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 우선주의, 첨단산업 안보화 경쟁속 기업들 유턴 고민...“예측·신뢰 가능한 대책 필요”

 

윤석열 대통령과 재계 인사들이 지난 1월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3년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재계 인사들이 지난 1월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3년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기업에 가해지는 각종 규제를 피하고, 해외시장 공략을 위해 외국으로 떠난 기업들을 다시 불러 들이는 ‘리쇼어링(Reshoringp)’이 윤석열 정부 2년차의 핵심 경제 화두로 부각되고 있다.

리쇼어링은 해외로 나간 자국 기업들을 각종 세제혜택과 규제완화 등을 통해 자국으로 다시 유턴시키는 정책을 말한다. 싼 인건비와 시장을 찾아 해와로 생산기지를 옮겨가는 ‘오프쇼어링(Off-shoring)’의 반대말이다.

중소기업들이 인건비 때문에 중국과 동남아로 공장을 옮긴데 이어 정권 5년 내내, 그리고 윤석열 정권 들어서도 삼성과 SK, 현대차 LG 등 주요 대기업들의 해외(특히 미국) 생산기지 이전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현재 세계적인 경제침체는 코로나19 팬데믹에 이은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간 주도권 싸움으로 인한 디커플링(탈동조화) 등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여기에 삼성과 SK, 현대차, LG 등 주요 대기업들의 해외 생산기지 이전이 지속될 경우 일자리 감소와 내수침체로 인해 한국경제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

주요 기업들이 해외로 떠나는 것은 과도한 법인세 등 각종 규제와 강성노조, 임금문제, 판매망 구축 등이 핵심 원인이지만 미국이 선언한 자국 우선주의,한미동맹 균열의 틈새를 파고 든 트럼프, 바이든 전 현직 미국 대통령의 한국기업 옥죄기도 적지않은 역할을 했다.

문재인 정권은 ”한반도 문제는 당사자인 남한과 북한이 주도권을 쥐고 해법을 찾아나가야 한다“는 이른바 ‘한반도 운전자론’에 따른 친중 친북 외교노선으로 삼성과 현대차 등 주요 한국기업이 미국에 막대한 투자를 쏟아붓는 경제적 리스크를 감수해야만 했다.

트럼프 대통령에 이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툭하면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 SK 최태원회장, 정의선 현대차 회장을 만나 수십억달러의 미국 투자 약속을 받아내고 있다.

2021년 5월 있었던 문재인 당시 대통령의 미국방문 때, 이런 양상은 절정에 달했다.

당시 대한상공회의소가 미국 현지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문 전 대통령의 방미수행 경제인단 소속 52개사는 2022년까지 5년간 총 128억달러를 미국내 공장 설립과 설비 확충, 연구·개발(R&D) 등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가전공장을 짓고, LG전자는 테네시주에 가전 공장을 신설하고 뉴저지주에 미주법인 신사옥을 세우기로 했다. 또 SK와 GS, 한진 등은 LNG(액화천연가스), LPG(액화프로판가스)와 항공기 구매 등에 224억달러를 쓰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미간 경제교류사상 이처럼 대규모 퍼주기 투자를 한 전례는 없었고, 이 모든 것이 한미동맹 균열에 따른 반대급부로 한국기업의 투자를 요구하는 미국정부의 압력 때문이었다.

현재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첨단 전략산업의 안보화 경쟁을 벌이고 있다. 1950년대, 냉전 및 미국과 소련의 우주경쟁과 함께 시작된 첨단산업의 안보화 양상이 반도체 분야 등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017년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에서 '경제안보가 국가 안보'라며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천명한 것이 시작이다.

바이든 정부는 작년에 제정한 칩스법을 통해 반도체 생산 기반을 자국 내에 두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IRA로 불리는 법안으로 막대한 자금을 보조금으로 지급하며 배터리 등 첨단 성장동력을 자국의 경제권에 묶어 두려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물론, EU, 일본, 대만 등이 이 경쟁에 참전한 상태다. EU는 유럽판 IRA인 CRMA(핵심원자재법)를 통해 핵심 원자재의 역내 생산을 확대하고 첨단반도체의 점유율을 확대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일본도 자국 내 반도체와 첨단범용제품 지원에 2조 엔을 투입할 예정이고 대만은 올해 ‘대만형 칩스법’을 통과시켜 조세감면을 포함해 인재 양성 등 전방위적인 반도체 발전전략을 만들었다.

