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년 개띠들의 퇴장 시대를 맞아 셰익스피어의 다음과 같은 구절을 기억하고 싶다.

“죽음이 우리에게 찾아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 비밀스런 죽음의 집으로 달려간다면 그것은 죄일까?”

#. 부쩍 잦아진 ‘본인 상(喪)’ 부고

최근 들어 카톡을 통해 자주 ‘본인 상(喪)’ 부고를 접한다. 최근 들어 벌써 몇 번째 “아니 이 친구가…” 하고 놀라는 일을 자주 경험했다. 따지고 보면 58년 개띠들이 지공거사(지하철 공짜 표) 반열에 올랐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상인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에도 옛 친구의 ‘본인 상’ 부고를 접하면서 느낀 감정은 착잡했다. 아, 이제 나에게도 죽음이란 그저 먼 훗날에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 아니라, 가까이 다가와 있는 현실이로구나 하는 점을 벼락 맞듯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군 생활 도중 같은 배에 승선했던 동기의 죽음을 목격한 후 처음으로 죽음에 대한 화두에 깊이 침잠해 보았다.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니 뭐니 하는 개똥철학을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행위는 본인 의지가 아니니 어쩔 수 없다 치자. 그렇다면 이 세상을 떠날 때도 본인 의지나 선택이 아닌, 그저 자연의 섭리에 맡기는 것이 타당한 일일까?

풀리지 않는 의문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인간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인가, 아니면 영혼이 있어 다른 세계로 향하는가도 진지한 관심사 중의 하나였다. 이 화두가 종교와 연관되면 지옥이니 천당이니, 윤회설이니 환생이니 하는 복잡한 논리가 얽힌다. 이것은 종교 분야 영역이니 고민의 영역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현재의 나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답변은 “아직 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정도가 되지 않을까.

#. 노후 준비가 안 된 사람에게 장수는 축복일까, 저주일까?

통계청 인구 통계에 의하면 58년 개띠 출생 인구는 92만 17명이다. 건국 이래 처음으로 연간 신생아 90만 명을 돌파했지만, 연간 출생자 수로 보면 58년 개띠는 59년생 돼지띠(97만 9,267명), 60년생 쥐띠(100만 6,018명)보다 적다. 그 시절엔 출생 신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던 시대여서 실제 58년 출생자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되었다. 이를 수치로 확인해준 것이 1960년 인구 센서스였는데, 결과는 당시 2세였던 58년 개띠생이 101만 3,427명으로 집계되었다.

출생자 수에서 59년 돼지띠, 60년 쥐띠보다 밀린 58년 개띠가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의 상징이자, 한국 사회의 온갖 모순을 끌어안은 문제 집단으로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 사회 질풍노도의 시대를 이끈 58년 개띠는 태어나기도 많이 태어났지만, 이들이 죽음에 이를 때면 사망자 수도 급증할 것이다.
한국 사회 질풍노도의 시대를 이끈 58년 개띠는 태어나기도 많이 태어났지만, 이들이 죽음에 이를 때면 사망자 수도 급증할 것이다.

우선 58년 개띠 세대가 격변을 야기하며 사회 곳곳에 깊은 파열의 상처와 건강한 족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58년 개띠들은 지금도 국민교육헌장을 외고, 국기에 대한 맹세도 줄줄 암송하는 특이 집단이다.

거의 모두가 비슷하게 가난을 체험했고, 반공과 멸공을 부르짖었으며, 입시 대신 ‘뺑뺑이’로 상징되는 추첨을 통해 상급 학교에 진학한 세대다. 자고 일어나면 10월 유신, 긴급조치, 10.26, 12.12 같은 정변의 연속이었고, 덕분에 개념도 모르면서 민주화를 갈구했다. 자유니, 항쟁 용어에 익숙했고, 열심히 놀고먹고도 3저 호황에 따른 경제 대폭발의 음덕으로 대학 졸업반 때는 입도선매식으로 손쉽게 취업할 수 있었다.

