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 되면 무의미한 정치실험 판박이처럼 되풀이
무당층 믿고 정치하는 건 허망하고 어리석은 일
상징자산이 없는 제3당의 실패는 필연이다
안철수 보면 제3지대 신당은 성공해선 안 된다
제3당에 대한 수요 상존은 결국 거대 양당의 책임
대한민국 주류여야 할 국민의힘의 책임이 더 크다

주동식 객원 칼럼니스트

한국미래연합을 기억하시는가. 2002년 5월 17일부터 2002년 11월 22일까지 겨우 반년 남짓 존재했던 보수 정당이다. ‘박근혜 의원이 이회창과의 갈등으로 한나라당을 탈당해 만든 정당’이라고 하면 기억이 나실 분들이 조금 늘어날 것 같다. 물론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이 40대 이상 연배에 상당한 정치 고관여층이어야 그나마 기억이라도 나실 것이다. 즉, 한국미래연합은 기억하는 사람조차 거의 없을 정도로 존재감이 거의 없었던 정당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비록 탄핵을 당해 대통령 자리에서 비극적으로 물러났지만 한때 ‘선거의 여왕’이라는 닉네임을 가졌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가졌던 정치인이다. 그 존재감 가운데 상당 부분이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에 힘입었다고 봐야 하지만 어쨌든 21세기 한국 정치사에서 그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가졌던 정치인도 드물 것이다.

이것은 기묘한 부조화이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박근혜 개인의 막강한 존재감과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조차 드물 정도로 역할이 미미했던 한국미래연합의 대비가 그것이다. 이 부조화는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왜 박근혜처럼 막강한 정치인도 독자적인 정치세력화에 실패했을까 하는 질문이 그것이다. 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정작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거기에 대해 답변하는 사람도 드물다. 그 결과 선거철이 다가오면 무의미한 정치 실험이 판박이처럼 되풀이된다.

22대 총선을 앞둔 2023년도 예외는 아니다. 무소속 양향자 의원이 ‘한국의희망’이라는 신당 창당에 나섰고, 금태섭 전 의원도 창당 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정의당도 재창당 작업에 나섰다. 언론도 상당한 비중을 두고 이들의 동향을 보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이 만드는 신당은 과연 얼마나 현실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례를 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이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말이 제3지대 독자 정당이지 사실상 이들이 신당을 통해 얻고자 하는 진짜 목표는 거대 양당과의 줄다리기를 통해 정치적 보상을 얻어내는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흔히 ‘광 팔기’라고 표현되는 거래이다. 자체 역량으로는 따내기 힘든 정치적 위상을 독자 정당을 통한 득표 위협을 통해 얻어내는 기법이다. 21대 총선에서도 그런 사례가 있었다. 청년 정치인의 타이틀을 내걸고 가짜 당원 명부까지 만들어 허수아비 정당을 만들고 그 카드로 보수 정당과 합당했던 사기꾼들의 사례가 그것이다.

양향자나 금태섭, 정의당의 창당이 이런 사기꾼들의 사례와 같다고 볼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이들의 창당 동기가 얼마나 진정성이 있는지는 역시 의문이다. 이들이 밝힌 창당의 동기를 보면 과거 수많은 제3지대 정당들의 그것과 차별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정치적으로 절실한 동기가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정치적으로 참신한 메시지로 표현된다. 진실은 결코 진부하지 않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메시지가 없다.

이들이 진짜 의지하는 근거는 30%를 넘나드는 무당층일 텐데, 한마디로 꿈 깨라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나라에서 무당층은 정치 저관여(低關與) 집단이며 정치 무관심층이며 조금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정치 혐오층이다. 지지 정당이 없다는 무당층의 답변은 정치적 페이크인 경우가 많다. 선거가 다가오면 이들은 자신들의 성향에 좀더 가까운 거대 양당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게 아니면 아예 투표를 포기하거나. 무당층을 믿고 정치를 한다는 것은 사막에서 신기루를 바라보며 진로를 잡는 것과 마찬가지로 허망하고 어리석은 일이다.

제3지대 정당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보다 근원적인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정치적 상징자산의 존재이다. ‘상징자산’이라는 용어는 필자가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해 지금은 지식인들 사이에서 상당히 많이 정착한 개념이다.

정당이나 정치세력이 자신들의 정체성이나 추구하는 가치를 유권자에게 알리는 방법은 다양하다. 당헌 당규, 정강 정책도 있고 선거가 닥치면 공약도 발표한다. 하지만, 유권자 가운데 이런 정치 콘텐츠를 일일이 읽고 정당들의 차이를 따져보고 분석해서 한 표를 행사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0.01%도 안될 것이다. 심지어 정당 관계자들도 저런 문서를 다 읽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도 유권자들이 자신들이 지지할 정당을 선택하는 데에는 별 어려움이 없다. 왜 그럴까?

