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은 '모두의 번영' 위한 학문...약자보호·분배중시 특정해선 안돼
韓경제발전책 '닥치고 반대'했던 진보경제학자들...정책사고 '단선적'
한미FTA반대에 대한 자기성찰 '1도' 없어...'무오류의 함정' 빠졌나
'비교우위론' 이해없는 좌파경제학자들, 文정권 최악의 '소득주도성장' 주역

조동근 객원 칼럼니스트

 

  한국 사회에서 ‘진보경제학’ 또는 ‘진보경제학자’라는 작명(naming)은 정명(正名)이 아닌 편의적으로 붙여진 자기 수식어이다. 그들은 “거대 정치권력·경제권력과 맞서 싸우면서 약자와 동행하는 따뜻하고 선한 경제학으로 무장한 실천가 그룹”으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했다. 대중이 반길만한 ‘진보’라는 좋은 단어’를 선점한 것이다. 한편으론 마샬(A. Marshall)이 경제학의 속성으로 설파한 ‘냉철한 머리와 따듯한 가슴’을 오독한 결과일 수 있다. 따듯한 가슴은 빈곤으로부터의 벗어남을 뜻하는 ‘보편적 인류애’를 의미하는 것으로 ‘약자보호’ 내지 ‘분배중시’로 특정해서는 안된다. 경제학은 ‘모두의 번영’(prosperity for all)을 위한 학문으로 편가르기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된다.   

O 고속도로 건설을 반대한 원로진보학자들  
 우리나라 유력 정치인, 김영삼 김대중 전(前)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반대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고속도로를 다닐 자동차도 없는데, 일부 부유층의 유람을 위해 논밭을 갈아엎어 고속도로를 만드는 게 말이 되냐”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인이 아닌 ‘진보경제학자’들에 의한 고속도로 건설 반대는 층위가 다른 문제이다.    
 언필칭(言必稱) 진보경제학자들은 경부고속도로는 물론 포항제철, 석유화학단지, 중화학공업 등 모든 것에 ‘닥치고 반대’로 일관했다. 그들은 공업보다 농업, 수출보다 수입 대체를 이뤄야 ‘외국 거대 자본의 착취’를 피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만큼 정책사고가 단선적이다. 문을 걸어 잠그면 착취라는 ‘여우’는 피할 수 있겠지만 절대빈곤이라는 ‘호랑이’는 피할 수 없다.

 한국은 시간을 단축하는 압축성장 과정에서 중복·과잉투자라는 일부 시행착오를 범했지만 구조조정을 통해 이를 극복하고 중화학공업 육성에 성공함으로써 1980년대 말에는 명실공히 ‘신흥개발도상국’의 지위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이른바 ‘아시아 4마리 용’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매판자본, 종속, 불평등’의 부정적 인식과 굴절된 시각으로 한국이 이룬 성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매판자본주의 체제에서 토종기업은 외국자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그 대가로 이윤을 얻는다는 게 진보경제학자들의 기막힌 주장이다. 1970~1980년대에 외채망국론이 끊이지 않았던 것도 매판자본론과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자본의 국적’을 따지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흑묘백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투자기회를 포착하는 ‘선별안’이 중요한 것이다.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한 선도 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한편으론 ‘3저 호황’에 힘입어 무역수지 흑자가 실현되면서 ‘매판자본론’은 기세가 꺾였다.  

O 한·미 FTA마저 반대한 진보좌파 

 이들의 닫힌 세계관은 ‘한·미 FTA 결사반대’로 이어졌다. 진보경제학자 그룹에 의해 추동된 한·미 FTA 반대 운동은 ‘비이성적 맹목’ 그 자체였다. 2006년 3월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가 출범했고, 출범선언문은 한·미 FTA를 ‘제2의 한일합방’, ‘제2의 IMF 사태’, ‘한국사회 파괴 프로그램’으로 규정지었다. 우여곡절 끝에 2012년 3월 한·미 FTA 협정이 발효됐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불평등 조약이라는 이유로 ‘재협상’을 요구한 쪽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1년여의 재협상 끝에 2018년 9월 한·미 FTA 개정안이 서명됐다. 자동차 등에서 한국이 미국에 추가 양보하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한·미FTA를 결사반대했던 진보경제학자 그룹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계급적 시각에 경도된 이념 과잉, 식견 부재 그리고 음모론에 휘둘린 자신들의 과거 주장에 대한 자기 성찰은 그야말로 ‘1도’ 없다. 잘못이 확인됐음에도 사상적·학문적 궤도수정을 거부한다. ‘무오류의 함정’에 빠졌다고밖에 볼 수 없다. 진보를 위해서는 자기 성찰과 혁신이 필요한데 전혀 그렇지 않다.  

O 경제의 빅뱅을 일으킨 비교우위이론 
 
 아인쉬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과학의 폭발을 불러온 것처럼,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으로 세계 경제가 ‘팽창과 폭발’을 시작했다. ‘절대 우위론’은 직관적이라 이해가 쉽다. 두 나라가 자신이 잘 만드는 재화를 생산해 다른 나라와 교역을 하면 두 나라 공히 ‘무역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한 나라가 두 재화 모두 잘 만든다’면 얘기는 더 이상 진전되지 않는다. 여기에 숨통을 틔운 것이 ‘비교우위론’이다. 

