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신형 발사체와 김정은 (PG). (사진=연합뉴스)
북한 신형 발사체와 김정은 (PG). (사진=연합뉴스)

핵세계에는 바람 잘 날이 없다. 우크라이나에서 고전 중인 러시아는 잊을만하면 ‘핵사용’을 위협한다. 북한은 2013년 ‘핵보유법’과 2022년 ‘핵무력정책법’ 그리고 최고 지도자의 연설이나 담화를 통해 ‘대남 핵사용’을 반복적으로 위협하고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 1874호를 위배하면서 미사일 발사를 계속하고 있다. 그럼에도 2017년 이후 안보리의 추가적인 대북제재 결의는 번번이 중·러의 거부권에 가로막히고 있다. 안보리가 사실상 무력화된 것이다.

중동에서는 이란이 폭탄급 고농축 우라늄 생산 의지를 굽히지 않음에 따라 이스라엘이 긴장하고 있으며 사우디아라비아는 농축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국제 안보질서 유지에 막중한 책임을 진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이 ‘신 악의 축(new axis of evil)’이 되어 솔선수범(?)하여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시도하고 자신들이 서명한 안보리 결의를 무력화시키는 한심한 현상도 이어지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유엔 무용론’이 확산되고 ‘유엔 재편’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음은 당연한 귀결이다.

특히 북한은 작년의 제77차 유엔총회에 이어 지난 9월 26일 제78차 총회에서도 “한·미의 침략적 합동 군사훈련 때문에 조선반도가 핵전쟁 위기에 처했다”라는 적반하장식 주장을 외쳤고,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안보리 결의 1718호 및 2270호를 비웃으면서 러시아와의 무기 거래를 위해 협상에 나서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 북한의 ‘전술핵 공격잠수함’이라는 또 하나의 핵 이슈와 마주쳤다. 그래서 한국에게는 국산 핵추진 잠수함을 등장시키는 문제에 있어 더 이상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지금 국민은 “우리의 핵잠수함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외치고 있다.

미국 전략핵잠수함(SSBN).2023.04.26(사진=연합뉴스)
미국 전략핵잠수함(SSBN).2023.04.26(사진=연합뉴스)

무서운 핵미사일을 장착한 허접한 잠수함

지난 9월 6일 북한이 선보인 ‘김군옥영웅함’은 구형 디젤 잠수함인 로미오급(1,800톤) 잠수함을 기본으로 자르고 덧대어 무리하게 10개의 수직발사관을 설치한 괴상한 잠수함이다. 그래서 등어리가 불룩 튀어나온 ‘괴물 물고기’의 형상을 하고 있다. 서방 분석가들은 이 잠수함이 정상 항행을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이 괴물 잠수함은 태어나면서부터 ‘프랑켄슈타인’이란 별명을 얻었다. 프랑켄슈타인은 여러 시체로부터 장기들을 뜯어내어 만든 소설 속의 인조인간이다. 그럼에도 한국은 이 잠수함의 ‘외형적 허접함’만을 보고 위협을 평가절하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처지에 있다. 북한의 주장대로 이 잠수함이 전술핵을 싣고 다닌다면 한국에게 심각한 위협이 됨은 물론 동아시아의 해양질서에도 커다란 불안정 요인으로 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 9월 13일 김정은-푸틴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이 러시아에 우크라이나 전쟁에 쓰일 재래무기와 탄약을 제공하는 대가로 러시아가 북한에게 핵추진 잠수함, 대륙간탄도탄(ICBM), 전투기 및 함정 등의 생산을 위한 군사기술 제공을 약속했을 개연성이 높다. 즉, 머지않아 인공기를 단 핵추진 잠수함이 핵미사일들을 싣고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북한의 ‘갑질’이 더욱 극심해질 것이고 한국의 안보 시름은 깊어질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감에도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계획은 수십 년째 ‘NATO(no action talk only)’에 머물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 의혹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던 1990년 전후부터 군사 전문가들 사이에는 제2격(2nd strike)용 또는 헌터킬러(hunt-killer)용 핵잠의 필요성이 거론되었지만,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거론만 되고 있을 뿐이다. 제2격이란 적의 공격에 대한 응징보복을 말하며, 은밀성과 생존성이 강력한 잠수함에 제2격 수단을 장착하여 운영하는 것이 상대의 공격 자체를 억제하는 효과가 가장 크다는 것은 억제전략의 정론이다. 헌터킬러 잠수함이란 상대방 잠수함들의 행적을 탐지·추적하여 필요시 격파함으로써 미연에 위험을 제거하는 잠수함이다.

미국은 최대 240개의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오하이오급(18,000톤) 잠수함들을 제2격용으로 그리고 로스앤젤레스급(7,000톤)과 버지니아급(8,000톤)을 헌터킬러로 사용하고 있다. 영국은 뱅가드급(16,000톤) SSBN 4척을 제2격용으로 운용하다가 아스튜트급(7,400톤) 7척 체제로 전환 중이며, 프랑스도 르 트리옹팡급(14,000톤) 4척 체제를 쉬프랑급(5,300톤) 6척 체제로 전환 중이다. 제2격용이든 헌터킬러용이든 또는 겸용이든 고도의 잠항력과 속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들은 모두 핵추진 엔진을 사용한다.

