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44세의 스트리트파이터V 대한민국 국가대표 김관우의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은 인구통계학적으로 의미있는 사건이다. 젊음이라는 신체적 조건이 1차적인 승부처가 되는 스포츠 종목에서 40대가 20대 청년들과 대결해 최종 승리를 거뒀기 때문이다.

44세의 김관우 e스포츠 국가대표팀 선수가 28일 중국 항저우 e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AG) 스트리트파이터V 결승전에서 대만의 샹 위린을 세트 점수 4-3으로 물리치고 금메달을 획득한 뒤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서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44세의 김관우 e스포츠 국가대표팀 선수가 28일 중국 항저우 e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AG) 스트리트파이터V 결승전에서 대만의 샹 위린을 세트 점수 4-3으로 물리치고 금메달을 획득한 뒤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서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30세대를 청년으로 분류하는 현재의 관행적 세대 구별법이 변화의 요구에 직면한 것이다. ‘40대 청년론’을 생물학적으로 증명한 사건이 김관우의 금메달 획득이라는 분석을 낳고 있다.

44세 늦깎이 김관우, 항저우 아시안게임 e스포츠 종목서 금메달 따는 파란 연출

김관우가 지난 27일 중국 항저우 e스포츠 센터에서 열린 제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 최종 결승전에 올랐을 때 다수 언론들은 ‘예상치 못했던 은메달 확보’라고 평가했다. 금메달 가능성에 주목한 보도는 드물었다. 고령의 선수인 만큼 ‘은메달’에 그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작용한 셈이다.

다른 체육 종목도 그렇지만 e스포츠도 순발력과 순간 집중력이 승패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로 꼽힌다. 나이를 먹을수록 우승 확률이 현저하게 떨어지기 마련이다.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처음으로 공식 종목으로 채택된 e스포츠 종목에서 금메달 후보로 기대되던 우리나라 선수들은 전원이 20대였다. 김관우는 애당초 리스트에 없었다. 10대 후반과 20대가 주름잡는 e스포츠 종목에서 40대는 오래 전에 은퇴해야 할 세대이다.

김관우보다 1살 어린 ‘e스포츠 황제’ 임요환은 11년 전 현역에서 은퇴

국내 e스포츠의 황제로 불렸던 임요환 선수가 11년전 프로 게이머에서 공식은퇴한 것은 대조적이다. 최근에는 프로 포커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탁월한 순발력과 승부 근성으로 프로게이머를 직업의 반열 위에 올려놓은 임요환도 오는 세월을 막지는 못한 것이다. 임요환은 1980년생으로 올해 43세이다. 1979년 생인 김관우는 임요환보다 1살 많다.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인 임요환은 ‘황제(皇帝)’라고 불릴 정도로 e스포츠의 개척자였다. 하지만 30대 초반 현역에서 은퇴했다.

2006년 10월 9일 공군에 입대하기 전부터 30대에도 현역 프로게이머로 활약하겠다고 공언했었다. 실제로 2008년 12월 21일 제대 후, SK텔레콤 T1으로 복귀했다. 당시 나이 28세였다. 하지만 2010년 6월 SK텔레콤 T1과의 계약을 끝냈다. 정확하게 30세였다. 그는 2012년 1월 26일부터 프로게이머에서 완전히 은퇴하고 플레잉 감독으로 전환했다. 결국 30대 프로게이머 시대를 열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셈이다.

준결승전에서 역전승 거둔 김관우, 청년의 특징인 순발력과 순간 집중력을 발휘

따라서 44세의 고령 선수가 아시안게임 은메달을 확보한 것만 해도 e스포츠 역사의 기적으로 기록될만했다. 그러나 김관우는 최종 결승전에서도 이변을 일으켰다. 28일(현지시간) 중국 항저우 e스포츠센터에서 열린 스트리트파이터V 결승전에서 김관우는 대만의 샹 위린을 꺾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스트리트파이터V 부문 초대 챔피언이 된 것이다.

김관우는 27일 스트리트파이터 승자조 결승전 경기에서 대만의 린 리웨이를 이길 때 ‘역전승’을 거뒀다. 40대가 30대 청년을 압도하는 승부근성을 발휘할 수 있음을 알려 2:1 역전승을 거두고 최종 결승전에 올랐다. 김관우의 활약으로 대한민국은 최소 은메달을 확보하게 되었다.

김관우는 1세트에서 린 리웨이의 파상 공세를 막아내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2세트에서 자신감을 얻은 상대방이 승기를 굳히기 위해 큰 기술을 사용하자 오히려 빈틈을 찾아 역공을 폄으로써 소중한 승리를 얻어냈다.

승부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3세트에서 린 리웨이가 또 다시 1세트와 비슷한 방식으로 파상공세를 벌였지만, 김관우는 흔들리지 않고 공격의 맥을 끊어내면서 승리를 굳혔다. 김관우의 최종 결승전 상대는 패자조 결승 경기에서 린 리웨이를 이긴 대만의 샹 위린으로 결정됐으나 샹 위린은 김관우에게 패배했다.

김관우는 힘든 상황에서도 끝까지 자신에게 집중했고, 결국 대역전을 해냈다. 힘든 상황 속에서 빛이 되어준 건 심리상담사의 조언이었다. 김관우는 역전의 비결로 ‘집중력’을 꼽았다. “상황이 안 좋았지만, 게임이 끝난 건 아니었다. 심리상담사분께서 항상 ‘이미 지나간 것은 지나간 거다. 지금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에 최대한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에 최대한 집중했다”는 설명이다.