 절대우위론의 세계에서 보면 교역은 ‘강대국에는 이익이지만 약소국엔 손해’가 된다. 그렇다면 약소국은 자신의 국익을 위해 문을 닫아야 하고 자급자족해야 했다. 수입대체산업을 키우는 것이 그나마 강대국의 착취를 피하는 최선의 길이다. 

 비교우위론은 ‘빅뱅’이다. 상대국에 비해 ‘절대 열위’라 하더라도 비교우위 관점에서 교역 가능한 재화가 ‘늘’ 존재한다는 ‘반전’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미남배우를 제치고 성격배우가 역할을 갖는 것도 모두 ‘비교우위론’으로 설명가능하다. 박정희 대통령의 ‘수출입국론’도 비교우위이론을 정치적으로 수용한 결과이다. 

 원로 진보좌파경제학자들이 외친 ‘민족경제론’은 ‘비교우위론’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 소치이다. 비교우위론에 입각해 경공업 제품을 생산해 수출한들 강대국의 주변국밖에 더 되겠냐고 주장할 것이다. 상대성 이론에서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이지 않듯이’ 비교우위는 시간과 공간에 따라 변한다. 비교우위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만들어지는 것이다. ‘비교우위’는 ‘경쟁우위’(competitive advantage)로 진화한다. 시장의 역동성이 이 같은 진화를 촉진시킨다. 합판과 신발에서 섬유, 화학, 기계, 자동차, 반도체, 2차전지로 판을 바꾼 것은 비교우위론을 동태적으로 해석·적용한 결과이다. 

 좌파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교수조차 “아주 똑똑한 사람인데도 조금만 얘기를 나눠보면 그가 비교우위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금방 깨닫게 된다”고 통탄한 적이 있다. 
 
 진보경제학자들 주장대로 고속도로를 만들지 않았으면 어떤 결과가 빚어졌을까. 고속도로를 ‘무리해서’ 만들었지만 그 덕분에 고속도로를 질주할 자동차가 ‘서서히’ 만들어진 것이다. 한국경제가 여기까지 발전을 이어온 것은 ‘진보경제학자의 태클’을 피하고 이를 이겨냈기 때문이다.

O 원로 진보좌파학자 후예의 최악의 작품: 소득주도성장

 진보경제학의 숙주는 진보정치권이다. 진보학자들은 좌파 논리를 제공해 진보정치권을 강화시켰다. 쿤(T. Kuhn)의 관점으로 보면 ‘패러다임의 자기강화’ 과정이다. 하지만 모순이 쌓이면 패러다임은 붕괴된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이 이를 웅변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은 좌파정권을 숙주로 한 원로 진보경제학자 후예들의 작품이다. 결과는 처참한 실패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8월 문정부 초대 황수경 통계청장을 경질했다. 황수경 통계청장 경질의 ‘불편한 진실’은 잘 알려진 대로다. 2018년 2분기 월평균 소득이 2017년 2분기에 비해 저소득층에서 줄고 도리어 고소득층에서 크게 증가했다. 특히 소득 1분위(하위 20% 소득계층)는 전년 동기 대비 7.6% 줄고, 소득 5분위(상위 20% 소득계층)는 10.3% 증가했다.

 문재인 정부에 ‘2018년 2분기’ 성적표는 각별한 의미가 있다. 2017년 5월에 출범한 문재인정부는 2개의 ‘버킷 리스트’를 갖고 있었다. 하나는 ‘법인세 인상’이고 다른 하나는 소득주도성장의 발판으로 인식된 ‘최저임금 인상’이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말까지 2가지 정책과제를 달성했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20%에서 25%로 인상했고 최저임금도 16.7% 인상했다. 경제에 날개를 달아주었지만, 결과는 참혹한 실패였다.   

  통계청 발표가 나온 뒤 1주일 후 문재인 대통령은 “통계를 보면 저임금 근로자 쪽의 임금이 크게 늘었다. 이는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 증가의 긍정적 성과이다”라고 발언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 타당하려면 ‘고용이 유지된다’는 조건이 총족돼야 한다. 2018년 2/4분기에 최저임금 인상은 1분위 소득계층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그들은 있는 일자리마저 잃었다. 반면 실직 위험이 높지 않은 정규직의 경우, 최저임금 인상은 바로 임금인상과 소득증가로 이어진다. 최저임금인상은 비정규직, 노령층 근로자의 잠재적 희생 위에서 정규직과 장년층의 보상을 극대화시켰다. 

  케인즈는 『일반이론』에서 “그 어떤 지적인 영향으로부터도 온전히 벗어나 있다고 믿는 이들도 대개는 죽은 어떤 경제학자의 노예”라고 설파했다. 자칭 진보경제학자들의 ‘경제를 보는 눈’과 ‘경세제민의 처방’이 폐쇄적이고 발전 친화적이지 않았기에, 그들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사회에 정신적·사상적 맹독(猛毒)을 뿌렸다’고 봐야 한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추락은 절정에서 잉태되며, 방아쇠는 언제나 내부의 적들에 의해 격발된다. 슘페터도 번영이 자본주의의 최대의 적(敵)이라고 설파했다. 천신만고 끝에 쟁취한 경제 기적의 역사를 계속 써 내려가려면 엇박자로 일관해 온 진보경제학자의 행로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공유해야 한다. 혹여 젊은이들이 ‘민족, 자주, 민주’라는 폐쇄된 미로에 갇혔다면, ‘자유시장경제’라는 열린 공간으로 나오도록 도와줘야 한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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