한편에선 IMF·명퇴의 상징 세대이기도 했지만, 환갑을 넘긴 시점에서도 70만~80만 명의 거대 집단을 형성하여 “시장 변화를 주도하는 첨병” 소릴 듣기도 한다. 58년 개띠들의 퇴장은 경제적으로 어렵고, 정치적으로 권위주의적 시대가 막을 내린다는 의미인 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베이비붐으로 한순간 개떼처럼 우르르 태어난 세대였으니, 죽을 때도 동시다발적으로 죽게 되어 사망자 수 급증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아프지 말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조용히 살다가 천수를 누리며 안온한 죽음을 맞는 것이 모든 사람의 희망 사항이건만, 인생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든든한 노후생활 대책이 마련되어 있다면 다행이지만, 준비 없는 상태에서 은퇴하여 긴긴 세월 골골대다 거동이 부자연하게 되면 어쩔 것인가. 자식에게 기댈 형편도 못 되고,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다면, 이런 상황에서 장수는 축복인가 아니면 저주인가.

#. 가장 하찮은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

서양에서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를 가장 저질의 하찮은 인간으로 경멸한다고 한다. 특히 사회 지도층 인사일수록 그런 원칙은 엄격히 적용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생활철학으로 뿌리내린 선진국일수록 지도층은 국가와 사회, 자기가 속한 집단 외적의 침입이나 내부의 적들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목숨 바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필자가 그동안 봤던 서양 영화 중 가장 감명 깊었던 장면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킹덤 오브 헤븐’이다. 이 영화의 압권은 대장장이 출신 발리앙(올랜도 블룸)이 소수의 기병을 이끌고 살라흐 앗 딘(살라딘)의 대군을 향해 돌격하는 장면이다. 십자군이 전투를 준비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자기 삶을 희생하는 전사(戰士)의 용맹을 그 누가 ‘위대한 결단’이라 칭송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살라딘의 대군을 향해 죽음을 무릅쓰고 돌진하는 발리앙.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의 한 장면이다. 서양에서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를 가장 하찮은 인간으로 경멸한다.
살라딘의 대군을 향해 죽음을 무릅쓰고 돌격하는 발리앙.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의 한 장면이다. 서양에서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를 가장 하찮은 인간으로 경멸한다.

6·25 전쟁이 발발했을 때 중공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은 장남 마오안잉(毛遠仁)을 한국전에 투입했다. 마오쩌둥은 중국 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에게 자기 아들 마오안잉을 데려가라고 명했다. 다른 공산당 고위 간부들이 주석의 아들이 위험한 전선에 나가는 것을 우려하여 철회하라고 요청하자 마오는 “내 아들을 보내지 않으면 누가 자기 자식을 전쟁터에 내보낸단 말인가” 하고 출전을 강행했다.

마오안잉은 압록강을 건넌 지 약 한 달 만인 1950년 11월 25일, 평안북도 창성군(현 동창군) 대유동에서 미군 B-26 폭격기의 폭격을 받아 사망했다. 그의 나이 28세였다.

한국전쟁 중에 미국 상류층 아들 142명이 참전했는데, 그중에는 대통령 아들, 장관 가족, 현직 미8군 사령관 아들도 있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인 아들 존 아이젠하워 대위는 한국전에 참전하여 미 제3사단 대대장으로 근무했고, 워커 미 8군 사령관의 아들 샘 워커 대위는 한국전에서 맹활약하여 2등 은성무공훈장을 받았다.