이에 맞물려 올들어 리쇼어링의 중요성에 대한 재계와 정부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 정부 내내, 바이든 정부 들어서도 이어지는 한국 기업들의 대규모 미국투자 역조, 이로인한 첨단 일자리 해외유출 현상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 뒤늦게 벌어지고 있는 것.

”기업의 뒤에 국가가 있다. 정책도 국가 간 경쟁이다"(남경모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정책과장)

"경제안보는 결국 세상에서 가장 핵심적인 기술을 향한 싸움이다"(이창한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

지난 4월11일 산업연구원이 주최한 <경제안보와 첨단전략산업 포럼>에서 정부와 재계는 한 목소리를 경제안보 차원에서 첨단 전략산업의 리쇼어링 문제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이 자리 참석한 민주당 김한정 의원(국가첨단전략산업특별위원회 위원) 또한 “현재의 경제안보시대는 곧 기술전쟁이다”라며 전략산업지원을 위한 국가적, 제도적 예산을 검토해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산업화에 이은 세계화라는 흐름에 최적화된 한국의 경제구조에서 첨단전략산업을 안보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은 익숙치 않은 장면이었다. 하지만 근래 미국의 움직임에서 보이듯,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산업 전략과 안보는 분리할 수 없는 관계로 부각되고 있다.

지난 21일 정부와 여당은 해외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를 장려하기 위해 관련 기업에 대한 소득세·법인세 감면 혜택을 현행 '5년 100%+2년 50%'에서 '7년 100%+3년 50%'로 확대로 내년도 세법개정안에 반영하기로 합의했다.

7월초에 정부의 2023년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 경제활력 제고를 위한 수출 투자 촉진 방안으로 첨단전략산업 리쇼어링이 제시된 데 이어 나온 것이다.

지난 3월에는 'K칩스법'으로 알려진 조세특례제한법이 국회를 통과한 바 있다. 개정안에는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바이오 등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대기업의 시설 투자에 대해 최대 15%의 법인세를 공제해주는 등 파격적인 내용이 담겨있다.

재계에서도 대한상의를 이끌고 있는 최태원 SK 회장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리쇼어링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태원 회장은 리쇼어링의 핵심 중 하나이자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법인세 인하 문제에 색다른 해법을 제시한 바 있다. 그는 “법인세를 무차별적으로 인하하는게 좋은 것일까라는 생각이 든다”면서 “세금을 깎아줘도 투자가 인 일어나는 곳에 굳이 (인하)해 줄 이유가 있느냐”라고 말한 바 있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 중인 법인세 인하 방향에는 동의하면서도 신규 시장을 조성하기 위해 법인세 인하를 산업, 지역별로 차등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리쇼어링 지원에 나선 것은 2013년 12월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 이후다. 유턴 기업의 법인세 감면 및 설비보조금 지원 등의 대책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후 10년 동안 국내 복귀 기업은 126개로 같은 기간 국내 기업의 해외 신설법인(2만 6406개)의 0.5%에 불과했다. 특히 유턴한 대기업은 현대모비스, LG화학 2곳 뿐이었다.

미국 정부가 전기차 등 첨단산업 지원에 제시한 각종 파격적인 혜택과 천문학적인 액수와는 비교도 되지않는 자금지원 규모 또한 대기업 및 첨단산업의 국내 복귀에 발목을 잡고 있다.

이 때문에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최근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반도체 등 첨단 전략산업 업종에서 “최소한 외국인 투자 수준 이상으로 지원을 확대, 해외에 진출한 우리나라 기업들의 국내 복귀를 적극 유도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올 상반기 해외에 진출했던 우리 기업 12개사가 국내로 ‘유턴’ 함으로써 8000억원 이상의 투자에 따른 고용창출 공급망 강화 등에 마중물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중국 등 선진국들의 자국 우선주의 확산 등에 따라 국제산업 생태계와 공급망이 재편되면서 기업들의 이같은 '유턴'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에따라 정부는 첨단·공급망 핵심 업종의 해외 사업장 축소 의무를 면제하고, 기존 국내 공장 유휴 공간에 설비 투자를 하는 경우에도 국내 복귀를 인정하는 등 제도 개선을 추진 중이다.

이와관련,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 경영환경이 급변해 해외사업장 유지에 대한 고민이 커지고 있다”면서 “예측가능하고 신뢰할 수 있는 유턴정책이 있어야 실질적인 선택지로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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