바로 상징자산의 존재 때문이다. 상징자산이란 유권자들이 어떤 정당이나 정치세력의 정체성과 추구하는 가치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만들어주는 존재를 말한다. 국민의힘의 경우 건국, 산업화, 반공, 자유시장, 이승만, 박정희, 6.25, 영남 등이 이런 상징자산에 해당한다. 민주당은 민주화, 햇볕정책, 경제민주화, 김대중, 노무현, 5.18, 호남 등이 여기 해당한다. 몇천 페이지의 홍보 책자보다 저런 몇 개의 단어들이 정당의 정체성을 훨씬 명징하게 그리고 직관적으로 설명해준다. 유권자들은 이런 상징자산을 보고 자신들의 정치적 선택을 결정한다. 결코 헷갈리지 않는다.

제3정당에는 이런 상징자산이 없다. 이런 상징자산은 옮겨올 수 없기 때문이다. 일종의 관습처럼 거대 양당에 소유권이 등기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박근혜와 한국미래연합의 사례가 이것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우리나라 정치사에서 특정 정치인 개인이 정치적 상징자산이 된 사례라면 우파에서 이승만과 박정희 그리고 좌파에서 김대중과 노무현 정도를 꼽을 수 있다. 박정희의 후광을 입은 박근혜조차도 그런 상징자산이 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징자산이 없는 제3당의 실패는 필연이다.

지금까지 제3지대 신당이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다. 제3지대 신당이 성공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그것이다. 대표적인 제3당 사례라고 할 수 있는 안철수와 국민의당이 그 이유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양향자 의원도 호남을 정치적 근거지로 한다고 밝혔던데 이 점에서는 안철수도 마찬가지였다. 철저하게 민주당과 좌파에 의해 포획된, 일종의 ‘이념적 가두리 양식장’이라고 할 수 있는 호남을 어떻게, 얼마나 변화시키느냐에 안철수와 국민의당의 정치적 존재 근거와 성패가 걸려 있었던 셈이다.

결론적으로 안철수와 국민의당은 철저하게 실패했다. 2016년 4월 13일 치러진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은 지역구 의석 25석 가운데 23석을 호남에서 얻는, 엄청난 정치적 약진을 보여줬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안철수와 국민의당의 성과는 ‘우리도 변화하고 싶다’는 호남의 열망이 반영된 결과였다. 하지만 안철수는 호남의 문제를 이해할 지적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그래서 호남의 변화를 어떻게 이끌어야 할지에 대해 아무 방향성도 없이 호남의 유권자들이 부여한 기회와 시간, 자원을 낭비했다. 그 결과는 다들 아시는 바와 같다. 안철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정치적 위상이 쪼그라들었고 이제 정치적인 재기가 가능할지도 회의적이다.

안철수는 한때 본인이 직접 정치적 상징자산이 될 가능성도 보여줬다. 즉 김대중이나 노무현의 반열에 오를 수도 있었다는 얘기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정치의 가능성 하나가 소멸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안철수 개인의 몰락이 아니다. 바로 호남의 변화를 안철수의 어리석음 때문에 차단했다는 사실이 훨씬 중요하다.

호남이 민주당과 좌파의 이념적 가두리 양식이기는 하지만 호남에도 민주당과 좌파에 대한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런 불만층이 적어도 40%에 이른다는 것이 현지의 일반적인 평가이다. 문제는 이런 불만이 왜 정작 투표로 연결되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왜 호남 유권자들은 평상시 민주당과 좌파를 욕하다가도 막상 투표장에 가면 오직 민주당에게만 표를 주는 것일까?

이유는 분명하다. 호남이 반(反)대한민국 정서와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명백한 현실을 호남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거나 혹은 알더라도 공개적으로 발언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이 명백한 진실을 감출 수도 없고 감추어서도 안된다. 호남은 반(反)대한민국이다. 이승만의 건국도, 박정희의 산업화도 인정하지 않는다. 건국도 산업화도 인정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의 기초를 거부한다는 얘기이다. 이걸 반(反)대한민국 아니고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호남의 심장 광주에는 이승만과 박정희의 동상이 하나도 없지만 6.25 때 중공군의 일원으로 남침에 동참했던 중공의 인민 작곡가 정율성을 기리는 정율성로(정식 도로명)와 정율성 기념관, 정율성 동상 등이 조성돼 있다. 이걸 반(反)대한민국 말고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이건 단적인 사례에 불과하다.