‘격겜 고인물’, 노후 대비에 나설 나이에 20대 청년들과의 대결을 선택

김관우는 e스포츠계에서 ‘격겜 고인물(격투기 게임에서 오래 즐긴 고수)’로 불린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게임을 즐겼지만 대학 졸업 후에는 게임 회사 개발자로 취직했다. 개발자로 일하면서 선수 생활도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새로운 삶을 고민했다.

마침내 41세가 되던 3년 전에 회사를 그만두고 ‘제 2의 인생’을 선택했다. 어린 시절부터 즐거움의 원천이었던 게임 관련 전문 스트리머로 전업했다. 남들은 생활의 안정과 노후 대비에 본격적으로 신경을 쓰기 시작할 나이에 20대 청년들과 대결해야 하는 e스포츠를 직업으로 삼은 것이다.

e스포츠 종목 중 당초 유력한 한국의 금메달 획득 기대 종목은 ‘리그 오브 레전드(LoL)’ ‘FC온라인’이었다. 세계 정상급으로 꼽히는 20대 한국 선수들이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29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e스포츠 센터에서 열린 제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 e스포츠 리그 오브 레전드(LoL) 결승에서 한국 선수들과 김정균 감독이 대만과의 2세트를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전원 20대이다. [사진=연합뉴스]
29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e스포츠 센터에서 열린 제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 e스포츠 리그 오브 레전드(LoL) 결승에서 한국 선수들과 김정균 감독이 대만과의 2세트를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전원 20대이다. [사진=연합뉴스]

LoL 우승을 이끈 정지훈, 이상혁 등 6명은 병역특례 받는 20대 청년들

29일 리그 오브 레전드(LoL) 결승에서 한국 국가 대표팀 선수들은 대만팀을 세트 점수 2-0으로 누르고 승리했다.

한국은 8강전, 4강전에 이어 결승전에도 미드 라이너로 주장 '페이커' 이상혁(27·T1) 대신 '쵸비' 정지훈(22·젠지)을 기용했다. 이상혁은 리그 오브 레전드 게임의 글로벌 1위로 평가받는 선수이다. 하지만 항저우 아시안게임 기간 중 감기 몸살 등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아 어린 후배인 정지훈에게 중책을 맡겼고, 그 선택은 주효했다. FC 온라인 종목의 곽준혁(KT롤스터)이 동메달을 따냈다.

따라서 리그 오브 레전드에 출전한 이상혁, 정지훈 등 6명의 국가 대표팀 선수들은 국내 프로게이머로서는 최초로 병역특례 혜택을 받게 됐다. 병역법 시행령에 따르면 올림픽 금·은·동메달,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자는 예술체육요원으로 편입된다. 예술체육요원은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을 수행한 뒤에 34개월간 544시간의 체육 분야 봉사활동 의무를 수행하면서 선수 생활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한 대체복무 제도다.

물론 김관우는 이미 병역을 마쳤기 때문에 혜택이 필요없다. 리그 오브 레전드 우승을 이끈 정지훈은 김관우보다 22살이 어리고, 이상혁도 17살이 젊다.

김관우 금메달 획득을 도운 선수들은 전국에 산재한 ‘재야의 고수들’

사실 스트리트파이터V에선 한국의 금메달을 예상하지 못했다. 기업이나 기관이 적극적으로 육성한 선수가 없었다. 김관우는 아시안게임을 앞두고는 합숙 훈련을 하면서 하루 최대 10시간 동안 게임에 몰두했는데, 스파링 파트너는 자발적 지원자들이었다. 전국에 산재해 있는 스트리트파이터 ‘재야의 고수들’이 합숙소를 찾아와 모여 그의 훈련을 도왔다.

김관우는 “스트리트파이터 최신작을 즐기던 분들도 스트리트파이터V를 따로 연습해서 나를 도왔다. 그분들이 없었다면 나는 절대 이런 성과를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관우는 1987년 출시된 스트리트파이터Ⅰ에서 시작해, 1991년 출시된 스트리트파이터Ⅱ부터 게임에 빠져든 것으로 전해진다. 오락실에서 50원짜리 동전 넣고 게임하다가 요금이 100원으로 올랐을 때가 게임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한다.

김관우는 29일 중국 항저우의 한 호텔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 기자회견에서도 압도적으로 돋보인 화제의 인물이었다.

그는 “게임을 할 때 혼냈던 어른 중에 축하 인사를 해 온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게임할 때 혼내셨던 어른은 저희 엄마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아직도 이런 걸(e스포츠) 잘 모른다”면서 “다른 분이 알려줘서 ‘아들이 금메달 땄다’는 걸 아시게 됐다. 그리고서 어머니가 약간 어설프게 친 것 같은 문자로 ‘아들, 나 너무 좋다. 기쁘다’고 해주셨다”고 말했다. 순간 눈물을 왈칵 쏟았다.

“2026년 아시안게임뿐만 아니라 뇌 노화가 시작되다는 60~70대까지 하고 싶어”

김관우는 금메달 시상식 직후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소감을 묻는 질문에 “게임 왜 하겠습니까? 재미있으려고 하는 것이다”면서 “2026년 아시안게임뿐만 아니라 제가 할 수 있을 때까지 해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뇌 노화가 60~70대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그때까지 게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 나이도 넘어서 죽을 때까지 하고 싶다”고 말했다.

60~70대가 될 때까지 현역 선수로 뛰고 싶다는 의지를 표명한 셈이다. 김관우가 70대까지 현역 선수로 뛰면서 20대 청년 선수들과 대등한 경기를 벌일 수 있다면,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 뇌 노화를 저지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인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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