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배씨 등 대장동 일당으로부터 금융청탁의 댓가로 거액의 돈을 약속받고 8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두 번째 구속영장이 청구된 박영수 전 특검이 자신에 대한 수사여론이 거세지자 증거인멸을 위해 망치로 휴대전화를 깨부순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고 있다.

대검 중수부장과 고검장 등 검찰 최고위직 출신에, 박근혜 전 대통령 특별검사를 역임한 박 전 특검의 이같은 시정잡배(市井雜輩)와 같은 행동을 두고 검찰 주변, 법조계에서는 “법률가로서 최소한의 양심마저 저버린 행위”라는 비난이 쏟아져 나온다.

‘대장동 50억 클럽' 의혹을 수사중인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엄희준 부장검사)는 지난달 31일 박영수 전 특검에 대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수재,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두 번째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이같은 내용을 영장에 기재한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이 박 전 특검의 구속영장에 이런 사실을 기재한 것은 앞서 지난 6월에 청구한 구속영장이 법원에 의해 기각됨에 따라 이처럼 의도적 증거인멸 시도를 제시해 구속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박 전 특검이 휴대전화를 망치로 두드려 부순 시점을 2월중순 경으로 지목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을 중심으로 ‘50억 클럽 특검론’이 제기됐다. 특히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2월 16일 “50억 클럽 특검이 불가피하다”고 말한 바 있다.

검찰 수사결과, 박 전 특검은 이 무렵 측근인 양재식 전 특검보를 만나 2014년 대장동 민간업자 남욱씨에게서 받은 대한변협 회장 선거자금 등 향후 수사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사안과 대응 방안을 논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후 박 전 특검은 자신이 써왔던 휴대전화를 망치로 내려쳐 폐기하고 새 휴대전화를 개통했다는 것이다.

이와함께 검찰이 지난 3월 30일 박 전 특검과 주변에 대한 압수수색 과정에서도 양 전 특검보의 사무실 직원이 사용하던 노트북 컴퓨터가 며칠전 리셋됐고,사무실 자료도 정리된 사실을 확인했다.

박 전 특검의 휴대전화 폐기 사실이 알려지자 법조계, 특히 검찰 주변에서는 “사정수사의 사령탑, 비위척결의 상징적 역할을 해온 사람이 해서는 안 될부끄러운 행동”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고검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언젠가부터 검찰의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가 시작되면 쓰던 휴대전화를 한강에 던져 버리거나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부수는 등의 증거인멸 행위가 당연한 것처럼 언론에 나오고 있지만 상당수 교양있는 사람들은 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서 “박 전 특검의 행동은 검찰선배, 고위직 출신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시정잡배 같은 행동”이라고 말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박영수 전 특검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한 소위 ‘국정농단 사건’ 수사를 하면서 두 사람을 유죄로 몰았던 결정적인 증거가 된 ‘안종범 수첩’이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안종범 수첩’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청와대 경제수석이었던 안종범씨가 재직 중 박 전 대통령의 각종 지시사항과 대기업 인사들과의 만남 등을 정리한 메모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징역 22년형 및 이재용 회장의 구속수감에 결정적 자료, ‘스모킹 건“이 됐던 증거물이다.

하지만 박 전 특검을 비롯한 당시 특검팀이 안종범 전 수석의 자택 근처 쓰레기장에서 확보했다는 문제의 수첩이 실제로는 안 전 수석이 특검과의 ’플리바겐(형량협상)‘에 따라 자발적으로 제출했으며, 상당수 내용이 사후에 기록됐다는 의혹이 제기돼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이 때문에 박 전 대통령과 이재용 회장 재판과정에서 안종범 수첩의 증거능력을 놓고 특검과 변호인단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고, 이 회장의 재판에서는 증거능력을 상실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편 서울중앙지법 윤재남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3일 오전 박 전 특검의 두 번째 영장실질심사를 열었다. 지난 6월 30일 법원은 박 전 특검의 직무 해당성 여부, 금품의 실제 수수 여부, 금품제공 약속의 성립 여부 등에 관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검찰의 첫 구속영장을 기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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