밴 플리트 미8군 사령관과 그의 아들 밴 플리트 2세 중위. 밴 플리트 2세 중위는 한국전에 참전하여 야간 폭격작전 수행 도중 대공포에 맞아 포로가 되었다가 중공, 러시아 수용소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밴 플리트 미8군 사령관과 그의 아들 밴 플리트 2세 중위. 밴 플리트 2세 중위는 한국전에 참전하여 야간 폭격작전 수행 도중 대공포에 맞아 포로가 되었다가 중공, 러시아 수용소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밴 플리트 미8군 사령관의 아들 밴 플리트 2세 중위는 1952년 4월 B-17 폭격기를 조종하여 순천지역 야간 폭격 임무 수행 도중 실종되었다. 후에 그는 대공포에 맞아 격추되어 포로가 되었다가 중공과 러시아 포로수용소에서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마크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의 아들 마크 빌 클라크 소령은 금화 지구 저격능선 전투에서 부상당해 제대하게 되었는데, 그 후유증으로 제대 후 사망했다.

필드 해리스 미 해병 제1 항공사단장의 아들 윌리엄 해리스 중령,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 조지 패튼 장군의 아들 등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전사·실종·부상한 미군 장군의 아들이 37명이나 된다고 한다.

남의 나라 상류층 자제들은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다 명예롭게 전사하는 반대쪽에선 고위 공직자, 정치인, 상류층으로 올라갈수록 병역의 의무 이행률이 걷잡을 수 없이 낮아지는 불가사의한 나라가 한국이다. 사회 지도층일수록 자신의 목숨을 바쳐 공동체를 구하는 문화적 전통이 부재한 나라이기에, 쿠데타가 발생하면 수녀원으로 도주하거나, 전쟁 와중에 자기 자식 군대 빼내느라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다. 병역의 의무 따위는 천민·노비·상놈 집단이 알아서 때워주고 양반은 도포 자락 휘날리며 폼 잡는 것을 일상으로 여기는 양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불명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죽음을 의연히 받아들이는 교육, 삶과 죽음에 대한 가치관과 철학을 재정립하는 것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 살아 있음과 죽음의 경계

창세기(3장 19절)는 “너는 흙에서 난 몸이니 흙으로 돌아가기까지 이마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얻어먹으리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라고 말한다. 창세기가 아니더라도 58년 개띠들은 개발에 땀 나도록 뛴 덕분에 다행히 밥 굶어 영양실조로 죽은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인생이 마무리되면 인간은 모두 빈손으로 간다. 태어난 자는 예외없이 죽음을 맞으니 피할 방법도 없다. 따라서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처럼 “항상 죽을 각오를 하고 있는 사람만이 참으로 자유로운 인간”이라고 위안 삼고 의연하게 죽음을 준비할 때가 되었다.

문제는 죽음이 자연 현상에 의한 결과물이 아니면 법적 책임이 따르게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불치병에 걸려 어떤 치료 방법도 통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치자. 그가 매일 극한의 고통을 당해도 현행 법률 체계 하에선 자연적 결과로 죽음이 찾아오길 기다리는 방법 외엔 다른 선택 수단이 없다. 과연 이런 상태라면 삶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미 비포 유(me before you)’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빵빵한 가문에서 태어나 촉망받던 젊은 사업가 윌(샘 클라플린)이 자동차 사고로 하반신 마비 환자가 된다. 그는 6개월간 살아보고 삶과 죽음을 결정하기로 했고, 임시 간병인으로 루이자(에밀리아 클라크)가 취업하게 된다.

루이자는 윌에게 인생은 살아갈 가치가 있음을 깨닫게 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활동적이며 자존감 넘치는 윌은 평생 남의 도움의 의지해야 하는 구차한 삶을 포기하고 스위스로 날아가 조력자살을 택한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에야 스위스에 안락사 지원단체인 디그니타스(Dignitas), 페가소스, 라이프서클, 엑시트인터내셔널 등이 활동 중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자연적 죽음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섭리?

이후 필자는 깊은 고민 끝에 본격적으로 죽음을 준비하고 그에 대한 나름의 철학을 정립할 때가 왔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나의 결론은 ‘자유인답게 내 의지로 죽음을 선택한다’라는 것이다. 태어날 때는 개인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났지만, 죽는 순간만큼은 개인의 자유 의지로 선택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인 아닌가 하는 결론이었다.