북한의 잇따른 핵실험과 탄도 미사일 시험 발사 등으로 한반도 안보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미국의 핵탄도미사일 발사 전략 핵잠수함(SSBN)이 거의 30년 만에 처음으로 태평양 상의 전략 섬 괌에 입항했다.2016.11.(사진=연합뉴스)
북한의 잇따른 핵실험과 탄도 미사일 시험 발사 등으로 한반도 안보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미국의 핵탄도미사일 발사 전략 핵잠수함(SSBN)이 거의 30년 만에 처음으로 태평양 상의 전략 섬 괌에 입항했다.2016.11.(사진=연합뉴스)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이제 결론을 내려야

그럼에도 한국의 핵잠 이야기에는 아직까지 결론이 없다. 물론, 디젤엔진 잠수함 분야에서의 발전은 괄목할만하다. 한국은 ‘한국형 잠수함(KSS) 사업’을 위해 1987년부터 ‘장보고-1,2 프로젝트’를 통해 장보고급(1,200톤 SS-I) 9척과 손원일급(1,800톤 SS-II) 9척을 건조하여 운용 중이며, 현재는 3천톤급 이상의 도산안창호급(SS-III)을 건조하는 장보고-3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장보고-3 프로젝트는 배치(batch)-1,2,3으로 나누어 지며, 각 배치마다 3척 씩이 건조된다. 현재 배치 1에 해당하는 3척은 이미 진수되어 2척은 운용 중이며 나머지 한 척도 조만간 해군에 인계된다. 그동안 배치-3에 해당하는 3척을 핵추진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이 각계에서 제기되었지만 정부와 해군은 확실한 방침을 발표하지 않고 있는데, 핵추진 엔진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농축활동을 제약하고 있는 ‘한미원자력협력협정’이 개정되어야 한다.

사실 핵보유 북한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핵무기를 탑재하지 않는 핵추진 잠수함을 만들더라도 ‘팥소 없는 찐빵’이나 ‘속 없는 만두’와 같아서 한국 전략가들의 욕구에는 턱없이 못 미친다. 하지만, 핵무장 문제를 제쳐두더라도 한국은 가시화되고 있는 북한의 해저위협은 물론 궁극적으로 중국의 위협에도 대처하기 위해 어차피 핵추진 잠수함을 가져야 한다. 즉, 그게 한국이 어차피 가야 하는 길이다. 요컨대, 핵무장 핵추진 잠수함(SSBN)도 아닌 단순한 핵추진 잠수함(SSN)을 건조하는 문제를 두고 더 이상 머뭇거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 문제를 풀어가는 출발점은 정부가 의지를 바탕으로 미국과의 전략대화를 통해 한미 원자력협정의 개정·대체하는 것이다. 미국은 현재 신냉전의 상대편인 전체주의 세력(axis of tyrannies)의 거센 해양 도전에 대처하기 위해 오하이오급을 대체할 컬럼비아급 SSBN을 건조하고 있으며, 로스앤젤레스급 및 버지니아급을 대체할 후속 SSN 개발에도 착수한 상태다. 이와 함께 미국·영국·호주 3자 안보파트너십(AUKUS·오커스)을 통해 호주의 핵잠 보유 및 건조에 협력한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호주는 잠수함 건조 인프라 부족, 재정 능력, 노조의 반핵운동, 2022년 5월 집권한 노동당 정부의 친중(親中) 성향 등 다양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따라서 우선은 미국이 우세한 건조 인프라를 갖춘데다 헌터킬러 잠수함이 시급한 한국과의 잠수함 공조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공감해야 한다. 한국도 그렇다.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운용하기 위해서는 건조 능력과 자금력 외에도 잠수함 운용 노하우, 승조원 훈련, 핵폐기물 처리 능력 등이 요구되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동맹의 협력이 필요하다.

올해 시작될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에서 미국이 북한 핵문제 해결의 진전이 있을 경우 비확산을 보장하는 엄격한 조건하에서 한국의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재활용)을 허용할 수 있다는 내용의 미국 핵전문가가 작성한 미 행정부의 입장 분석 보고서. 2010.1.13(사진=연합뉴스)
올해 시작될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에서 미국이 북한 핵문제 해결의 진전이 있을 경우 비확산을 보장하는 엄격한 조건하에서 한국의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재활용)을 허용할 수 있다는 내용의 미국 핵전문가가 작성한 미 행정부의 입장 분석 보고서. 2010.1.13(사진=연합뉴스)

한미 원자력협력협정 개정 서둘러야

한·미는 이런 공감대를 토대로 한미원자력협력협정을 개정함으로써 한국의 핵추진 엔진 생산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거해야 한다. 미국은 1988년에 ‘포괄적 동의’를 통해 일본의 농축·재처리 권리를 인정했다. 그 결과, 일본은 아오모리(靑森)현에 세계적 규모의 농축·재처리 시설을 건설했고, 우라늄 농축이나 플루토늄 비축에 제약을 받지 않는다. 그런데도 미국이 35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국에게 이중 기준을 적용하여 농축·재처리에 족쇄를 채우고 있는 것은 ‘4·26 워싱턴선언’은 물론 한·미·일의 정상들이 만나 3국 간 안보공조를 다짐한 ‘8·18 캠프데이비드 회담’의 정신과도 상충한다.

워싱턴선언에 의거하여 지난 7월 18일 출범한 한미 핵협의그룹(NCG)은 이런 일을 해내는 기구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미국이 한국의 핵무장도 아닌 농축·재처리조차 선뜻 합의해주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의 정치적 불안정성과 좌경화 가능성 때문일 것이다. 미국이 한국을 외면하고 호주와의 핵잠 공조를 우선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나 한·미·일 3국 간 안보공조에 그토록 집착하면서도 한국에게만 차별적인 기준을 적용해온 것에는 그런 속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독도 문제에 있어 쉽사리 한국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던 내면에도 비슷한 이유가 작용했을 수 있다. 그래서 답답하다. 어쨌든 국민은 태극기를 단 국산 SSN의 출현을 보고싶어 한다.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김태우 /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 전 통일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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