겠다는 이런 오만한 사고방식이 오늘의 공영방송의 불공정 방송과 정파적 운영 및 방만 경영의 문제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반대론의 논거에서 공영방송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서 공영방송 운영 자세의 문제를 확인할 수 있다.

수신료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국민적 합의에 따라 과거의 분리징수로 돌아가겠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서 반발함은 국민 의사를 반대한다는 뜻이다. 그런 자세는 분리징수 사안 논의에서 뜬금없이 공영방송의 필요성이 있는지를 질문하는데서 나타난다. 시청자들이 공영방송의 필요성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가르쳐 주겠다는 식의 국민 계도적 입장에 서서 긍정하는 답변을 강요하는 태도다. 공영방송의 필요성은 공영방송 스스로 자신의 존재 의의를 보여주는 것으로 확인된다. 공영방송의 책무가 무엇이며 어떻게 그 책무를 수행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보여주지 아니하면서 필요성에 대한 질문을 국민에게 던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분리징수 논란과 관련해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통합징수가 합법이라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에서 확정이 되었다는 잘못된 정보다. 헌법재판소는 법률의 위헌 여부를 다루며 시행령의 위헌 여부는 소관사항이 아니고 이는 법원에서 다룬다. 통합고지의 근거인 방송법 시행령이 위헌인지에 대해서 그 부분은 헌재 소관이 아니라고 설시한 내용이 헌재 결정문에 들어있다. 그래서 통합징수 방식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어 온 것이다.

헌재 결정은 수신료의 성격을 TV수상기를 보유하는 시청자 집단에 대한 특별부담금이라고 하였다. 공영방송 운영에는 재원이 필요한데 실제 시청하는 사람이 아니라 TV수상기를 보유하는 사람의 집단을 공영방송의 운영과 “특별히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고 보아서 부담의 주체로 인정하여 수신료를 납부해야 한다는 논리다. 과거에 TV수상기는 국민 포털로서 공적인 정보 취득의 기본 미디어였지만 지금은 유튜브를 통해서 뉴스등 방송을 보는 시대다.

KBS를 보지 않지만 TV수상기만을 보유하기도 한다. 헬스장에 설치된 러닝머신 34대에 설치된 TV 때문에 34대분 수신료를 납부해야 한다는 헬스장 주인의 호소가 신문에 소개되었다. 다매체 다채널의 미디어 환경과 콘텐츠가 미디어를 벗어나서 유통되는 시대다. TV에서 KBS를 보지 않는 사람이 KBS 운영과 “특별히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고 스스로 여기게 되는가? 변화된 미디어 환경에서 TV수상기 보유를 매개로 하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 법이 미디어 현실과 정합적이지 않게 되었다. 공영방송은 수신료 납부의 의미와 그 효과에 대해서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분리고지는 그러한 방향으로 나가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수신료가 특별부담금이라는 헌재의 설명은 분명하지 않은 점이 있다. 모든 부담금의 설치와 관리 및 운용을 규율하는 부담금관리기본법에는 KBS 수신료가 없다. 2001년에 개별법에 흩어져있던 부담금 규정을 통합해서 부담금관리기본법이 제정되었다. 부담금관리기본법 제3조는 “부담금은 별표에 규정된 법률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이를 설치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별표에는 방송법이나 KBS 수신료 관련 내용이 없다. 이점은 2006헌바70 현재 결정에서도 다루어졌는데, 당시 헌재는 부담금관리기본법 부칙 제3조의 “법 시행당시 별표에 규정되지 아니한 부담금이 부과되고 있는 경우에 기재부장관은 소관행정기관의 장에게 그 부담금의 폐지등을 위한 제도개선을 요청할 수 있다”는 경과 규정을 근거로 법은 별표에 규정되지 아니한 부담금의 존재를 예정하고 있으므로 “수신료가 부담금관리기본법상 부담금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더라도 여전히 수신료는 부담금에 해당한다”는 애매모호한 답변으로 넘어갔다. 헌재는 당시의 상황에서 법에 규정되지 않은 KBS수신료의 성격 규정을 시도한 것으로 보이지만 부칙의 경과 규정을 이유로 대는 것은 아무래도 근거가 박약해 보인다. 이 부분은 법적으로 명확히 정리되지 않았다. 위 헌재 결정 이후 15년이 지난 오늘도 부담금을 총괄하는 법인 부담금관리기본법에는 KBS 수신료가 부담금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

수신료 분리고지에 대한 사안에서의 논쟁은 공영방송 문제를 오히려 드러내고 있다. 통합고지가 폐지되고 분리고지가 되면 당장 KBS가 망할 것처럼 위기론을 펴는 자세는 공영방송의 그동안의 운영 잘못의 문제를 덮고 방어를 위해서 근거없는 주장을 내세우는 무책임한 태도다. 공영방송의 문제는 법제도 이전에 책임의 문제다. 공적재원으로 유지되는 KBS는 불공정보도와 정파적 운영 및 방만경영에 대해서 그동안 어떤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왔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여의도 KBS 본관 주위는 시청자들이 보낸 근조 화환으로 둘러싸여 있다. KBS를 국민의 품으로라는 슬로건으로 KBS 정상화를 위해 근조 화환 보내기 시민운동이 진행중이다.

KBS는 국민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통합고지 폐지에 반발하여 국민에게 대항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분리고지 시대로 돌아가서 국민과 수신료 문제를 가지고 직접 대면하면서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고 책임을 다하는 방향을 모색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영국 대처 정부 시절에 BBC 개혁을 논의한 피코크 위원회는 보고서에서 공영방송이 시청자와 청취자의 이익을 보호하지 못하고 방송사와 방송인의 이익에 포획되어서 공공의 이익이 아닌 방송사와 방송 내부자 이익을 우선하는 특권시스템이 되었다고 지적하면서 “방송 정책의 기본목표는 소비자 선택의 자유와 프로그램 제작자가 대중에 여러 가지 대체상품을 제공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다”라고 결론을 맺었다.

이인철 객원 칼럼니스트(변호사, 전 MBC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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