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시가 새로 공개한 춘향이 영정
왜색 논란 춘향 영정 다시 그렸다고?
세상은 넓고 답 안 나오는 분들은 너무나 많다

한동안 인어공주의 피부색을 가지고 인종차별이니 어쩌니 소란스럽더니 이번에는 춘향이의 외모를 놓고 난리다. 남원시가 새로 공개한 춘향이 영정을 두고 노안이라 이몽룡도 못 알아보겠다, 월매인 줄 알았다 등의 반응이 나왔다. 실존인물이 아니니 증언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고 대체 왜들 그러시는지 모르겠다. 제 눈의 안경이니 이몽룡에게만 예뻐 보이면 그만이고 같은 논리로 변학도에게만 미스 남원이면 그걸로 땡이다. 물론 이 경우 18세기 조선 남성들의 미적 감각에 대해 심하게 회의적인 생각이 들기는 한다. 남원시가 작가에게 제시한 주문서는 얼굴은 16세에서 18세 전후에 절개와 지조가 있고 한국적 미를 표현하며 복식은 18세기 의상이었다고 한다. 작가는 새 영정에 경남 진주에서 생산한 비단을 사용하고 물감은 자연에서 채취하고 생산한 염료와 석채를 주 안료로 사용했고, 전통 채색 화법으로 영정을 완성했다고 밝혔다. 또 춘향의 인물상을 묘사하기 위한 머리 모양, 저고리, 치마, 신발, 노리개 등 옷차림 전반은 복식 전문가의 고증과 자문을 거쳤다고 설명했다. 이 대목에서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데 정작 중요한 것을 빼놓고 있기 때문이다.

뭣이 중헌디?

춘향이에게 증언은 없으나 프로필과 목소리가 있으니 바로 판소리 춘향가다. 가장 많이 불리는 신재효 선생의 사설을 들으면 캐릭터가 너무나 뚜렷하다. 그네 뛰는 춘향을 보고 넋을 잃은 이몽룡에게 방자는 자색과 문필을 겸했다고 고한다. 외모와 글이 된다는 얘기다. 그럼 목소리와 말투는 어떨까. 방자가 부르러가자 춘향이가 이렇게 대꾸한다. “엊그저께 내려오신 도련님이 나를 어찌 알고 부른단 말이냐. 네가 도련님 턱 밑에 앉아서 춘향이니 난향이니 기생이니 비생이니 종달새 삼씨 까듯, 생쥐 씨나락 까듯 똑똑 까 바쳤구나. 이 개씹으로 나서 소젖 먹고 돼지 등에 업혀 자라난 이 두더지 잡년의 자식아.” 단어의 선택과 표현에서 웅혼하고 기개가 넘치는, 정말이지 춘향이에 대한 환상이 모조리 깨지는 사설이다. 하긴 춘향가 속 춘향의 나이는 열대여섯이다. 지금으로 치면 중학교 2학년이니 그때도 중2병은 있었나보다. 캐릭터를 좀 더 보자. 춘향이 방자에게 이어서 하는 말이 “안수해 접수화 해수혈”이다. 기러기는 바다를 따르고 나비는 꽃을 따르며 게는 구멍을 따른다는 뜻인데 사례가 다소 민망하다. 사내가 계집을 찾는 게 도리라는 말로 슬쩍 튕기지만 한편으로 발동한 호기심을 참지 못한다. 향단에게 광한루 건너가서 지나가는 아이처럼 도련님을 보고 오라는 명을 내리는데 어떤 남자인지 궁금해 죽겠다는 눈치다. 여기까지만 봐도(뼈에서 즙이 빠지는 둘의 첫날 밤 이야기는 다들 아실 것이어서 생략한다) 춘향이 캐릭터가 대략 잡힌다. 절개와 지조는 잘 모르겠지만 대신에 까지고 당돌하고 하여간 그쪽으로는 주체성이 뚜렷한 이미지다. 이 정도면 새로 그린 영정이 춘향의 목소리와 맞아떨어지는지 아닌지 판단하기는 어렵지 않아 보인다.

왜색 논란이 거기서 왜 나와?

‘한’ 신문은 이 사태를 보도하면서 기사 제목을 ‘왜색 논란 춘향 영정 다시 그렸지만’으로 달았다. 이 질문의 합리적이기 위해서는 기존의 춘향 영정이 우리 전통복식이 아니거나 기모노 비슷한 것을 입고 있어야 한다. 당연히 둘 다 아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시선을 유도하는 것은 작가가 친일 판정을 받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너무 궁금하다. 친일파가 그리면 작품도 친일이 된다는 얘기인가. 그러면 홍난파의 ‘고향의 봄’과 ‘봉선화’도 폐기해야 하지 않나. 한편 영정에 시비를 거는 사람들도 둘로 갈린다. 하나는 외모파이고 다른 하나는 최초 춘향 지지자들이다. 최초 영정 지지자들은 김은호 화백 그림 이전의 영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평민의 옷을 입은 어사부인이라 평등을 상징하고 태극의 색깔인 붉은 저고리와 파란 치마로 민족정신을 드러내고 있으며 16살 춘향이가 아니라 변학도에게 항거한 열녀로 항일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 배경 상 숙종이나 영, 정조 시기의 인물인 춘향에게 항일까지 시킨다고? 정말이지 세상은 넓고 답 안 나오는 분들은 너무나 많다.

(왼쪽부터 최초 영정, 김은호 작가가 그린 춘향 영정, 최근 김현철 작가가 그린 춘향 영정)

영정에 대한 개인적인 소견으로 마무리한다. 처음 소생이 김현철 작가의 영정을 봤을 때 떠 오른 인물이 둘 있다. 하나는 복싱 헤비급 챔피언이었던 마크 타이슨이다. 그 굵은 목을 춘향에게서 볼 줄은 몰랐다. 다른 한 명은 유관순이다. 그냥 떠오른 생각이다.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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