지난 4월 5일 치러진 전주을 재선거에서 진보당의 강성희가 당선됐다. 문제는 진보당의 정체성이다. 진보당은 2014년 12월 위헌정당 판정으로 해산된 통합진보당과 인적 이념적으로 겹치는 요소가 많다. 한마디로 말해 통합진보당의 실질적 후신이요 복귀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이런 정당이 호남을 근거로 하여 정치적으로 부활하는 것일까? 이게 단순한 우연인가?

이밖에도 광주와 호남이 반대한민국 정서에 젖어있다고 봐야 할 사례는 많다. 이 반대한민국 정서와 가치관이 평상시 민주당과 좌파에 대한 불만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호남이 다시 이들에게 표를 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대한민국의 건국과 산업화라는 상징자산을 소유한 국민의힘 등 우파 정당에는 죽어도 표를 줄 수 없다는 심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호남의 진정한 변화는 바로 건국과 산업화, 이승만과 박정희 등 대한민국을 긍정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그 변화는 건국과 산업화의 상징자산을 보유한 정치세력인 국민의힘 등 보수 정당에 대한 지지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에 대한 전면적인 긍정이 아닌 호남의 변화는 변화가 아니라 미봉책이자 심지어 기만일 따름이다. 이런 점에서 안철수와 국민의당은 대한민국을 긍정하려는 호남의 변화의 열망을 도중에 가로채서 왜곡하고 오염시키는 역할을 했다.

대한민국의 정치는 근본적으로 양당 정치일 수밖에 없다. 허접한 좌파 성향의 지식인들이 다당제를 절대선인 것처럼 포장하지만 적어도 남북통일 이전까지는 양당제를 벗어나기 어렵다. 대한민국의 정치는 남과 북의 분단과 대립이 연장 재현된 현상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치가 갈수록 갈등이 격화되고 사실상 내전 상태로 치닫는 이유가 이것이다. 그 구체적인 표현이 양당 정치이다. 극단적인 대립 갈등의 양당 정치를 극복하기 위해 제3당의 존재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지식인들이 많지만 본말을 뒤집은 논리이다. 한반도의 극단적인 대립 갈등 구조가 반영된 결과가 양당 정치이지 그 반대가 아니라는 얘기이다.

제3당 창당은 대한민국의 분단 구조가 불가피하게 강제하는 양당 정치의 필연성을 이해하지 못한 시도이다. 그래서 결코 성공할 수 없고, 성공해서도 안된다. 그걸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호남 정치이고, 그 변화 요구를 왜곡해 한국 정치에 치명적인 해악을 끼친 것이 안철수와 국민의당의 정치 실험이다. 안철수와 국민의당은 정확하게 말해 대한민국의 가치를 전면 긍정하는 정치를 한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정체성이 애매한, 좌도 우도 아닌 정치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호남의 변화를 이끌기보다 호남의 눈치를 보는 정치였다.

잘못된 정치 경향성도 근본적인 정치 지형이 바뀌지 않는 한 되풀이된다. 그래서 제3당에 대한 요구도 앞으로 총선이나 대선 또는 중요한 정치적 변화가 닥칠 때마다 계속해서 돌출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시도가 내포한 문제점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짚어야 한다. 분단 등 객관적인 정치 조건은 필연적으로 양당 정치를 강제하는데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제3당에 대한 수요가 제기되는 것은 본질적으로 거대 양당이 제대로 대중의 정치 요구를 수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거대 양당 중에서도 국민의힘의 책임이 더 크다. 건국과 산업화의 주역 즉 대한민국의 메인스트림으로서 정치 정상화의 본질적인 책임이 보수 정당에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치가 분단의 반영이라고 했을 때 민주당 등 좌파 정당은 사실상 북한의 정치적 정체성의 반영일 수밖에 없다. 원래 보수 정당의 정체성으로 출발했던 민주당이 좌파의 에이전트로 전락한 필연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민주당에는 기대할 것이 전혀 없다. 완전히 무너져 제로그라운드에서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이 정당에는 미래가 없다.

이제 어설픈 제3당 시도는 그만둘 때가 됐다. 물론 앞으로도 이런 시도를 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도를 하는 사람들의 수준은 상대적으로 점점 소수화되고 낙후될 것이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게 이번 양향자 금태섭 정의당 등의 신당 시도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진정한 교훈이라고 믿는다. 이들이 만든 정당을 10여년 뒤에 기억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한국미래연합이 그 사실을 너무나 분명하게 보여준다. 한국미래연합이 뭐냐고? 이걸 보시라. 이 글 첫머리에서 말한 이름조차 기억 못하고 있지 않은가.

주동식 지역평등시민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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