탄생과 죽음이 섭리라고 하지만, 죽음이 자연적으로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만이 올바른 가치관일까?
탄생과 죽음이 섭리라고 하지만, 죽음이 자연적으로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만이 올바른 가치관일까?

그 결과를 몇 주 전 세미나를 마치고 지인들과 저녁 모임에서 화두로 던졌다.

“그동안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하고, 나름대로 성실 근면하게 살아왔다. 앞으로 어느 정도나 더 멋지게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여한이 없이 살 만큼 살았다고 치자. 자식들도 장성하여 사회인으로 활동하고 있고, 더 이상 삶의 의미를 찾기 어려울 만큼 심신이 쇠약하고 고단해지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그런 상태에서 죽음이 찾아올 때까지 세월을 때우는 것이 합리적인가, 아니면 스스로의 의지로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가 원하는 시기를 택해 품위 있게 삶을 마감하는 것이 합리적인가. 이제는 전향적 입장에서 개인에게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부여하는 것(즉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안락사를 허용하는 것)이 국가의 도리 아닌가.”

이러한 도발적인 제안에 대부분이 동의했다. 한술 더 떠 한 인사는 떠나기 전에 친한 친구들을 초대하여 품위 있는 파티를 한 후 친구들의 송별을 받으며 삶을 마감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그렇게 되면 현행법상 자살방조죄나 자살교사죄, 혹은 촉탁승낙살인죄로 처벌의 대상이 된다”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 비밀스러운 문을 열 준비를 해야

해외에서 적극적 안락사 제도가 도입된 나라가 늘고 있다. 1990년대 미국의 의사 잭 케보키언은 130여 건의 안락사를 도운 혐의로 기소되어 8년간 복역한 바 있다. 그의 활동을 둘러싸고 적극적 안락사 합법화 논의가 시작되었다.

적극적 안락사를 합법화하는 나라들이 늘고 있다. 한국은 소생이 불가능한 환자에 대해 의미 없는 치료의 중단을 허용하는 존엄사 정도만이 허용되어 있다. 때문에 자신의 삶을 스스로의 의지로 마감하기 위해 스위스를 찾는 한국인이 늘고 있는 실정이다.
적극적 안락사를 합법화하는 나라들이 늘고 있다. 한국은 소생이 불가능한 환자에 대해 의미 없는 치료의 중단을 허용하는 존엄사 정도만이 허용되어 있다. 때문에 자신의 삶을 스스로의 의지로 마감하기 위해 스위스를 찾는 한국인이 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적극적 안락사가 합법화된 나라는 호주의 노던 준주(Northern Territory), 네덜란드, 벨기에, 뉴질랜드, 포르투갈, 캐나다 등이다. 나무위키에 의하면 2021년 3~4월 서울대병원의 여론조사 결과 76%가 조력자살 허용에 찬성했다. 한국에서 현재 법적으로 허용된 것은 소생이 불가능한 환자에 대해 의학적으로 더 이상 의미가 없는 치료의 중단을 의미하는 존엄사 정도다.

이처럼 법체계가 미비한 상황이니 적극적 안락사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고 그것이 허용되는 나라로 날아가 품위 있는 죽음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23년 3월, 스위스의 한 조력 사망 단체 가입자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 4명이 조력 사망했고 117명이 현재 대기 중이라고 한다. 이는 일본(50명), 대만(49명), 중국(58명)의 2배 수준으로,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많고, 전체 97개국 중에서 11번째라고 한다.

국내 한 언론이 최근 외국인의 조력 사망을 돕는 스위스 단체를 취재한 결과 디그니타스에서 5명, 페가소스에서 4명, 라이프서클에서 1명의 한국인이 각 단체의 도움을 받아 품위 있는 죽음을 택했다고 한다. 58년 개띠들의 퇴장 시대를 맞아 마지막으로 셰익스피어의 다음과 같은 구절을 기억하고 싶다.

“죽음이 우리에게 찾아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 비밀스런 죽음의 집으로 달려간다면 그것은 죄일까?”

김용삼 대기자 dragon00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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